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서안 여행기

소산1 2014. 5. 2. 19:22

서안 여행기|▣♡ 아름다운 글
소산문재학 | 조회 10401 |추천 2 |2014.04.30. 17:41 http://cafe.daum.net/jeokhojaemkchoi/PM7E/3128 
 

서안 여행기

          소산/문 재학

 

2014. 4. 20(일요일. 맑음)

 

동대구역에서 심야버스로 인천공항에 20일 새벽 5시에 도착했다.

8시에 일행을 만나 출국심사를 하는데, 10시 정각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놓칠까 염려스러울 정도로 출국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영생을 꿈꾸던 진시황과 동양미인의 상징적인 인물 양귀비 흔적을 찾아 아시아나 항공(oz 347)편으로 인천공항을 이륙 중국 서안으로 향했다.

 

쾌청한 날씨 속에 인천대교가 한눈에 보이고 화물선을 비롯한 크고 작은 배들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를 가르고 있었다.

 

3시간 만에 서안 상공에 다다랐다.

뭉게구름 사이로 경작지와 보라색 오동나무 꽃들로 둘러싸인 마을들이 도로를 중심으로 곳곳에 보였다. 경지정리는 잘되어 있지 않았지만 녹색융단의 평야지대가 풍요로워 보였다.

 

현지시간 12시 30분(1시간 늦음)에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와 현지가이드 윤성룡(38세 교포)과 우리일행과 합류했다. 가족끼리 온 어린이 2사람 포함하여 모두 10명이다.

 

간단한 통성명을 하고 대기하고 있는 작은 버스에 올랐다.

날씨가 흐리고 황사인지 운무인지 시계가 흐려 순조로운 관광이 될 연지 심히 염려스럽다.

 

그나마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다.

이곳 서안국제공항이 위치한 곳은 함양시 구역으로 서안까지는 약 50 km 정도 떨어져 있다.

 

둥근 관제탑 가까이에 있는 대형식당에서 중국 현지식(現地食)으로 점심을 한 후 서안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서안(西安 : 중국식 발음은 시안)은 중국내륙의 제일 큰 도시로 인구는 870만 명이다. 옛날에는 장안이라 불리는 13개 왕조의 도읍 도시 3천년 역사를 가진 수도였다. “장안의 화제”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 선조들에게는 동경의 대상 이였을 것이다.

 

중국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도시는 중경으로 3천만 명이라는데 놀랐다.

상해와 합치면 우리나라 남한 보다 인구가 많다.

 

서안 지역은 연간 강우량이 500~600mm로 비가 적은 곳이다.

현재 중국 최대의 지도자 시진 핑이 이곳 서안 출신이라 대대적인 개발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우리나라 삼성전자가 3백억 불을 투자하여 공장을 짓고 있는데,

공사 동원인부가 하루에 만 명이 넘는 대규모란다.

박근혜대통령도 이곳을 다녀갔다고 했다.

 

당나라 중심지였던 서안(명나라 이전 주. 진. 한. 당나라 때까지는 장안으로 불리 움.)은 황제 무덤이 78개나 있는데, 그중 76개는 도굴 당하고 진시황릉측천무후릉만 도굴이 안 되었다고 한다.

 

고속도로변 평야지대에 돌출된 작은 산처럼 보이는 것이 황제무덤이란다.

주위의 경작지는 윤기가 흐르는 대규모 밀밭이고 마을은 온통 보라색이 만개(滿開)한 오동나무 꽃이 뒤덮고 있는 것이 이색적이고 신기했다.

 

강태공이 낚시를 하였다는 “위수”강을 지났다.

이곳 강 주변에는 풍부한 수원을 이용하여 벼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복잡한 입체 교차로도 지났다.

 

아직까지 산이 보이지 않는 평야지대로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나서도 8차선 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다. 황사와 물안개 때문에 멀리 있는 풍경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서안시내에 들어서니 곳곳에 아파트도 많지만 새로 짖는 아파트도 많이 보였다. 시내 도로변은 정원수와 각종 꽃으로 녹지공간을 잘 조성하여 쾌적해 보였다.

