여행기

태산 곡부여행기

소산1 2012. 9. 14. 17:25

 

태산. 곡부여행기|▣♡ 자유 게시판
소산문재학 | 조회 176 |추천 6 |2012.09.06. 18:27 http://cafe.daum.net/jeokhojaemkchoi/OuLQ/2738 

 

泰山. 曲阜여행기

소산/문 재학

2012년 8월 25일(토)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詩句로 유명한 중국의 명산인 泰山을 향해 강력한 대형태풍 “볼라벤”이 우리나라 서해로 접근중이라는 방송을 듣고도 불안과 기대 속에 아침 6시30분 김해 국제공항으로 자동차를 몰았다.

 

11시10분 쾌청한 날씨 속에 중국 산동성 칭다오로 출발하여 우리시간 1시40분경(현지시간 12시40분) 칭다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한국과는 한 시간 늦은 시차이다.

 

칭다오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휴대폰을 로밍하지 않았는데도 자동으로 서울시간과 현지시간이 스마트폰에 동시에 뜨고 국제통화요금과 주의사항들이 들어왔다.

 

세상이 참 좋아지고 편리해 졌다. 날씨는 약간의 운무가 있었지만 맑고 쾌적했다.

공항 가까운 곳에서 중국 現地食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강태공 사당을 견학하기 위해 치박시 임치구로 향했다.

대체로 본 칭다오시는 역사가 오래지 않아서인지 8차선 등 도로가 넓고 녹지공간이 많은데, 각종 꽃과 조경수 등으로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어 신선한 느낌이다.

 

대평원 고속도로를 3시간 30분 달리는 동안 조선족 가이드 최상화씨의 설명이 계속되었다. 지리적으로 산동성은 우리나라 인천과 제일 가까운 곳이고 한국기업과 한국인이 많이 거주한다고 했다.

 

산등성은 춘추전국시대에는 제나라와 오나라 땅 이였다.

삼국시대에는 조조가 세운 위나라이기도 했다.

가도 가도 끝없는 대평원 4차선 고속도로변은 포플러나무가 수벽처럼 조성되어 경관을 도모하고 있었다.

 

중앙분리대는 향내무외 이름 모를 잎이 붉은 조경수로 混植하여 剪定을 해두어 여행객의 눈을 즐겁게 해주었다.

산등성은 면적이 우리나라 1.5배나 되고 그중 65%가 평야지대라 한다.

 

도로변 시야로 펼쳐지는 광활한 耕作地는 포플러 防風林 사이로 대부분 옥수수가 꽃대를 피우면서 풍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실로 엄청난 면적이다.

물이 부족해 벼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했다.

 

이곳에서 모두 벼농사를 짓는다면 달관으로 계산해서 우리나라(68%가 산임) 총 쌀 생산량의 5배나 되는 계산이 나온다.

 

어디로 가나 마찬가지로 고속도로변은 대형 野立看板이 즐비하다.

아마도 자본주의 경제가 도입되면서 선전을 위해 필요에 의해 생긴 자연적인 현상인 것 같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리니 대형화장실 입구에 한글로 ‘하장실’이라고 되어있어 일행들이 모두 처다 보고 웃기도 했다.

 

임치구 가까운 곳 고속도로변에 주차하여 ‘古車博物館“에 들렸다.

1990년 고속도로 개설시 춘추전국시대 왕의 무덤 주위에 순장한 전차 10량과 말 32필이 질서정연하게 배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그 보존 상태가 아주 좋아 이것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고속도로 지하에 시대별로 우마차 변천사를 벽화와 조형물로 전시실 4개에 나누어 진열해두었다.

수천 년 전의 편리하고 화려한 생활상을 감명 깊게 보았다.

 

20분정도 달려 임치구 구청을 앞을 지나 강태공 사당에 도착했다.

이곳 산동지방은 제갈량과 황휘지 출생지라고도 했다.

 

강태공(본명은 姜尙 자는 姜子牙)의 사당은 꽤 넓었다. 전형적인 중국의 부속건물과 함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어 놓았다.

