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백두산 여행기 2

소산1 2016. 8. 6. 18:39

백두산 여행기 2|소산/문재학님

소산/문 재학 | 조회 101 |추천 1 |2016.08.02. 15:21 http://cafe.daum.net/2080seoul/Tsin/175 

백두산 여행기 2

(2016. 7. 22~7. 28)

소산/문 재학


2016722() 맑음

미른 장마 속에 7월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속에 오후 느지막이 김해공항으로 향했다.

수년 전 압록강 쪽(서파)으로만 꽁꽁 얼어붙은(531) 백두산 天池를 내려다보았기에 깨끗한 푸른 물 천지 못을 보기위해 두만강 쪽(북파)으로 기대를 안고 가는 것이다.


지방(김해공항)에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해외를 나가는지 탑승구 앞에는 앉을 자리도 없이 초만원이었다. 대부분 중국이나 일본. 동남아 등으로 나가는 분들이다.

김해공항 확장이 시급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1020분 지루한 기다림 속에 LJ802(진에어)편으로 중국의 흑룡강성 목단강시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3시간이다. 250석은 되어 보이는데 빈자리 없이 만원이다.

필자는 제일 뒤(비행기 꼬리날개)59번의 E석이다.


잠시 졸고 있는 사이 목단강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현지시간 125(한국시간 723일 새벽 15분이다. 시차는 1시간이다.)

20분 빨리 도착 하였기에 준비가 안 되어 10여분이나 비행기 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비행기 창밖에는 야속하게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입국심사를 끝내고 밖을 나오니 교포 3세 현지가이드 김미화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우중에 목단강 시내 밤길을 가는데 도로면이 요철이 많은 지 버스가 심하게 덜컹거리고 있었다.

20여분을 달려 새벽 130분 경(현지시간) 大福源 酒店 호텔 901호실에 투숙했다.


2016723() 흐림

아침에 일어나니 다행히 비는 그치고 흐리기만 했다.

흑룡강성 면적은 460,000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3900만 명이다. 목단강시는 면적이 40,355평방키로 이고, 인구는280만 명이다. 목단강 시내 인구는 약 100만 명 정도이다.


9시에 호텔을 나와 八女投江碑 공원으로 향했다.

우리 조선족 안순복. 이봉선을 포함한 8명의 항일 여전사들이 1938년 일본군과 격전을 벌리다 목단강물에 몸을 던져 순국한 것을 기리기 위해 커다란 조형물( 길이 8.8미터, 높이 13미터의 화강석)을 만들고 또 부근 일대의 공원은 화사한 꽃들과 아름다운 정원수로 단장해 두었다.



목단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조성한 공원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들고 있었다.

공원 주변의 숲속 뒤로는 미려한 현대식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공원 뒤쪽으로는 그날의 함성이 들리는 듯한 강폭이 넓은 목단강(만주어로 구비굽이 흐른다는 뜻의 백두산 기슭을 발원지로 한 송화강 상류임)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水量이 적어 하상이 들어나고 화려한 유람선은 갯벌위에 비스듬히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강변을 따라 호화아파트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러시아가 가까운 국경지대라 건물이 러시아 풍을 가미 했다고 하는데 정말 외관은 아름다웠다.


이곳저곳을 영상에 담고 발해유적지가 있는 동경성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1시간 정도이다. 목단강 시내를 벗어나기 전. 어제 개업했다는 외관이 화려한 백화점을 지나기도 했는데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중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도로변 가로등이 고깔을 거꾸로 세운 것 같은 형상이 이색적이라 동영상으로 담았다.

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중국의 어느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형 야립 간판이 줄지어 서있고,

대평원에 끝없이 이어지는 무성한 7월의 옥수수가 시원한 풍광을 그려내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시멘트 포장상태가 불양하여 승차감이 좋지 않았다.

옥수수 재배지 사이사이 곳곳에는 벼농사. . 담배. 등 작물을 재배하고 있었다.

가끔 대형 배관이 휘감겨 있는 공장들도 보였다.


1030분경부터는 도로변 수벽을 이루는 몽실몽실한 수양버들과 한편으로는 바람에 나부끼는 버드나무가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주위의 풍광에 젖어 달리다 보니 11시경에 東京城 입구 요금소에 도착했다.


동경성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동경성 발해(渤海) 5()의 하나다. 발해평원 중심부에 위치해 있는 발해국도 상경 용천부의 소재지이다. 지금의 滿洲 영안 남방 약 40km 地點, 영고탑(寧古塔) 근처에 있다. 1933~1934년의 發掘로 그 전모가 밝혀졌다고 한다.