 

먼저 기원전 119년에 장로가 300여명의 상단(商團)을 거느리고 실크. 황금 등 선물을 가지고 서역으로 출발한 동서교역의 중심지이자 시발지(始發地)인 실크로드 조각공원에 도착했다.

 

실크로드 시발지

 

공원입구 정문에는 10여명이 중국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잠시 구경하면서 동영상으로 담았다.

실크로드 출발지는 도로변에 위치하고 기다란 분홍색 화강석으로 조각한 대형조형물이 아름다운 꽃밭 속에 자리 잡고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 바퀴 둘러보고 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에 도착하니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많았다.

 

박물관은 외형상 건물이 대단히 크고 웅장했다. 제1전시관 입구 홀에는 측천무후 무덤에서 나왔다는 대형 돌 사자상이 관광객의 카메라세례를 받고 있었다. 이곳 전시물은 50%이상이 출토 유물이란다.

 

역사 박물관 1층 전시실  거대한 사자상

 

 

약간 어두운 조명아래 3천여 점의 중국의 옛날 유물들을 1층에 제1전시관 2층에 있는 제2, 제3 전시관을 필요한 것은 영상에 담으면서 다리가 아프도록 둘러보았다.

 

차는 다시 북광구에 있는 대안탑(大雁塔)으로 향했다.

서안의 신흥 중심지는 고층건물이 즐비 한데, 상당히 넓어 보였다.

교통체증이 일정도로 차량이 많은 데도 교통질서를 지키지 않는데,

보는 것만으로도 불안했다.

 

북광구는 서안에서 제일 잘사는 부촌 지역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들이 고풍스럽거나 화려했다.

 

거대한 대안탑 앞 넓은 광장에는 검은색 삼장법사 현장(602~664)당나라 초기고승)의 큰 동상이 누에 들어왔다. 그 뒤로 미려한 대안탑이 손짓을 한다.

 

자은사 경내에 있는 대안탑은 652년 당나라 고승 삼장법사 현장이 인도서 가져온 경전과 불상을 보관하기 위해 세웠는데 규모는 높이 64m 7층으로 둘레는 25m 벽돌로 지어졌다.

 

 

대안탑

 

차는 대안탑 뒤쪽 수백 평이나 되어 보이는 대형 분수대 공원 앞에 세웠다.

대안탑은 넓은 분수대에서 영상으로 담고 공중으로 지나가는 모노레일의 기차도 동영상으로 담았다.

 

차는 종고루 광장을 지나 회민(回民)거리 야시장 입구에 도착했다.

회민거리 입구에는 잘 조각된 석문을 들어서니 소수민족인 회족의 시장이다.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과 공예품 등을 파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회민거리 입구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자 상점마다 화려한 전광판 불빛과 욱어진 나무에 설치한 네온 불이 흘러내리면서 밤길을 밝히고 있었다. 이름도 모르는 특이한 엿을 3달라 주고 사서 일행들과 나누어 먹으면서 20여 분간 직선 시장거리를 둘러보고 거대한 성문을 통과 하여 밖으로 나왔다.

 

가까이에 있는 종고루 옆 3층 식당으로 갔다.

저녁식사 메뉴는 수십 가지나 되는 만두였다. 이색적인 식사를 하고 나오니 종고루를 비롯한 주위 건물의 화려한 조명이 깜짝 놀랄 정도로 눈이 부실정도였다.

 

필자가 여행지를 돌아본 것 중에서는 제일 화려한 것 같았다.

동영상으로 열심히 담았다.

 

참고로 종고루는 명나라 홍무 17년(1384년) 장안의 최중심지에 3층(높이 8.6m)으로 지어 타종으로 성문을 여는 등 시간을 알렸다고 한다.

 

종고루 거리풍경을 즐기고 시내 중심지에 있는 유경호텔(일면 아방궁) 518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이번 여행기간 동안 4일 밤을 이곳에서 계속 유숙할 예정이다.

 

 

2014년 4월 21일(월요일. 비)

 

9시 30분경에 호텔을 나왔다.