본 사당에는 강태공의 일대기를 그린 벽화를 지나면 입체 칼라로 된 강태공입상이 있고 그 뒤로는 대형 비석이 있다.

 

 

 

강태공은 기원전1211년에 출생139세까지 장수를 했다.

세월을 낚는다는 강태공으로만 알았는데, 대단한 政治家이고 兵法家라 했다.

 

백발노인으로 낚시를 하고 있을 때 주나라 문왕이 직접 강가에 오도록 하여 승상으로 발탁되어 문왕을 도와 은나라 대군을 격파하여 천하 통일을 하였고, 이 곳 임치(臨淄)구를 봉토로 받아 齊나라를 세워 800년간 존속 했다.

 

낚시에 몰두한 강태공을 버리고 도망간 부인이 강태공이 출세하여 돌아오니 다시 같이 살자고 하자 하인을 시켜 물을 한 그릇 떠오게 하여 땅에 부으면서 이물을 다시 그릇에 담으라고 했다.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는 일화로 유명했다.

 

그리고 여씨, 구씨 등의 원조가 강태공이라 했다. 즉 무려 46개 성씨가 자손들로 부터 갈라져 나갔는데. 성씨별 사연을 벽면에 진열한 사당이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도 이곳을 원조 조상이라고 다녀갔다고 했다.

 

6시10분경 가까이에 있는 ‘齊都호텔’ 14층에 여장을 풀었다.

 

 

 

2012년 8월 26일(일)

아침 8시에 산동성 제1의 도시 濟南市로 출발했다.

지난밤에 약간의 비가 내려서인지 자욱한 물안개가 지척도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고속도로를 1시간30분 달려 제남시의 黃河강변에 도착했다.

전망대 입구에는 수십 미터나 되어 보이는 거대한 용의 조형물이 있었다.

조형물 뒤 전망대로 갔다. 누른 황토물이 작은 소용돌이를 치면서 흐르고 있었다.

 

 황하강 입구, 멀리 용의 몸통이 보인다

 

중국의 한족은 黃河江을 중심으로 생활 터전을 잡았기에 황하강을 어머니 강이라 부른다고 했다.

티베트에서 발원된 맑은 물이 중부내륙을 통과하면서 누른 흙탕물로 변하였고 산동성 東營市의 바다에 이르기 까지 장장 5464km나 된다고 했다.

 

인구 700만 명이나 사는 제남시내에는 샘물의 도시라 稱할 만큼 72곳의 샘물이 있다 한다. 그중 천하제일의 샘(泉)인 표突泉으로 향했다.

시내에는 광고판이 엄청나게 많은데 심지어는 큰 건물의 전면을 광고문으로 도배를 한곳도 있었다.

 

시내에 다니는 자동차를 보니 세계 차량 전시장 같이 모든 차종이 다 보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나라 현대자동차 마크를 겨우 1대 발견 할 수 있었다.

산동성 차량 번호판은 전부 “魯”자로 시작했다.

 

중국은 최근 5년간 자동차가 급속히 늘었다고 한다. 세계굴지의 자동차 공장이 다 들어 와있기에 앞으로 급속도로 증가할 것이라 했다.

그리고 바퀴가 아주 작은 충전기 오토바이가 많이 다녔다.

 

자동차 교통체증 때문에 한참 후에야 濟南市 중심지에 있는 표돌천에 도착했다.

단체 입장권을 끊어 들어갔다. 상당히 넓은 면적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곳곳에 샘물이 솟는 곳에는 사각형 화강암으로 난간을 만들어 관람케 했다.

 

시장처럼 북적이는 많은 사람들을 뚫고 깊이 들어가니 사방 수십 미터나 되어 보이는 대형 샘물터에서 3개의 原水 물줄기가 하얀 泡沫을 쉴 새 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표돌

 

2000년 이상이나 되었다는 샘물이 물이끼 하나 없이 깨끗했다.

신기한 장면들이다. 사진을 담기 어려울정도로 관람객이 많았다.

 

표돌천 정문 앞으로 나오니 大路 맞은편 넓은 광장(泉城 광장)에는 3개 샘물을 상징하는 푸른색의 大型塔이 있었다.