요금소를 통과하여 시골길을 얼마가지 않아 발해 중학교가 나오고 이어 5분정도 가니 1993년도에 개관했다는 조그마한 발해 박물관이 나왔다.

그리고 가까이에 있는 발해유적지(궁터) 정문 앞 주차장에서 내렸다.


고구려가 멸망 후 서기 698大祚榮이 만주일대의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규합해 발해를 건국하고 세력 확장을 하여 926년 요나라에 멸망 할 때까지 228년간 만주를 지배했다.

그 기간 동안 수도였던 上京龍泉府의 발해유적지(궁터)를 찾은 것이다.


버드나무 사이로 100여 미터 들어가 궁전의 정문 입구에는 古井이라는 돌 간판 옆에 발해시대 때의 덮개를 씌운 우물이 있고 가까이에 그 유래를 명기한 대형비석이 숲속에 숨 쉬고 있었다.


제일처음 맞이하는 五鳳樓(현무암으로 쌓은 기초의 규모가 동서 42m, 남북 27m, 높이 5m) 좌우 출입구 중 좌측으로 돌아 망루위로 올라가니 현무암으로 된 그 옛날 추출 돌이 일정 간격으로 있는데 웅장한 그 규모를 상상케 했다.



망루를 내려와 궁전의 규모 둘래가 16km,(동서 4.6km, 남북 3.34km)로 좌측 회랑을 거쳐 중앙에 있는 1궁전으로 향했다.


넓은 궁전 뜰에는 목 백일홍이 다양한 색상으로 가득피어 쓸쓸한 옛 영화를 달래는 것 같았다.

네모꼴 외성을 4m높이 토성으로 두르고 그 중앙 북방에 왕궁(내성)을 쌓았던 것이다.


내성 남문에서 외성 남문으로 일직선으로 이어진 도로(失雀大路)를 중심으로 동쪽을 좌경(左京) 서쪽을 우경(右京)으로 가르고 이것을 다시 여러 조방(條坊)으로 나누었다.

 

내성 안에는 5개의 궁전 터가 남아 있었는데 다 돌아 볼 수는 없었지만.

어느 곳이나 추출 돌만 남아 있어 그 위에 세워진 거대한 건물을 상상 하고 화려했을 궁중생활을 그려보면서 30여분을 둘러보았다.


 이 유적지의 입구에 발해상경용천부유적 안내비석이 있다.

그 비문에는 '서기 698~926년간에 섰던 발해국은 51562주를 설치한 강대한 나라로 이곳이 그 수도였던 자리다. 라고 설명하고 있단다.


허허로운 만주 들녘에서 1,090여 년 전의 궁전과 절은 사라졌지만, 전각을 떠받쳤던 아름드리 주춧돌은 해동성국의 영화를 말해주는 듯했다.





유적지를 나와 조금 전에 지나간 발해 박물관(소규모)에서 각종유물과 발해궁전의 모형도와 생활상을 그림으로 둘러보았다.


그리고 현지식으로 점심을 하고 1250 敦化市로 출발했다. 2시간 30분 소요예정이다.

120분 경 숲속에 잠겨 있는 鏡泊湖(해발 351m에 위치한 호수로 규모가 길이 45km. 폭은 0.3~6km, 면적 95 평방키로의 거대한 호수임) 일부가 나타났는데 물고기가 많이 잡히고 풍광이 아름다운 곳이 많다고 했다.


130분 현재 이정표에는 돈화시까지 105km남았다는 안내를 하고 있었다.

야산을 지나고 있는데 부근의 농지들은 전연 경지정리가 되지 않았고 저지대에는 주로 벼가 재배되고 그 이;외에는 콩. 옥수수. 등 전작물이 7월의 무더위 속에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삶이 무척 풍요로워 보였다.


210분경에는 도로를 횡단하는 대형안내판에는 흑용강성을 지나 길림성의 환영인사 간판이 눈에 확 들어왔다.


吉林省은 면적 187,400평방키로, 인구 28백만 명이고

돈화시 분지는 면적 약 11,963 평방키로, 인구 48만 명으로 조선족이 10%정도라 했다.

돈화시에도 곳곳에 발해유적지가 있다고 했다.


거리에 간판은 모두 한글이 위, 아래는 중국어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했다.

그리고 이곳 시골에 있는 조선족 젊은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떠나고 부모들마저 시내로 가고 빈집만 남아 있는 곳이 많다고 했다.


도로변 이정표들도 모두 한글로 되어 있어 반갑기 그지없었다.

백두산 밑에 첫 마을 二道白河로 향하는 현재시간 320분 주변은 콩과 옥수수를 재배하고 있는 시골길을 달리고 있다.