기어이 날씨가 심술을 부려 강우량이 극히 적다는 이곳이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먼저 시내에 있는 당나라 별궁 흥경 공원으로 갔다.

당 현종이 양귀와 함께 살면서 집무를 보았다는 곳이다.

경내가 상당히 넓은데도 화초와 정원수로 단장을 잘해 두었다.

 

흥경궁 입구

 

 

그 옛날 생활상을 그려 보면서 연초록 능수버들이 능진 호수 등을 둘러보고 나왔다. 흥경공원 앞 도로 건너편에는 교육도시답게 교통대학 정문이 마주하고 있었다.

 

우중에 차는 화청지로 향했다.

시원하게 뚫린 시내 간선 도로변에 분홍빛 아카시아 가로수가 물기를 머금고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이어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패하강”을 지나고 있었다.

역시 고속도로변은 아름다운 조경수로 단장을 해두어 여행객 시선을 즐겁게 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뿌연 운무 때문에 주위의 경관을 볼 수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드디어 역사를 뒤 흔들고 비운 속에 생을 마감한 양귀비 숨결이 살아있는

당나라 별궁 화청지(華淸池)에 접어들었다.

 

화청지는 서안에서 30여 km 떨어진 여산(1274m) 남서쪽 자락의 온천지로 주(周)나라. 진(秦)나라. 한(漢)나라에서도 이용했고 당(唐)나라 때부터 화천궁으로 명명하여 당 현종과 양귀비(719~759)의 로맨스가 있는 곳으로 3,000년의 역사를 가진 곳임.】

 

화천지 입구 도로변 가로수 사이로 길게 드리운 붉은 가로등이 이색적이다.

화청지 정문 입구 맞은편에 매력적인 양귀비의 자태와 이를 바라보는 현종 그리고 각종 악기를 다루는 무희들의 거대한 청동 조각상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정문을 들어서니 멀고 가까운 곳의 다양한 건물들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좌측으로 조금 들어가니 넓은 공연장이 나왔다.

이곳을 옆에 끼고 붉은색 기둥과 화려한 단청을 한 구불구불한 낭하를 지나니 이곳저곳에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고풍스런 건물들이 반기고 있었다.

 

명서대를 지나 하얀 대리석의 양귀비상이 있는 광장에 오니 우산을 쓴 관광객들이 앞 다투어 사진을 담느라고 북새통이다.

 

 

모두 예정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서인지 몰라도 비가 내려도 관광객이 많았다. 우리일행은 나중에 이곳에 다시 들리기로 하고 양귀비 목욕탕을 비롯한 여러 목욕탕과 온천수가 솟고 있는 곳 등을 둘러보았다.

 

1936년 12월 서안 사변 시 장개석이 부하직원 장학량에게 체포 감금되어 사용했던 오간청에 집무실. 회의실. 침실 및 대리석 실내 욕조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오간청 앞 연못에는 예쁜 수련들이 함초롬히 비를 맞으면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비는 계속 내려도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조금 높은 곳에 올라가 화청지 전경을 내려다보는데,

욱어진 나무가 자꾸만 시야를 가려 아쉬웠다.

비가 오는데도 멀리 여산 산정으로 오르내리는 케이블카도 보였다.

마지막으로 양귀비 상을 영상으로 담고 가까이에 있는 병마용갱으로 향했다.

 

조금 가니 병마용갱 입구 주차장이다.

역시 많은 관광버스와 관광객이 줄을 잇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삼겹살로 점심을 하고 빗속을 걸어서 병마용갱으로 향했다.

 

한참을 걸어 넓은 광장을 지나 거대한 1호 갱(면적 약 14,200평정도)에 들어서니 영상을 담기가 어려울 정도로 관광객이 만원이었다.

 

병마용갱 1호갱 내부

 

2200년 전에 만들었다는 토병은 (키가 184~197cm) 섬세하게 조각으로 만들어 1천도의 온도에 구어서 진시황(BC 259~210, 신장 196cm, 체중 135kg 였고, 49세에 사망 할 때까지 폭군으로 군림했다.)의 사후 지킴이로 만들었다는데 그 규모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1호 갱은 아직 발굴중인데 병사들 지역이란다.

