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소산/문 재학
생각하면 90평생 자식위해 살아 오셨습니다.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낮에는 뜨거운 태양아래 논.밭 김매시느라
얼마나 비지땀을 많이 흘리 서셨습니까?
제초제나 비료가 없던 시절 어찌 그리 雜草가 많이 나던지,
그리고
밤이면 호롱불 아래 가마니 짜고. 새끼 꼬시면서 한시도 쉬지 않았습니다.
농번기 때면 새벽 달빛을 이용해 일 하시는데, 협조가 필요해 불러내면
어떻게나 일어나기 싫던지? 아버님 개으럼 피워 죄송합니다.
그때는 그 흔한 비닐 한 조각. 우의도 없으니
비가 오면 몸은 다 젖어도
삿갓 아래 담배. 부싯돌은 젖지 않게 보관하셨습니다.
그렇게 좋아하시던 담배도 이제는 끊으시고,
지팡이가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수십 년을 다니시던 전답에 발길 끊으시고,
하루장도 빠지지 않고 다니시던 시장길
차만 타면 10분 남짓한 길인데도 抛棄 하셨습니다.
해를 거듭 할수록 생활의 반경을 줄이시는 것이 안타갑습니다.
세월을 못 이겨 앙상한 몸만 남았으니 어쩔 수 없겠지요
사계절 귀하다는 과일 갖다 드려도 식욕이 없어 거절 하시고
간식으로 온갖 좋은 음식 머리맡에 두어도 항시 그대로 있습니다.
오직 술만 권하지 않아도 혼자 자십니다.
친구들은 不歸客이 되어 부락이 크다 해도 마을 앞에 나가면 말벗이 없어 혼자 지낸지 십수년. 얼마나 외로우십니까?
그래도 돌아오는 節氣는 정확히 기억 하시고, 영농 사항과 민속행사 등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부락일은 무엇이던 거의 알고 계십니다.
누구는 몇 년생. 무슨 띠이고. 그집 아들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그냥 백과사전입니다.
일제 징용에 간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 계시는 유일한 분이라 인후증명을 위해 객지에서 사람이 찾을 때는 아버님 건강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또 평생을 사시면서 무조건 양보만 하시니 한번도 남과 다투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께서 바보같이 처신 한다고, 하셔도 저는 아버님 그 성격이 자랑스럽습니다.
귀가 어두어 보청기를 착용해도 큰소리 아니면 대화가 되지 않아도 그래도 대화의 길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
TV에 자막이 나오면 이해를 하시는데, 그렇지 않으면 느낌대로 말씀 하시니 가슴이 미어집니다.
금년 봄(2009년 91세)에 백내장 수술 하신 후
신문과 다양한 책들을 보시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작별 인사를 드릴 때마다 책을 손에서 놓으시고 창밖을 내다보며
“조심해서 가거라”
반복되는 말씀이지만 자식에 대한 정이 넘칩니다.
아버님이 계시기에 자식은 행복합니다.
부디 白壽 동안만이라도 곁에 계시기를
마음속으로 빌고 또 빌어 봅니다.
'자작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미 있는 삶 (0) | 2009.12.20 |
---|---|
중학교 동기들과 추억의 하루 (0) | 2009.12.07 |
먹거리 소고 (0) | 2009.11.02 |
노년을 건강하게 (0) | 2009.11.01 |
공직 생활을 마감하고 (0) | 2009.10.31 |
댓글 8 인쇄 | 스크랩(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