이어 340분부터는 울창한 숲속을 달리다가 長白山大關東文化園이라는 휴게소에 잠시 쉬었다가 야산 丘陵地帶를 개간하여 옥수수가 뒤덮고 있는 풍요로운 집단재배지를 달렸다.

부근에 농가 주택들은 전부 지붕에 굴뚝들이 있는데 겨울의 혹한을 짐작케 했다.


이도백하로 가는 도중에 조선족 할머니가 운영하는 강원도 식당에서 저녁을 하고 20여분 더 달려 二道白河(인구 15만 명중 조선족이 6%이다.)에 도착 하였는데 관광지답게 건물들도 화려하고 네온 불빛도 현란했다.


그리고 도로마다 승용차와 버스가 성수기를 맞아 만원이었다.

이곳에서 백두산의 서파와 북파를 올라가는 길목이라 그러한지 한창 개발 중이라 했다.

우리는 630분경에 군안호텔 1418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3724() 흐린 후 맑음

아침 7시에 호텔을 나와 백두산 서파로 향했다.

산문 주차장까지는 1시간 정도소요 예정이다.


출발 할 때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어 모두들 오늘도 백두산 천지를 보지 못할까 걱정이다.

구불구불 2차선 숲속 산길을 싱그러움을 안고 오르고 있었다.

장백산(한국은 백두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금나라 때부터라 했다.


1702년 마지막 폭발로 휴화산이 된 백두산은 2750m16개 봉우리 중 제일 높은 장군봉은 북한쪽에 있다.

그리고 천지 못은 해발 2,194m 이고 둘래가 14km, 평균 깊이가 213m, 최대수심 384m이며 水量195,500입방 미터나 된다.

그리고 수면의 60%는 북한 구역으로 두만강. 압록강. 송화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748분 현재 장백산 주차장까지 36km 남았다는 이정포가 樹林 속에 나타났다.

올라가는 도중에 날이 맑아지는가 했는데, 다시 검은 구름이 오락가락 애를 태우더니 755분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염려가 현실로 바뀌어 모두들 크게 실망을 했다.


82분 현재 주차장까지 17km 남았다.

8시 지나면서 부터는 좁은 도로 좌우에는 수피가 하얀 자작나무(90% 이상)가 하늘을 찌를 듯 울창한 숲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도로 路肩을 따라 황금빛 루드베키아가 활짝 웃고 있었다.

820분 현재 2km남았다, 다 온 것이다.



입장료는 경로우대로 면제를 받았으나 셔틀버스 요금은 85위안이었다.

입장권 체크를 하고 200m를 울창한 숲속에 木材步道를 깨끗하게 해두었다.


수고가 높은 樹林 속을 상쾌한 기분으로 통과하니 주차장을 가득매운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밀려오는 관광객을 빨아드리고 있었다.


855분 우리 일행도 버스에 올라 비가 내리는 숲속 길을 달렸다.

관광객을 실고 꼬리를 물고 내려오는 버스가 좁은 길을 교차할 때 마다 불안했다. 다행히 비는 잠시 그쳐도 날은 잔뜩 흐렸다.


960분부터는 고산 평야지대가 나타나고 듬성듬성 보이는 입목은 樹高가 모두 낮았다.

고산지대라 식물의 생태가 변하고 있었다.

수많은 이름 모를 야생화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며 화사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다시 비가 내리는 속에 노란꽃과 코스모스 같은 연분홍의 키가 작은 꽃들이 가냘픈 자태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945분 주차장에 도착했다.

계속하여 내리는 비에 모두들 우의로 중무장을 하고 天池를 향해 1,468계단 900m를 안개구름 속에 오르기 시작했다. 비가 내려도 관광객이 너무 많아 힘들었다.


天池의 전망대에 오르니 5m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天地間에 자욱한 안개 때문에 天池를 볼 수가 없었다.

옛날과 달리 전망대 등 많은 시설을 해 두었고 관광객 안전을 위해 통제도 하고 있었다.


세찬 비바람이 불어도 끝임 없이 오르는 수많은 관광객은 모두 天池 쪽 난간에서 안개 속을 안타깝게 바라보다 발길을 돌리야 했었다.

그래도 안개를 배경으로 아쉬움의 영상을 담고 있었다.



우리일행도 주차장에서 12시에 만나기로 하였기에 안개가 걷히기를 고대 하면서 많은 한국 관광객들과 함께 기다려도 안개가 걷힐 기미가 보이지 않아 11시 반경에 아쉬움을 안고 하산 하였다.


필자는 몇 해 전에 이곳에 와서(531) 꽁꽁 얼어붙었지만 천지의 풍광을 동영상으로 담았기에 미련이 적었다.


하산 길에도 안개를 무릅쓰고 꼬리를 물고 끝임 없이 밀려드는 관광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70~80%는 한국사람 같은데 모두들 허행 할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울 뿐이다.