 

복잡한 시내로 벗어나 다시 6차선 고속도로를 이용 태안으로 이동했다.

옅은 안개 속으로 야산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할 때 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1시간 30분지나 태산 입구에 들어서니 비는 그쳤다. 늦은 중식을 했다.

泰山은 중국의 5대岳山 중에 동쪽에 있고, 태양이 제일 먼저 뜨는 곳이다.

 

진시황, 한 무제, 당 현종, 공자, 청의 강희제 등 황제를 비롯하여 많은 인사들이 태산을 올라 封禪儀式을 행한 신성한 산이라고 했다.

 

그리고 “갈 길이 태산이다.” “걱정이 태산이다.” 태산이 흙마다 않는다 등 "태산에 대해 시와 설화가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많은 사람이 제일정상 옥황상제가 모셔져있는 옥황전에 태산의 정기를 받으러 기를 쓰고 올라간다고 했다.

 

대형 주차장에 내려 태산을 오르내리는 셔털 BUS로 숲이 울창하고, 맑은 물소리가 울리는 암반계곡의 비경을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25분여를 달려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했다.

 

날씨가 많이 좋아져 안개가 있어도 태산의 경관을 둘러 볼 것 같았다.

2200m를 케이블카로 15분정도 타고 올라갔다.

케이불카에서 내렸다. 여기서 해발 100m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지만, 도보로는 1시간 정도 걸어야 한단다.

 

1264년 원나라 때 세워졌다는 남천 돌문 天街문을 지나면 하는 길이다.

 

태산 오르는 천가 문

하늘 길 도로변으로는 송나라 풍의 2층 내외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산 정상 부근의 상업길이다.

물안개가 시원한 바람을 안고 몰아친다. 아주 상쾌한 기분이다.

 

3곳에서 케이블카로 올라오는 관광객과 도보로 올라오는 관광객 등 사람이 너무 많아 밀려 올라가고 밀려 내려왔다.

 

등반길은 5~6m되어 보이는데 화강암 계단과 바닥은 화강석으로 평평하게 포장을 해두어 튼튼했다.

얼마나 사람이 많이 다녔는지 화강석이 반들반들 했다.

 

간간히 흩어지는 물안개 속으로 아름다운 풍광이 신비감을 더해 주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1009년 송나라 때 창건된 벽하사(碧霞詞) 등 많은 건물들이 집단으로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해발 1500m 가까운 곳에 인력으로 이런 많은 시설들을 하였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깊은 역사의 숨결에 흠뻑 빠지게 했다.

 

조금 넓은 광장의 10m내외의 암벽 벽면에는 역대 유명인 방문객 등이 음각으로 어떤 것은 金粉을 입혀 황금빛으로 장식해 관람객의 사진세례를 받고 있었다.

 

드디어 1545m 태산 정상에 玉皇峰에 있는 玉皇殿에 올라섰다.

 

태산 정상에 있는 옥황전

얼마나 오래되었지 모르지만 고색창연한 옥황전내에 옥황상제 상을 보려고 북새통이다.

틈새를 비집고 순식간에 내부를 동영상으로 담았지만, 사진촬영을 못하게 했다.

 

뜰에는 엄청나게 많은 소망을 비는 열쇄 더미가 햇빛이 없어도 반짝이고 있었다.

가까운 곳만 볼 수 있는 물안개를 원망하면서 발길을 돌려 내려오니 거짓말같이 안개가 걷혔다. 탄성을 자아내는 절경들을 열심히 동영상으로 담았다.

 

다시 되돌아가서 玉皇殿을 보고 싶지만 시간이 여의치 않아 생략하고,

흩어지는 안개사이로 아름다운 태산경관을 둘러보면서 下山했다.

 

20-30층의 신규 아파트를 많이 짖고 있는 태안시의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공자의 고향 曲阜로 향했다.

고속도로 곳곳에는 防犯 카메라 불빛이 반짝이고 있었다.

 

이곳의 넓은 경작지도 耕地整理가 전연 되어 있지 않았다.