 

가까이에 있는 3호 갱은 더 깊이에 있었다, 이곳은 지휘소이고 계속 발굴 중이다. 다음은 2호 갱에 들어서니 1호 갱과 비슷한 규모이다.

이곳은 기마병 주둔지라는데 극히 일부만 발굴하고 대부분 표토만 걷어낸 상태였다.

 

8천여 점의 병사와 130개 전차 520여점의 말이 있을 것으로 추정 하는데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리고 모두 아름답게 체색을 하였다는데, 발굴하여 노출이 되면 채색이 바래어 지는 것을 현대 첨단 과학 기술로도 대책이 없다니 아쉬웠다.

 

2호 갱에 완제품 토병을 복잡한 관광객 사이로 촬영하느라 지체하다가 일행을 놓쳤다. 실내가 약간 어둡고 사람이 너무 많아 주위를 몇 차례 왕복으로 찾아보아도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완제품으로 출토된 것임.

 

 

일행을 놓치면은 다니지 말고 그 자리에 서 있도록 당부를 하기도 하고, 호텔 전화번호를 갖고 있어 안심은 되지만, 필자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생길까 염려스러워 마른땀이 났다.

 

다른 관광객은 거의 우산을 접어들고 있지만 필자는 노란 비닐우의를 입고 있어 쉽게 찾으리라 생각 했는데 찾지를 못했다.

 

일행이 멀리 간 것으로 알고 가이드에게 전화를 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보려고 해도 실내가 어두웠다. 제일 밝은 곳으로 가도 글자가 보이지 않아 애를 쓰고 있는데, 같이 간 일행이 필자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왔다.

 

처음에는 필자를 부르는 소리가 실내울림으로 다가와 구별이 안 되었다.

비닐우의 입은 사람은 필자밖에 없어 쉽게 찾았다고 했다.

필자가 비닐우의 입은 것은 우산을 쓰고 사진촬영이 어렵기도 하지만,

방수 카메라이기에 노출해서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2호 갱을 나와 병마용갱 박물관을 잠시 둘러보고 셔틀버스를 타고 1.5km 떨어진 진시황릉으로 향했다.

 

진시황릉은 기원전 246년부터 30년간 높이 76m, 넓이 둘레길이가 2000m의 세계최대의 묘지로 인부 70만 명을 동원 하여 조성하였고, 완공 후 도굴방지를 위해 인부들을 생매장하였다고 했다.

 

왕궁을 옮긴 것 같은 규모로 수은이 흐르는 100여개의 강과 수십 개 망루를 기진 토성에 온갖 보물 등을 매장하고 있다는데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진시황릉 박물관과 진시황릉 쪽으로 거대한 진시황릉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수백 미터나 떨어진 작은 산 같은 진시황릉을 위치 확인(부근 일대는 평야지대 임)으로 만족해야 했다. 진시황릉은 도굴도 개발도 안되어 있었다.

 

버스는 다시 화청지 앞을 지나 고속도로를 통과 서안시내로 들어섰다.

서안시내는 고층 아파트를 계속 짖고 있어 얼마 안가서 빌딩숲을 이룰 것 같았다. 교통 체증이 아주 심하다.

 

오후 7시가 지나니 일부 건물에 네온사인 등 조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는 장안성곽을 따라 거북이걸음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지상에서 성벽을 비추는 은은한 조명과 성벽위의 요철(凹凸)라인 따라 들어온 조명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더구나 곳곳에 있는 성루(城樓)의 화려한 조명이 4월말 신록(新綠) 속으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교통체증 덕분에 성곽의 화려한 야간 조명을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성 밖 주위의 일부 아파트 옥상에는 정각처럼 기와지붕을 만들어 야간 조명을 하고, 고층건물마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서안시내를 별천지 풍광으로 바꾸고 있었다. 호텔에 도착하니 비는 그쳤다.

하루 종일 빗물에 젖은 발을 씻고 잠자리에 들었다.

