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 있는 삶 소산/ 문 재학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보니 후회 되는 일과 반성해야 될 것 들이 너무 많다. 사람은 모름지기 혼자서는 살아 갈 수 없고,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살아가다 보면 경쟁도 생기고 알력. 시기. 질투. 멸시 등 많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참된 삶이 어떤 것인지 ? 목적과 방법이야 다양 하겠지만, 근본은 나 혼자 잘 사는 것이 아니고, 우리 이웃이 나아가 이 사회 전체가 잘 살아야 된다고 생각 한다. 이를 위해 제도. 법규로는 사회 큰 변혁을 이루기 어렵고, 모두가 나 하나의 조그마한 양보와 배려로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변화들이 모이면 이것이 변화의 큰 물결이 되어 정이 넘치는, 모두가 작은 것에 행복해 질수 있는 그런 아름다운 삶이 참된 삶이 아닐까 ?
여러 가지 많은 사례가 있겠지만, 두서없이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먼저 자기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듣기 좋은 존칭어를 사용해 호감을 사는 자세가 중요 하다. K군의 B과장의 경우다. 사양과 겸손이 묻어나는 분이다. 70년대 초반에 만난 분인데, 그 때만 해도 누가 전화를 걸어오면 “○○과장입니다” 성함도 밝히지 않고 말할 정도로 권위적인 시절에, B과장은 반드시 “○○과 ○○○입니다.” 라고 직책 대신 자신의 성함만 밝혔는데, 이는 그 당시 생소할 정도로 여겼다.
그 후 세월이 한참 지나서 직책과 이름을 밝히라는 행정지시가 있었지만, 이분은 처음부터 이렇게 처신을 하니 전화를 건 상대방이 과장의 이름을 모를 경우, 재차 ○○과장 좀 바꾸어 달라고 하면 그 때 제가 ○○과장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또 B과장은 상대방을 호칭할 때 대상에 따라 가장 듣기 좋은 존칭어를 가려서 부르니 누구라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고, 기억 속에 오래 남았다. 물론 업무도 빈틈없고 차질 없이 추진하여 수상 경력도 많다. 퇴직한지 십 數年 이 지나 지금 70대 중반이 年歲지만 큰 친목 단체회장으로 회를 잘 이끌고 있다.
H 군의 G 군수는 사람을 만나면 거의 90도의 인사를 하고, 용무를 끝내고 사무실을 나가면 何人을 막론하고 문 밖까지 전송한다. 아는 사람이 전화를 걸면 반드시 상대방의 안부부터 먼저 묻고, 용건은 그 다음이다. 그리고 전화를 끊을 때는 상대방이 먼저 끊어야지 자신이 먼저 끊는 일이 없다. 자신이 먼저 끊을 경우는 상대방의 양해를 먼저 얻고 끊는다.
또 어머니에 대한 정성도 극진 하셨다. 어머니와 떨어져 있을 때 주말마다 노모를 찾을 때는 항시 문밖에서 큰 절을 올린 후 노모 뒤로 다가가 (비록 1주일 정도 떨어져 있었지만) 그 동안의 문안 인사와 함께 어깨를 주무르고 등을 가볍게 안마를 하는데 어느 부모가 좋아하지 않을 사람 있을까? 누가 시켜도 하기 힘든 일이다. 정말 보통 사람이 행하지 않는 본받을 일이다. 이러한 사소한 것이 작은 감동이 되어 두 차례나 민선 군수를 하게했다.
재직 시에 군민을 위한 치적은 論外로 하고, 상부기관의 시상도 사전에 철저한준비로 대비 하므로서 도내 시상을 거의 휩쓸다 시피 하여 年間 시상금만 수십억 원 씩 받았다. 군민을 위하여 몸을 아끼지 않고 일한 탓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3선을 포기 했지만, 건강만 허락하고 3선 제한만 없다면 계속 군수를 할 분이였다.
H 군의 N 군수는 정말 근면 검소함을 몸소 실천 했다. 窮狀스러울 정도로 검소했다. 문서 결재 시 실 과장은 싸인 펜을 사용 하는데도 자신은 오직 볼펜만 사용했고, 메모지는 크다 란 달력을 잘라 그 이면지를 이용했는데, 이면지를 볼펜으로 쓰면 달력의 글씨 잉크가 짙어 자신이 쓴 글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인데도 항시 달력 이면지를 메모지로 이용 했다. 그러니 필갑에는 연필과 지우개. 볼펜 밖에 없었다. 관외 출장 후 여비가 남으면 반납하기도 했다.
부하 직원들은 공휴일 날 쉬어도 자신은 휴일이 없이 출근을 했다. 부하 직원에 대한 배려도 놀랄 정도였다. 80년대 초 식량 자급을 위하여 농사행정에 주력할 때 이야기다. 휴일 날(일요일) 담당 계장이 모처럼 시골 부모께 나가 들에서 농사일 을 돕고 있는데, 이웃집 전화(당시 부모 집에는 전화가 없었고, 이웃집 전화번호는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로 군수님이 빨리 들어오라는 연락이 왔다.
황급히 부모님 집에 돌아와 군청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다시 이웃집으로 전화가 와 차석을 통해 자료를 받았으니 볼일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알고 보니 월요일에 지사님의 갑작스런 방문에 대비하는 중요한 일이였다.) 사소한 일이지만 보통의 사람이 행하기 어려운 직원에 대한 깊은 배려였다.
마지막으로 사례를 하나 더 들어본다. 1957~8년도 대구 K대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시골 중학교 초임 발령을 받은 여 선생님의 이야기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정말 독특한 방법과 깊은 정으로 학생들을 면학에 열중케 했던 그분은 이제 70대 중반. 제자들도 60대 중반에 들어서는 50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서로 그리워하고 존경 하는 것은 분명 삶을 살아가는데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선생님은 초임 발령지서 1년 반, 통영여고를 거처 교사 경력 총 3년 남짓 재직하고 약대에 편입. 그 후 약사가 되어 지금 대구시 중심지에 개업하고 있다. 글을 잘 쓰시니까 여러 곳에 기고도 하지만, 많은 제자들과 삶에 대한 진지하고 정이 넘치는 전화나 서신 교환은 삶에 대한 큰 활력소가 되었다. 제자들은 애틋한 그리움의 대상. 정다운 사연을 받을 수 있는 스승이 있어 좋고, 선생님은 동기생 몇 명만 모여도 초청의 1번이 될 정도로 평생을 두고 따르는 제자들이 있어 분명 더 없이 행복 할 것이다.
우리 주위에는 본받아 실천해야 할 만한 수많은 사례가 이겠지만~~~~. 사람은 지위가 높다고 고결한 삶을 산 것도 아니고, 명예와 학식이 많다고 거룩한 생을 누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의 가치는 아름다운 행복. 이행복은 작은 만족. 작은 기쁨이 행복의 바탕이 될 것이다. 모두가 아름다운 삶을 위해 자기 양심에 근거한 양보와, 배려가 있는 진실 된 삶이 이 사회를 모두 행복하게 하고, 가장 고결한 삶으로 이어지는 뜻있는 삶이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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