저녁노을이 야산을 감싸고도는 아름다운 풍광을 1시간 정도 즐기다보니 曲阜市 톨게이트다.

 

톨게이트 정면에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거대한 조형물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어둠이 내려앉는 곡부거리는 가로등도 특이하고 도로변 주택들도 특이했다.

곡부시는 인구 50만 명 정도 되는데, 그중 20%정도가 공자 후에 공씨 들 이라했다.

 

방대한 성곽(魯나라의 古城)내에 있는 권里賓舍 호텔에 투숙했다.

 

 

2012년 8월 27일 (월)

아침에 식당으로 가니 식당입구에 김대중 대통령 방문 사진이 붙어 있었다.

8시 10분경 공묘사당으로 걸어서 갔다.

오천년 문명의 역사 문물유적을 자랑하는 곡부. 더구나 공자의 사당과 묘지가 있기에 기대가 크다.

 

공묘는 노나라 노哀公이 공자 사후 1년(BC 478년)에 세운 것으로 북경의 자금성, 태안의 垈廟와 더불어 중국의 3대 고대 건축물로 꼽힌다고 했다.

 

공자 사당 첫 출입문

 

공자 사당을 제일 먼저 찾은 분은 BC 195년 한나라 유방(漢武帝)이 최고 수준의 祭典형식으로 몸소 제례를 올렸다고 한다.

 

그 후 진시왕 때와 모택동 때 공자의 유적을 많이 훼손 하였는데, 보수보완을 하였다고 했다.

 

공자의 사당 규모는 면적 약 140정보, 건물은 樓. 堂. 殿. 閣이 466여 칸(1칸이 660평방미터)이 되고 출입구에서 사당까지 9개의 문을 거치는데, 거리가 630m 나 된다.

그리고 남북 길이가 1300m이다.

 

至聖廟등 문을 지날 때마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묻어나고 천년 수령을 자랑하는 아름드리 고목이 1700여주나 된다고 했다.

 

사당 가까이 있는 비석을 보관하는 정자 “碑亭”이 13개나 있는데, 古色蒼然한 건물로 지붕은 황금색이 되어 숲속에 빤짝이는 것이 이색적 이였다.

공자비석을 비롯하여 碑亭마다 갖가지 사연을 안고 있었다.

 

사당의 마지막 대성문의 양측 대형 대리석 기둥의 양각의 용을 만지면서 공자 사당으로 들어섰다.

 

공자사당은 정면 10개 대리석 기둥에 용을 양각한 거대한 大成殿(동서 넓이 약46m, 남북 길이 약25m, 높이 약25m)이다.

이곳에서 매년 9월 26일-10월 10일 공자 탄신일을 기해 대형축제를 거행 한단다.

 

공자 사당 대성전

 

대성전 옆 우측에는 공자의 제자 72명의 位牌를 봉안한 긴 건물을 통과 했다.

 

다음은 공묘의 오른쪽에 위치한 1038년에 세워졌다는 공자의 혈족직계 장손들이 대대로 살아온 성부 또는 연성공부(衍聖孔府)라 부르는 공부(孔阜)를 방문 했다.

16정보의 넓은 면적에 대정가옥(廳堂房屋)의 방의수가 463칸이나 된다.

 

공자의 장손들에게 벼슬을 주고 900여 년간 혜택을 준 공자의 종가집이다.

규모도 크지만 고택의 섬세한 풍미와 단청이 그 옛날의 영화를 짐작케 했다.

 

연성공 공무를 보는 집. 대규모 2층 살림집. 등 수많은 집들을 꼬불꼬불 골목길을 돌아돌아 가면서 관람하고 마지막에 넓은 정원을 거처 공부의 후문을 나왔다.

 

이어 전동차를 타고 5분정도 달려 萬古長春이라는 석문 거리에 도착 했다.

수백 년 고목이 길 양측으로 늘어서고 하층에는 향나무로 단장된 거리를 2~3백 미터 걸어서 至聖林이라는 현판이 걸린 孔林의 정문에 도착 했다.

 

孔林은 공씨들 가족 공동묘지다.

총면적 200정보에 10만여 기의 분묘가 있고 현재도 계속 들어오고 있단다.