 

 

2014년 4월 22일(화요일 맑음)

 

아침에는 밝은 햇빛이 호텔방으로 스며들고 있어 오늘은 즐거운 관광이 될 것 같다. 아침 10시경에 중국 오악중의 하나인 “서악 화산“으로 출발했다.

 

지난밤에 지나왔던 장안 성곽을 지난다.

도로변에 늘어선 만개한 하얀 아카시아 꽃이 하얀 미소를 짓는다.

 

환산까지는 120km 2시간 소요 예정이다.

하늘아래 제일 험한 산 “화산” 중화라는 “화(華)”자는 화산에서 유래되었다고 했다. 또 화산은 도교의 발원지기도 했다.

 

시내를 잠시 벗어나 서안과 상해를 연결하는 8차선 “연곽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이정표를 보니 화산까지는 100km 남았다.

 

고속도로변은 온통 보라색 꽃 오동나무로 뒤덮여 있는 것 같았다.

간혹 수벽(樹壁)을 이루는 버드나무 사이로 보이는

보리를 비롯한 농작물이 싱그럽기만 하다.

 

일부 낮은 야산을 지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평야지대다.

날이 맑아도 화산이 가까워 올수록 운무가 짙어가고 있어

처음 찾아가는 오늘의 산행이 허탕을 칠까 걱정스러웠다.

 

화산입구에서 중국현지 식(食)중식을 끝낸 후 화산매표소에 들렸다.

입장권을 파는 실내 대형매표소안 홀의 50여 평이나 되어 보이는 바닥에

어떻게 만들었는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화산의 실물입체칼라 영상을 축소하여 설치하고, 그 위를 강화유리로 덮어 관광객이 밟아 다니면서 둘러보도록 하였는데,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올 정도로 신기했다.

 

이어 대기하고 있는 셔틀버스로 갈아타고 험산 계곡을 구불구불 몇 번이나 S자형 좁은 도로 따라 20여분이나 올라가는데 차장 밖 풍경이 고개를 아프게 할 정도로 절경이었다.

 

계곡물소리가 요란한 케이블카 선착장에 도착하니 많은 버스와 관광객이 와 있었다. 짙은 운무 때문에 아무래도 멀리 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았다.

 

6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운무를 뚫고 70~80도 경사를 올라가니 위쪽은 거짓말같이 활짝 개어 있었다.

어제 비가 내려서인지 곳곳에서 스며 나오는 물들이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지표면에 낮게 오르는 케이블카 발아래로 이름 모를 작은 꽃들이 앙증스럽게 환한 미소로 반기고, 한층 물오른 연초록 잎새도 물이끼도 생기 넘치는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케이블카 종점에 도착하니 깎아지른 절벽 아래에 집을 지어 상품매장과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었다. 다시 50여m 산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화강석 자연바위를 계단으로 다듬어 활용을 하는 곳이 많았다. 산 능선에는 먼저 도착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능선에서 우측으로는 북봉(北峰), 좌측으로는 동봉을 지나 서봉으로 가는 길이다. 먼저 기암괴석 사이로 바위를 깎아 만든 가파른 절벽이 있는 동봉으로 향했다. 이곳저곳에 공간이 있는 곳은 다양한 시설물들을 해두어 관광객의 편의를 제공하고 있었다.

 

 

동봉 가는 길 (멀리 보이는 것이 서봉 임)

 

 

보라색 라일락이 많이 보이고 철늦은 개나리도 가끔 보였다.

무엇보다도 암반사이에서 시원한 솔바람을 토해내는 수형이 아름다운 큰 소나무를 만나는데 그 생명력에 다시 한 번 시선을 돌리기도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보기위해 서두르다보니 숨이 턱에 차고 땀이 비 오듯 했다. 연초록 바람이 불어와도 즐길 여유가 없었다.

1시간여 만에 동봉에 도착하니 백여 미터나 되어 보이는 절벽이 현기증을 일으키게 한다.