주차장에서 하산하는 관광객의 질서를 위한 새로운 시설 탑승지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금강대협곡으로 향했다.


도중에 뷔페로 중식을 한 후 130금강대협곡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는데, 햇빛이 쏟아지니 모두들 변화무쌍한 백두산 날씨를 실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가이드가 백두산 정상의 안개가 걷히면 다시 올라 가려고 했는데 그곳은 여전히 안개에 묻혀 있다고 했다.


148금강대협곡 주차장에 도착하니 이곳도 관광객이 만원이다.

나무로 만든 步道를 따라 울창한 숲속을 찾아들었다.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정도의 좁은 길이다. 그리고 일방통행으로 운영하기에 혼잡을 피할 수 있고 관광도 여유롭게 할 수 있었다.

울창한 숲속의 화산재로 이루어진 기묘한 바위 현무암의 형상을 1시간 정도 둘러보았다.


280분경 셔틀버스를 타고, 340분 산문에 도착하여 대기하고 있던 우리 관광버스에 올랐다.

시원한 에어컨을 즐기며 내려오는 길은 얄밉게도 하늘은 파랗게 개이고 햇빛은 눈부시게 부서지고 있었다.


도로변의 하얀 자작나무의 껍질이 햇빛을 받아 백설처럼 눈부실 정도였다.

지난밤 투숙했던 군안호텔5시에 도착하여 조금 쉬었다가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하고 발마사지 후 호텔에 오니 820분이였다.


2016725() 맑음

650분에 호텔을 나와 백두산 북파 주차장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30~40분 정도이다.

하늘만 보이는 숲속 길을 따라 가는 길 양측 路肩에는 루드베키아가 한창 노랑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숲길을 따라 대형 홍보 판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있었다.

47분 현재 산문 주차장까지 20km 남았다.


자작나무의 울창한 숲이 싱그러움을 더하고, 하늘은 더없이 맑아 오늘 북파 등정에서는 天池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717분 현재 10km 남았다는 안내하는 이정표가 반가웠다.


더디어 산문에 도착하니 맑은 날씨 속에 대형 주차장에는 버스가 이미 많이 와 있고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 일행을 놓칠까봐 두려울 정도였다.


100m 들어가니 붉은 글씨로 長白山 이라는 대형 글씨가 대형 검표소 건물 중앙에 환영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750분에 입장하여 셔틀버스에 올랐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 정말 복잡하고 번거로웠다.



이곳도 입장료는 경로유대로 무료였고 셔틀버스 이용료는 85위안(한국 돈으로는 약 15천 원정도)이였다.

숲속 길을 20여분 달려 811분 산악용 지프차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디를 가나 관광객 너무 많아 동영상 담으랴. 일행을 확인 하느라 바빴다.

잠시 후 1인당 80위안 차임을 내고 줄을 서서 한참 기다린 후 지프차(10인승)를 타고 백두산 정상으로 향했다.


출발지에서는 자작나무가 수고가 낮고 많은 가지가 있어 용재림으로는 질이 떨어지지만 이것이 고산지대 수림의 대표적 자태인 것 같았다.


꼬부랑길을 한참 오르니 곳곳에 앙증맞은 나리꽃 등이 시선을 끄는가 하면 無立木 지대에서는 이름도 모르는 화려한 야생화가 꽃밭 길을 이루고 그 사이로 지프차가 바람을 가르고 있었다.


까마득한 급경사 정상 부근으로 180여대의 지프차가 꼬부랑길을 꼬리를 물고 파란 가드-레일 사이로 곡에를 하는데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우리일일행도 안전벨트는 기본이고 손잡이를 꽉 잡아야 하는데,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그 길을 달리고 있었다. 보기 드문 것들을 체험을 해보았다.


820분에 출발하여 846분에 정상 부근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수많은 인파가 밀려들어 통제관들도 애를 먹고 있었다.


멀리 먹구름이 오락가락 하고 있어 혹시 이곳으로 몰려올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수백 명이 밀려 입장을 기다리는 시간이 一刻如三秋였다.



산 정상 능선으로 天池를 보고 있는 개미 때처럼 몰려 있는 관광객이 부럽기도 했다.

변화가 많은 백두산이라 갑자기 시야를 흐리는 날씨가 될까봐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도 쾌청한 날씨가 계속되는데 가이드도 이렇게 맑은 날씨는 흔하지 않다고 했다.

무더위 속에 비지땀을 흘리면서 정상의 天池를 향해 거북이걸음을 해야 했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서서 북적이는 인파와 안전을 위해 설치한 철책선 사이로 민족의 靈山. 玉水 같은 신비스러운 푸른 물을 영상으로 담고 주위의 화려한 자태를 자랑하는 連峯들을 시종 감탄 속에 영상으로 담고 담았다.