단. 죄를 지었거나 출가한 딸은 이곳에 올수 없단다.

공씨 후손들도 성묘 시에는 티켓을 받아야 들어올 정도로 통제를 한다.

 

孔林내를 관람차를 타고 넓은 지역을 둘러보니 숲속에 분묘가 질서 없이 산재되어 있고 10만기가 넘는 분묘에 비석이 없는 것이 더 많고 벌초는 하였지만 깔끔하지를 못했다.

 

공자의 묘지 앞에 내려 거대한 고목과 대형 석상들이 길 양안으로 늘어서 있었다.

 

공자에게 제사 지내는 향전(享殿)을 지나 들어서니 우측에는 공자의 제자 자공의 흔적과 청나라 건륭제등이 제를 지내려올 때 쉬어가는 작은 정자 3채(송 진종. 청 강희제)가 있고,

 

왼쪽은 100m 들어간 곳에 맹자의 스승이기도 한 공자의 손자 子思의 무덤이고 그 뒤에 공자의 무덤이 있고, 그 옆에 나란히 아들 공리(孔鯉)의 무덤이 있어 무덤의 배치가 品 자 형태로 되어 있어 대대로 큰 공적을 쌓는 사람이 나오고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했다.

 

공자의 대형 비석은 大成至聖文宣王墓라는 전서체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문화 혁명 때 파괴한 것을 보수 복원 하였다 한다.

 

공자 무덤

 

무더운 여름날 다시 전동차를 타고 시내에 식당에서 중식을 하면서 공자 가문의 술이라는 孔府家酒로 취기를 돋았다.

 

고풍이 넘실대는 곡부 시가지를 벗어나 다시 칭다오로 향했다.

대체로 본 주변의 산들은 야산이고 민둥산이 많다.

그리고 대평원에 경작지가 많은 데도 계단식으로 개간하여 작물을 심었다.

농기구를 전연 사용할 수 없는 지형인데도 개간한 것을 보면 인력은 충분한 모양이다.

 

곡부에서 한 시간을 달렸을까 갑자기 땅콩 집단재배지가 이어지고 있었다.

간혹 보이는 비닐하우스는 옥수수 높이와 같을 정도로 낮아 農作業이 상당히 불편 할 것 같았다. 하우스 내 재배 작물이 무엇인지 상당히 궁금했다.

 

흰구름이 한가한 들판에 곳곳에 적색 지붕의 농가들이 시선을 즐겁게 해주고 가끔 아름다운 석산들이 손짓하는 고속도로를 5시간이나 달려 세계제일의 해상대교(자오저우만 대교 총 길이 약42km. 폭35m. 왕복 6차선)를 동영상으로 담으면서 멀리 칭다오 항구를 향해 달렸다.

 

칭다오 시내 인구는 300만 명, 외곽까지 합하면 700만 명이나 된다.

외항과 복잡한 시가지를 통과 구시가지에 하차하여 해안가 잔교를 방문 했다.

 

저녁노을이 해안 고층빌딩위로 쏟아지고 마침 썰물 시간인지 물이 빠진 갯바위에 수많은 시민들이 개미 때처럼 몰려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을 영상으로 담았다.

 

잔교는 배를 양쪽에 대기 위한 시설로 소청도 등대가 마주 보이는 곳에 1891년에 건설 한 것으로 잔교의 끝자락 회란각(廻瀾閣) 가는 길은 시민과 관광객이 붐벼 시장 통 같이 붐볐다.

 

잔교 끝. 조금 멀리 소청도가 있다.

 

회란각 전망대는 시간이 없어 생략하고 회란각을 한 바퀴 둘러 나오면서 바라본 구시가지는 정말 풍광이 아름다운 도시였다.

저녁노을이 걸쳐있어 한 폭의 수채화였다.

 

다시 차는 사람들이 북적이는 칭다오 제일해수욕장의 긴 해안을 지나고 울창한 숲이 있는 해안 공원을 지났다.

형상이 특이하고 미련한 빌딩을 마주하는 한인이 경영하는 한식집(경북궁)에서 한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밖을 나오니 가로등과 네온이 화려한 밤거리이다.