 

깎아지른 커다란 서봉(제일 높은 봉우리. 해발 2087m)이 앞을 가로막고 사방 기암괴석 사이로 낮게 내려앉은 운무가 신비스러운 풍광의 극치(極致)를 이루어 신선이 된 느낌을 갖게 했다. 서봉은 눈요기로 끝내고 아쉬운 발길을 돌렸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서둘러 내려와서 다시 반대편 북봉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올라갔다.

 

북봉 정상에 오르니 맞은편 산봉우리들 부근은 산중허리 하얀 기암괴석 사이사이로 자라는 초목들이 마치 수묵화 같은 아름다운 풍광을 그려내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림 같은 광경이라 동영상으로 열심히 담았다.

 

북봉 가는 길

 

3시간여의 산행을 하고 하산 길 케이블카 부근은 운무기 씻은 듯이 걷히어 올라올 때 보지 못한 산세(山勢)들을 즐겁게 둘러볼 수 있었다.

 

어제내린 비 때문에 계곡물소리는 더욱 청아하고

이곳저곳에 암반을 타고 내리는 실 폭포가 더위를 식혀 주었다.

 

다시 셔틀버스로 내려오면서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했다.

대기하고 있는 관광버스로 갈아타고 서안으로 향하는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모두가 힘든 산행 탓인지 조용했다.

 

 

 

서안시내가 가까워오니 우측으로 병마용 가는 길 이정표에 서안까지 19km로 나온다. 화청지와 병마용갱이 서안에서 가까운 것을 새삼 느꼈다.

 

좌측으로는 멀리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늘어서서 따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아파트들이 산재해 있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시내 간선 도로에 들어섰다.

 

현재시간 오후 6시 16분 시내로 들어가는 6차선 도로가 차량으로 꽉 막히어 거북이 걸음이다. 상당한 시간이 지체 되었지만 저녁식사 후 8시부터 극장에서 장안의 역사를 알 수 있는 “당극 13조(朝)”라는 가무 쇼를 즐겁게 보고 10시경에 호텔에 도착했다.

 

2014년 4월 23일(수요일 맑음)

 

아침 10시 호텔을 나와 팔로군 기념관으로 향했다.

중국역사의 분수령이 된 서안사변과 관련된 팔로군 사령부가 있던 곳이다.

시내에 자리 잡은 팔로군 사무처 기념관은 비교적 초라했다.

 

팔로군 전신은 홍위부대이고 그 사령관은 주덕(朱德)이다.

1937년 항일전쟁을 위해 제8로군으로 개칭하였고,

1947년 인민해방군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1936년 12월 장학량(장개석의 부하)이 항일전쟁이 우선이라고 판단하여 화청지에 장개석을 체포 감금하는 국공합작을 일으킨 서안사변이 있었는데, 이때 장학량이 장개석의 명령대로 2만 명밖에 안 되는 인민군을 먼저 제거 하였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 중국의 공산당이 존재하였을까 ?

 

이곳에는 등소평을 제외한 중국의 유명 인사들이 거쳐 갔다고 했다.

특히 6.25사변 정전 협정당시 중국 대표자인 “이극농”도 이곳에서 생활하였다고 했다. 벽에 이름이 붙어 있었다.

 

또한 주덕주은래의 검소한 숙소가 잘 보존되어있었다.

손문. 모택동. 등 사진도 게시되어 있었다.

군인들 숙소는 숙소 입구부터의 긴 통로가 원통형 출입문들이 이색적이었다.

 

차는 다시 비림 박물관으로 향했다. 먼저 장안성 성벽아래 연접하여 있는 문서거리였다. 많은 서예가들이 다양한 필체의 글씨를 전시 판매도 하고 필묵과 인장도 새겨 팔고 있었다.

시원한 나무그늘 밑을 거닐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둘러보았다.

 

장안성은 명나라 홍무제 3년에서 11년 사이에 지었다고 한다.

규모는 길이 13,74km, 높이 12m, 성위의 폭 12~14m이다.

즉석에서 54위안(한화 10,000원)입장 티켓을 주고 성벽위로 올라갔다.