그 많은 인파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나머지는 전부 중국인이었다.

항상 만수위를 유지하고 있는 天池의 경이로움을 가슴에 담고 영상으로 담았다.


어제 안개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서파에서는 天池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데, 이곳 북파에서는 天池가 구역마다 다른 얼굴을 내밀고 있어 또 다른 재미를 맛 볼 수 있었다.


시종일관 관광객이 너무 많아 관광코스는 몸살을 앓고 있었고 사진촬영조차 어렵기만 했다.

부지런히 아름다운 주위의 산세와 天池를 영상에 담고 아쉬움을 안고 정상의 주차장으로 내려 왔다

.

다시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후 1025분 산악용 지프차를 타고 1045분에 숨쉴 사이도 없이 셔틀버스에 올라 비룡폭포(중국인 들은 장백폭포)로 향했다.


이곳의 셔틀버스는 좌석이 계단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 했다.

관광하기에 편리 하도록 내부를 개조를 했는데 처음 보는 것이었다.

10여분을 협곡을 달려 비룡폭포 주차장에 도착했다.


飛龍瀑布는 해발 1950m(한라산 높이와 같음)에 우치해 있는데 주차장에서 1,200m를 걸어서 올라가야 했다.

수많은 인파와 함께 넓은 계곡바닥에 설치한 목책步道와 나무다리를 따라 걷는데 물보라를 일으키는 시원한 계곡물 소리가 여름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30여 분만에 폭포가 보이는 곳에 도착하여 아름다운 풍광을 영상으로 담고 天池 물로 세수도 해 보았다.

장엄한 산세 정중앙에 68m비룡폭포의 굉음이 물보라를 삼키고 있었다.



폭포 옆으로 나있는 등산길을 따라가면 천지 못에 직접 손을 담글 수 있다는데 지금은 폐쇄하여 갈수 없어 아쉬움의 발길을 돌려야 했다.


목책 보도 길을 오르는 사람과 내려가는 사람을 일방통행으로 하여 무척 편리 했다.

한참을 내려오니 아름다운 칼라를 자랑하는 큰 암반의 물이끼가 비위를 뒤덮고 있고, 그 중앙에 쉴 새 없이 뜨거운 김을 뿜어내고 있어 화산지대임을 실감 할 수 있었다.


현란한 이끼와 내뿜는 김을 함께 영상으로 담았다.

이어 절벽에 파란이끼를 타고 흘러내리는 83도의 온천수에 모두들(동시에 10~45명이 이용 가능함) 손을 씻고 있어 우리 일행들도 손을 담가 보았다.


비룡폭포 주차장에서 1140분에 셔틀버스에 올라 산문에 1220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식당으로 향했다.


중식 후 130분에 용정시로 출발했다.

안도현 송강진이라는 작은 마을의 도로변에는 화단 조성이 잘되 있어 시선을 즐겁게 했다.

이어 한적한 숲속 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는데 교통표지판마다 한글은 위. 중국어는 아래에 표기되어 있었다.


도중에 장백산 진달래 축제장이라는 대형 야립 간판이 왠지 모르게 반갑게 다가왔다.

용정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310분경 화룡시 경계에 들으셨다.

이곳이 1920김좌진 장군이 이끈 항일 독립군들이 전투를 하여 승리를 한 청산리라 했다.


이국땅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싸운 임들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나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여 자연스레 두 손을 모으게 했다.


간이휴게소에 들려 뒤편 가까이에 있는 욱어진 낙엽송 사이의 장뇌삼 재배지를 둘러보았는데 10~50년생이 년도 별로 무성히 자란 장뇌삼을 처음 보았다. 탐스런 열매가 붉게 익어가고 19년생 한 뿌리에 5만원이라 했다.


지나가는 관광버스마다 차를 세우고 관광객이 찾아 들고 있었다.

그리고 부근의 작은 마을도 조선족이 살았는데 모두 한국으로 돈벌러가고 지금은 한인들이 살고 있다는데 고향을 등지는 현실에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중국전체에 조선족이 약 290만 명이나 되지만 대부분이 연변을 중심으로 살고 있단다.

지나가는 도로변 산비탈 경사진 곳에는 옥수수. 콩 등을 많이 재배하고 있었다.


완경사 산들은 전부 개간하여 각종 농작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삶이 풍요로워 보였다.

이곳 연변인들은 한국방송을 위성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시청을 하는데 이북 방송은 전연 볼 수 없다고 했다.


46분 현재 화룡시를 지나 용정시 경계에 들어서니 왕복 4차선이다.