고층 건물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 신시가지 해안가에 있는 5.4광장에 도착 했다.

중국의5.4운동을 기념하기 위한 빨간 횃불 탑이 붉은 조명을 멀리까지 뿌리고 있는데, 이 횃불 탑은 칭다오의 象徵 이란다.

 

칭당오의 상징 횃불탑

 

1919년 항일 운동을 상징하는 19개 층으로 만든 거대한 횃불탑이 조형물 전체가 붉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왔다.

해안가 맞은편에는 여러 가지색을 발하는 대형 오륜마크와 시드니의 오페라 전당을 닮은 조형물의 시시각각 아름다운 변색은 여름 저녁 해안가를 찾은 시민과 관광객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고 있었다.

 

5.4광장 관람을 끝내고 한참을 달려 칭다오 청양 쉐라톤 호텔 501호에 여장을 풀었다.

TV를 켜니 우리나라 서해안 통해 올라오는 초대형 태풍 15호 “불라벤” 때문에 내일 오후에 귀국 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2012년 8월 28일(화)

오늘은 귀국을 못하기에 하루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아침 9시 30분에 칭다오 시내에 있는 맥주박물관으로 향했다.

1903년 독일인이 설립한 것으로 전 세계에 판매망을 갖고 있는 세계5대 맥주공장의 하나란다.

 

입장료 60위안(한화 12,000원)을 내고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맥주 박물관을 들어서니 광장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거대한 맥주병 조형물과 5개의 술잔이 맥주거품(물 분수)을 뿜고 있었고, 옥상에도 대형 캔맥주 조형물이 실물처럼 칼라를 자랑하고 있었다.

 

뜰에는 화강석으로 만든 맥주병과 술잔. 옥상에는 캔맥주 조형물

 

박물관 입구를 들어서니 맥주 생산과정의 유물과 사진 등 전시를 해 두었고 생산과정을 일목요연하게 견학토록 시설을 해두었다.

또 술을 먹지 않아도 술 취한 사람의 기분을 느끼게 하는 묘한 시설을 해두어 이색인 체험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1인당 한잔이지만 술을 못하는 사람 분까지 모두 마시니 두 차례 시음으로 얼큰하게 취하게 만들었다.

기념으로 모두 캔맥주 한 세트씩 사들고 나왔다.

 

사천식 중국요리로 중식을 끝내고 2008년에 개장한 天幕城으로 향했다.

천막성은 천장에는 파란 하늘에 흰구름이 흘러가는 것이 마치 미국의 라스베가스 거리를 온 것 같은 분위기이다.

 

천막성 내부 광경

 

거리는 화려한 조명아래 각종 옛 건물 모형을 상징적으로 만들어 두었고, 식당. 쇼핑. 음악 등이 관광객의 발길을 잡았다.

거리 악사의 아름다운 선율의 음악을 흥을 거리면서 관광을 끝냈다.

 

다음은 시간이 남아 허영심을 채워주는 짝퉁시장을 들려 그냥 나오기가 미안하여 명품 가방을 기념으로 아주 헐값에 하나 사면서 둘러보았다.

 

 

2012년 8월 29일(수)

오전에 늦게 쉐라톤 호텔을 나와 가까이에 있는 올림픽 세기공원을 찾았다.

공원이 아주 넓었고 조경도 잘해 두었다. 평일인데도 사람들이 많았다.

 

각종경기의 선수를 상징하는 조형물이 곳곳에 있고,

호수에는 물망초 수련 등이 꽃을 피우고 있었다.

호수 곳곳에 젊은 연인들이 오리보트를 타면서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오후2시 50분 대한항공으로 출발 예정 이였으나 비행기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5시에 귀국길에 올랐다.

연이어 태풍이 올라오고 있어 이렇게라도 귀국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추억에 오래 남을 여행이 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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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 12.09.07. 19:07
글을 잘 쓰시니 ....눈에 선합니다 꾸벅 ^^

 

선화공주 12.09.06. 20:20
멋진사진과 함께 올려주신글...
실제 여행을 다녀온것 처럼 마음 뿌듯합니다.
 