 

장안성 위의 광경 (폭 12~14m 임)

 

600년 전에 긴 장방형 거대한 성을 벽돌을 구워서 쌓아 만들었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했다. 성내는 기와지붕(2층)으로 이루어진 고풍스런 옛날 집들이 많고, 성내 중심 일부는 10층 내외의 현대식 건물이 있지만, 상당히 통제를 받는다고 했다.

 

성 밖은 미려한 현대식 고층건물이 성을 따라 늘어서 있다.

성벽 밖 바로 밑으로는 외적 침입을 막기 위해 호성하(護城河)=깊은 수로를 만들었는데, 물이 가득하다. 며칠 후 (5월 1일)부터 이곳에 유람선을 띄워 관광지로 개방하기 위해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었다.

 

성(城)내외를 비롯하여 야간조명이 화려 했던 성루(城樓)등을 영상으로 담고 성을 내려왔다. 그리고는 바로 앞에 있는 비림 박물관내로 들어갔다.

 

비림은 공묘(공자 사당)가 있던 자리에 부지 3만 평방미터 에 당나라 시대까지 중국 전역에 산재 방치된 각종비석과 석각조각품 들을 송나라 때(1087년)시작하여 체계적으로 정리 보관 했다.

 

비림박물관은 7개의 비석 진열실. 8개의 비정(碑亭). 두 개의 석각예술 실. 6개의 묘지 진열복도 등이 있다. 진한시대부터 각 시대의 비각 능묘석각, 종교석각이 있다.

 

비석은 모두 2300여점이 보관되어 있고, 시대별로 유명 서예가의 필체와 문인들의 글 등, 5천년 중국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제3호실에는 흥경공원 조감도를 비석에 남겨두어 고증(考證)복원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또 하나 조조에게 붙잡힌 관운장유비를 그리며 쓴 시의 글자를 대나무 잎 그림으로 음각을 하였는데, 처음 보는 사람은 대나무 그림으로 착각 할 정도였다. 이것을 탁본한 것을 보여 주는데 멋진 필체로 나타나는 것을 보니 정말 신기했다.

 

한문도 필체도 잘 모르지만 설명을 열심히 들으면서 다리가 아프도록 둘러보았다. 이어 인접한 석각 전시실에서 옛날 중국의 유명 인사나 부호(富豪)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로 석물조각과 묘지 부장품. 비문. 석각들을 호기심의 눈으로 담았다.

 

3시간여를 관람하고 나오니 상당히 무덥다.

버스는 다시 시내 중심부에 있는 대흥선사(大興善寺)에 도착했다.

서안 최고의 사찰로 265년부터 289년까지 축조 되었다.

수나라 때 확장공사를 하고 당나라 때 크게 번성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신라 헤초스님이 머물렀다고 한다.

 

 

시내 중심부에 있어서 신도들의 이용에 편리 할 것 같았다.

필요한 몇 곳을 영상으로 담고 5시경에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쉬었다.

 

6시경에 시내 중심부로 저녁식사를 위해 가는데 역시 교통체증이 심했다.

거의 한 시간 만에 도착하여 가족원룸에서 중국식 샤브샤브 특식으로 저녁을 했다.

 

저녁식사 후 밖을 나오니 휘황찬란한 네온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고층 건물마다 관광객을 위한 네온사인을 쏟아내고 있었다.

현대화 되어가는 서안시의 발전상을 느낄 수 있었다.

 

 

2014년 4월 24일(목요일 맑음)

 

10시 30분에 서안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역시 장안 성문을 벗어나 계속 성벽 옆을 지나고 있었다.

온전히 반 바퀴 돌고 난후 성벽으로부터 벗어났다.

 

공항 가는 도중에 한나라시대 때까지 장안의 중심지였다는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방치된 땅을 지났다. 철저하게 흔적을 없애고 공터로 남아 있는 것이 조금은 이상했다.

현재의 서안시는 당나라 때부터 수도로 이용해 왔다고 한다.