도중에 만난 광활한 평강들은 조선인들이 개간하여 들판 중심으로 흐르는 헤란강 上流물을 이용하여 벼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이곳이 독립투사들의 주 무대였다고 하니 그 당시 분위기를 생각하며 다시 돌아보았다.

용정시 면적은 2,592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4만 명인데 80%가 조선족이란다.


진달래 민속 마을을 지나니 넓은 들판이 나오고 415용정시 까지 14km 남았다는 한글간판이 반가웠다.

용정시 입구에 들어서자, 우측에 약간 떨어진 작은 산이 비암산이고 일송정이라 했다. 멀리서나마 영상으로 담았다.


비암산은 항일운동의 근거지였다. 정상에 있던 일송정 소나무는 일본 사람들이 枯死를 시켰고 현재의 소나무는 2003년에 9번째 심어서 살린 소나무라 한다.


440분 용정 시내에 들어섰다.

시내 중심지를 넓은 헤란강이 흐르고 시가지는 온통 한글간판 일색이고 활기가 넘쳐 흘렸다.


곧바로 용정중하교로 들어서니 담장을 사이에 두고 대성 중학교.

대성중학교 입구에는 윤동주 시인의 흉상과 시비가 있었다.

옛날 건물 그대로 전시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건물 2층으로 올라가니 학교 연혁과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가 사진과 함께 상세히 전시되어 있었는데 기다리고 계시던 여선생님의 설명을 곁들인 안내를 받았다.


그리고 최초 학교 설립자인 이상설 선생의 항일투쟁과 민족교육을 쌓기 위해 사비를 털어 서산서숙이란 학교를 설립 하는 등 의로운 활동상황을 전시실 가득히 안내하고 있었다.

건물 밖에 있는 각종 홍보자료를 둘러보았다.


용정시 외곽지대에는 새로운 아파트를 많이 짖고 있었다.

용정시 부근에는 높은 산이 없고 시내를 벗어나니 사과. 배 재배지가 이어지고 있었다.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 연길시 외곽 비행장이 가까이 있는 곳의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삼겹살과 중국술로 기분 좋은 저녁식사를 했다.

갑자기 정전이 되어 잠시 동안 촛불 신세를 지는 추억도 남겼다.


연길시는 면적 1,748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65만 명인데 조선족이 60%라 했다.

넓은 중심도로를 따라 시내로 들어가니 지금까지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가로등 아래 여러개의 꽃 형상의 화려한 네온등이 너무나 아름다워 감탄이 절로 나왔다

.

동영상으로 담긴 했어도 육안으로 보는 것보다 못해 아쉬웠다.

연길시내를 넓게 흐르는 부루하 통하(만주어로 푸른나무 숲이 욱어지는 늪이라는 뜻)의 조명이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지나는데 강을 좌우로 고층건물을 비롯하여 화려하고도 현란한 조명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감동을 주었고 동영상으로 부지런히 담았다.


강변을 따라 조금 올라가 연길 장백송 호텔에 들어서니 밤 9시를 지나고 있었다. 418호실에 마지막 밤 여장을 풀었다.


2016726() 흐림.

고층 건물이 있는 시내 중심을 벗어나도 외곽지대의 깨끗한 건물들의 간판에는 전부 한글은 위 또는 앞에 중국어는 아래 또는 뒤에 올려서 사용하고 있었다.


중앙의 6차선은 차도로 도로 양측으로 4차선은 아름다운 정원수나 꽃으로 조경을 하였는데 땅이 넓은 중국답게 활용 하고 있었다.

아침 출근이라 그런지 운행되는 자동차는 한국 못지않게 자동차로 넘쳐나고 있었다.


연길시내에서 중국의 특산품 매장을 둘러보고 1250도문시로 향했다.

도문시 까지 소요시간은 1시간 예정이다.


도문시는 면적 1,142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5만 명의 국경 도시로 조선족이 59%나 된다.

북한과 러시아로 통하는 철도 등이 있어 교통의 요충지라 했다.


우중에 산길과 들판을 지나면서 만주 땅의 풍경을 눈으로 즐기면서 달렸다.

주위의 야산 구릉지대 등에는 옥수수 등 농작물이 빗물을 머금고 생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7백리 두만강 가는 길에 계속하여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138분경 강폭이 넓은 가야하라이 푸른 들판을 가로 질러 흐르고 있었다.

또한 곳곳에 하얀 비닐하우스가 있는데 재배작물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곧이어 도문시에 들어서고 이내 시내를 지나 바로 두만강변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장 앞에는 공원과 함께 넓은 광장이 있고 그 한옆에는 붉은 큰 글씨로 홍보를 하고 있는 간이 시장이 있었다.