작은천사 12.09.06. 19:06
다-읽고나니 20분 ㅎㅎ--제가 다녀온 느낌이네요
장문의 사진과 귀한 글 소산님 수고많으셨어요

 

그린빛(김영희) 12.09.07. 00:07
소산님 다녀오신 3박 4일의 중국 여행기를 아주 꼼꼼히 자세하게 잘 적으셨습니다 .
다녀오신 곳마다 중국역사가 살아 숨쉬는 그 자연 많이 담고 오신 듯 합니다 ~
소중히 담아 둘 중국 여행기 .. 덕분에 저도 많은 걸 알고갑니다 . 감사합니다 .

 

가브리엘 12.09.06. 20:22
와우~ 공부 많이 했습니다. 감사드려요. 아휴~우 고생 많으셨습니다.

 

백합 12.09.07. 11:29
좋은 사진들보면서 그곳에서 직접보는 기분입니다 공자 사당첫 출입문 공자사당 대 성전
공자무덤 칭다오 시내 그렇게 많은 인구 사는 세세함까지 잘기록하여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곳에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많은 사진을 올려주시어 고맙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신 선생님 늘 건안 건필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
 
李 乙 12.09.08. 10:23
좋은 풍광을 보여주심에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건필하소서.
 
 이쑤시개 12.09.06. 21:14
설명까지 곁들어.... 제가 중국에 다녀온 기분임다.. 감사합니다..

 

가을하늘 12.09.07. 05:05
중국다녀오셧네요 태산과 곡부 가보지 못했지만 리얼한 글속에서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나그네 12.09.07. 19:04
마음깊이 欽慕하는 孔子님의 얼이 살아 숨쉬는 사당전에 고개숙여 禮를 표합니다
언젠가는 꼭 방문 하고픈 곡부 구경 잘하였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공맹사상을 전하는 고전을 탐독하여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염원하여 봅니다

 

협원 12.09.07. 09:34
옛 선조들이 대국 이라고 부른 이유을 알것 같읍니다

 

달빛미소 12.09.08. 17:15
사진에 딸린 구연설명으로 이곳에 가본듯 하였습니다.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joheny 12.09.10. 16:49

소산 선생님, 상세한 태산과 곡부의 여행기 사진과 함께 잘 읽었습니다. 태산이라 하니 얼마나 높은 줄 생각했었는데 1545 미터라면 지리산정도의 높이이군요. 매사를 과장되게 말하는 중국식 표현을 알것같습니다. 포돌천의 샘물과 맥주박물관의 시음 써비스가 인상적입니다. 감사합니다.

 

최강자 12.09.06. 23:20
깊은 인상을준 여행기 였읍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만덕 12.09.07. 12:58

제가 산동성 청도에 거주하고 있는데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참 아쉽네요
사진과 글을 통해 잘 정리하여 설명해 주신것 같습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시길 바랍니다
 
 
구마 12.09.07. 00:29
친절하신 선생님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하게되어 고맙습니다  
 
유비 12.09.07. 06:34
중국의 이곳,저곳 광관 다녀 좋은작품 만들어 보네주어 잘 보고 감니다.감사함니다.항상 건강하세요.
 
화초 12.09.06. 23:05
참으로 대단한 중국입니다.
한참을 즐감 하고 배우고 느끼고 보네요. 감사해요. 므흣~
 
미소 12.09.06. 23:07
컴에 않아서 중국 역사를 배우고 열공합니다. 고운 밤 되세요. 빵긋
 
綠 井. 12.09.07. 20:20
여행기 한참이나 배독합니다. 굽신~

 

liuyingshi 12.09.07. 13:02
역사적인 자료들을 보관을 잘하고 있네요 자료 감사합니다  
 
가고파 12.09.07. 13:21
중국 참대단합디다
 
백삼천일 12.09.07. 13:40
잘 했군요. 수고도 많이 하시구... 늘 건강하세요
 
죽순 12.09.07. 20:35
중국의 만만디. 국민성이 여실이 비쳐지네요..대단합니다..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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