 

서안국제공항에서 공항 사정으로 예정시간 보다 1시간 늦게 출발(아시아나 oz 348)하여 인천공항에는 오후 6시 20분경에 무사히 도착했다. 끝

 

 

서율/박신영 14.05.01. 08:36 new
역사에서 본 그대로 설명도 시진도 여행 잘했습니다 무사귀환 감사 하구요 고맙습니다

 

雲岩/韓秉珍 14.04.30. 19:30
선생님 중국 서한 여행기행문과 사진을 올려주셔서 잘 감상했습니다
기행문 감상하면서 꼭 그곳에 다녀온 느낌으로 머물다 갑니다
4월의 마지막 밤 건강 유의하시고 평안한 보내시고 5월 맞이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안희터 14.04.30. 19:31
직접 보고 온 듯한 생동감 있는 여행기를 잘 읽었습니다. 역사 공부도 되었구요.
꾸준히 가끔 올려주는 글 솜씨에 격려의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서안 여행기 짖접 가본 곳처럼 상세해서 좋네요
고운 글 고맙습니다

 

박종배 10:38 new
같이 여행하는듯 했습니다, 일행을 잃었다는 대목이 실감나는군요, 잘보고 많이 배워감니다.
 
은고개 14.05.01. 02:49 new
함께 여행하듯 사진을 보고 설명과 느낌을 적어 주신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부럽네요. 이렇게 여행기를 잘 정리해서 쓰실 수 있음이.....
  
黃京姬 14.05.01. 13:50 new
저도 여행을 가면 ...기행문을 쓰지요 ... 자세히 잘 쓰셨네요
여행은 역시 ..많은 추억을 담고 오지요 감사합니다..
 
백초 09:36 new
장편의 여행기 ....정말 대단하십니다 머리속에 기억하기도
힘든 여행일진데.........

 

가을하늘 14.05.01. 05:17 new
3천년 역사를 가진 수도였던 서안을 다녀오셨네요
기행문을 앍고 몇년전 가본기억이 새록새록 돋아납니다 즐감합니다

 

꽃과나비 14.05.01. 15:39 new
중국 여행지 구경잘하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눈보라 14.04.30. 21:17
중국에 여행다녀 오셨네요~
세계여행 여유를 즐기시는 문재학님 참 즐거운 인생입니다

 

liuyingshi 14.05.01. 15:52 new
덕택에 구경 잘했습니다.감사합니다.

 

   꽃사랑 14.04.30. 21:48

서안 여행기 한참 읽엇네요...ㅎ
고운밤 되세요~
 
호호야(화성) 14.04.30. 22:53
님덕에 그냥 구경 잘 하였습니다. 중국 ㅎ 대단하지요

 

썬파워 14.05.01. 01:12 new
우와~멋진 여행하셨습니다.
기암 괴석으로 장관을 이룬 북봉,서봉,동봉이 절경이군요.
병마용갱은 세계8대 경이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대단합니다.
긴 해설과 함께 즐겁게 감상해 봅니다.감사합니다.소산님!
 
봉이선달 14.05.01. 10:26 new
자세한 설명과 깨끗한 사진 도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나폴레옹(김석우) 14.05.01. 17:39 new
아주 자세하고 섬세한 여행소개와 현장 설명에 감사 드립니다. 사진까지 상세하게 설명해 주셔서...너무 고맙습니다.

 

자세한설명과멎진사진고생하신덕에구경잘했읍니다

 

커피사랑 14.04.30. 19:11
어마어마 하네요
잘 올려주신 사진과 글 너무나 고맙게
감상하엿습니다 ^^
 
카라얀 14.04.30. 19:17
잘 다녀오셨군요
잊지못할 멋진 추억으로
가슴에 담아두시기 바랍니다
긴 글 올려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

 

설까치 14.05.01. 00:18 new
좋은곳 구경 잘하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하얀밍키 14.05.01. 05:57 new
여행은 항상 즐거운 것
좋은 곳 다녀 오시었네요 건안하시고 행복하세요^^

 

노현희 14.04.30. 20:04
중국의 대단한 곳곳을 다녀오셨군요

 

달빛소나타 14.04.30. 23:16
즐청에 즐감하고 다녀 갑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소향민정 14.05.01. 03:37 new
좋은 글 잘 보고 다녀갑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감사해요.
 
님의향기 14.05.01. 19:41 new
좋은 작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