곧바로 선착장이 있는 두만강 둑으로 갔다.

강둑에 올라서니 두만강의 중류지점이라는데 강폭이 50m 도 안되고 황토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었다.


강 건너편은 이북의 함경북도 온성군(穩城郡)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별로 넓지 않은 들판에는 옥수수 등 작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가까이에 있는 경사진 산은 입목이 없는 민둥산 이였다.


중국과 국경을 이루는 북한쪽의 산은 탈북을 막기 위한 속셈인지 몰라도 전부가 민둥산으로 만들어 두었다.


강변의 화려한 장식의 유람선(?) 선착장으로 내려가 붉은 구명조끼를 입고 큰대나무 형태의 11개로 엮은 것처럼(계림 같은 남방지역에는 실제 대나무 댓목을 이용함)하여 그 위로 철판을 깔고 의자 12(12인승)가 놓여 있었다.



요란한 모터소리와 함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데 중국 쪽으로는 건물 몇 곳에 중공기가 바람에 휘날리는 있으나 북한쪽은 풀숲이 죽은 듯이 고요했다.


철조망 같은 것은 보이지 않고 가끔 지붕만 보이는 초소랑 원두막처럼 만든 2층 초소에는 북한군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북한쪽으로는 사진을 촬영치 못하게 해서 조심스럽게 영상으로 담았다.


눈앞으로 달려오는 육중한 다리는 1920년도 건설한 겻으로 이 곳 부근에서는 북한과 중국을 오가는 유일한 다리로서 다리下部 철판 절반의 청색부분은 북한 소속이고 중국 쪽 절반은 황색으로 페인트칠을 하여 구분을 해 놓았다.


지금도 서로 왕래를 한다는데 차량과 사람이 다니지 않아 유령의 다리 같았다.

모터 보터는 급류를 계속 올라가는데 상류에 또 하나의 철교는 기차가 다니는 다리라 했다. 역시 지나가는 기차가 없어 흉물처럼 보였다.


15여분의 간단한 두만강 선상유람을 끝내고 하선하였다. 우중에도 관광객이 제법 많았다.

넓은 광장 옆 간이시장 내에 들려 다양한 상품들을 둘러보았다.


진기한 약제랑. 다양한 먹거리. 그리고 화려한 문양의 도자기를 영상으로 담고 230 목단강 시로 출발했다.

소요시간은 4시간이다. 차장밖에는 계속 비가 오락가락하고 멀리 산에는 안개구름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큰 개울을 끼고 달리는 325분 현재 부근의 작물은 대부분 담배이다.

일손이 많은 담배를 집단 재배하는 부근의 산들은 완경사 야산이다.


344 汪淸 시가지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도 조선족이 많이 살아서인지 간판 대부분이 한글이다.

왕청 까지가 길림성이고 이곳을 지나면 흑룡강성 구역이란다.


436분부터는 사방이 짙은 물안개로 덮이고 버스는 산길을 구불구불 돌고 있었다.

산길을 벗어나니 톱밥을 이용한 露地 목이버섯 재배지가 끝임 없이 이어지는데 이곳이 재배 적지라 했다. 한국에는 없는 처음 보는 풍경이었다차에 내려서 보지 못해 아쉽지만 신기했다.


7시 가까이 되어 목단강시 외곽에 도착했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시내로 들어가는 고속도로변 멀리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온통 하늘을 물들이고 있어 모두들 영상으로 담아냈다.


시내에서 현지식으로 저녁식사를 한 후 마사지를 하고 목단강 공항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11시가 되어 화물 탁송 준비를 하려는데, 웅성웅성 하더니 가이드가 와서 비행기가 안개 때문에 착륙을 못 심양하얼빈공항으로 돌다가 결국 김해 공항으로 되돌아갔다고 했다.


계기로 운행하는 비행기가 안개 때문에 착륙을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초 탑승 수속을 마치면 새벽 220분에 이륙할 예정이었다.


우리일행은 다행히 도착하는 같은 여행사 관광객을 위해 대기 하던 버스가 있고 호텔도 우리가 투숙했던 大福源 호텔이고 인원도 도착하는 예정인원이 22, 우리일행은 20명이라 밤중에 호텔 구하는 수고를 들 수 있었다.


다른 200여명의 관광객은 한밤중에 숙소를 어떻게 하였는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첫날 묵었던 大福源 호텔 1409호실에 들어오니 새벽 2시를 넘기고 있었다.


2016727() 맑음

아침에 일어나 14층에서 바라다보는 목단강 시가지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했다. 630분 식사를 하고 비행기 출발 여부를 기다렸다.


좀처럼 개일 것 같지 않던 안개가 10시를 지나서부터 사라지기 시작하여 11경에는 활짝 개어 목단강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 왔다.


곳곳에 아파트 등 신축하는 건물들이 많이 보였다.

천재지변이라 하루 연기하는 비용은 우리가 자담을 해야 했다


진에어 전용비행 시간이 어제와 같은 시간에 와서 새벽 220분에 출발 한다고 했다..

언제인가 청도에서 한국에 태풍 때문에 출발 못해 1인당 하루 호텔 숙박비가 한화로 7만원씩(식사비 제외) 부담했는데, 이곳은 여행사와 단체계약 단가로 1인당 밤10시까지 있기로 하고도 30불씩 부담했다.


그리고 식사는 가이드가 주변의 식당을 물색하여 점심은 호텔 인근에 있는 牛肉 국수집에서 처음 보는 색다른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 후식으로 수박과 아이스크림 1개씩 주었다.


남아있는 것이 시간뿐이라 시가지 관광에 나섰다.

호텔 부근이 많은 호텔과 백화점 등이 있어 번화가(?) 인지 널은 중앙도로에는 도로 가운데 간이매점이 즐비하고 온갖 상품을 팔고 있는데 더운 점심시간에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밤이면 불야성을 이룰 것 같았다.



모든 것이 한국에 비하면 너무 싸기 때문에 구매충동을 느끼었고 점심 직후인데도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냄새가 도로에 흘러 넘쳤다.


백화점은 생략하고 더위를 피하여 지하상가로 내려가니 엄청난 규모에 놀라고 만물상 같이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온갖 값싼 물건들이 많았다.

지금의 만주 땅은 모든 것이 풍요로워 보였다.


한참을 둘러본 후 호텔로 돌아와 오후 휴식에 들어갔다.

안개 때문에 하루가 연기되긴 했지만 목단강시내의 생활상을 흥미롭게 둘러 본 것이다.

저녁은 다양한 요리 코스의 식당에서 고량주를 곁들인 성찬으로 즐겼다.


10시 반경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목단강 공항에 도착하여 졸음 속에 출국수속을 마치고 새벽 2(한국시간 새벽3)에 들어가니 게이트에서 100m 떨어진 곳에 비행기가 게류 중인데 우리가 타고 갈 비행기 이외는 아무 것도 없어 마치 허허 벌판에 홀로 있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셔틀버스 없이 걸어서 트랩까지 갔다

.

필자가 해외여행을 40여회 다녀 보았지만 걸어서 비행기 타보는 것은 처음이다.

어떤 승객은 새벽 밤하늘에 두 손을 뻔쩍 들고 만세를 부르면서 빙글빙글 돌면서 걸어갔다.

그래도 비행기(LJ804)는 정확히 현지시간 새벽 220분에 이륙했다.

3시간 걸려 김해공항에 아침 620분에 무사히 도착했다 끝.



성을주 16.08.02. 15:40

백두산의 체험기 몇번이나 보는 것 같습니다
자주 여행하시는 분이라 백두산을 몇번이고
체험하는 것으로 압니다 조목조목 잘 표현해
주셨습니다 ~ 

김병열 16.08.03. 11:49
소산선생님의 백두산 여행기 잘읽었습니다. 역사속 발해의 웅장한 궁성터 만주벌의 농촌풍경
그옛날 애국지사들의 독립투쟁 지난역사를 상상하면서 선생님의 뒤를따라 백두산 천지까지 함께한듯
착각속에 좋은구경 잘했습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한 나날이되세요. 감사합니다.

海松 김태옥 16.08.02. 18:22
문재학 선생님 백두산 관광 잘 하셨네요.
여행 기행문을 보니 내가 직접 보고 있는 것 같이 생생한 기록을 남기셨네요.
수고하셨읍니다. 기행문이 너무나 자세하게 잘 되서 죄송하지만 제가 좀 퍼갑니다.
저도 8월28일부터 9월2일까지 6박5일 백두산 관광 신청을 해 두었거든요. 수고하셨읍니다.

所向 정윤희 16.08.04. 14:20
와우~~~선생님 중국 여행 다녀 오셨군요~~~
글속에서 중국을 다녀 온것 같습니다,,,짱~~

명강사 김상영 16.08.03. 17:08
지극 정성이 담긴 글과 정경 잘 둘러보고,노고에 감사 드립니다.

윤한상 16.08.05. 11:02 new         
TC의 설명을 들으며 연신 적고, 관찰하고, 촬영도 하면서 처음부터 마칠때가지 시종 긴장과 여유와 낭만이 함께하는 여행작가님과의 동행은 행복합니다. 여행 내용에 놓친것은 거의 없고 객관적 자료까지 더하니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조약돌 16.08.03. 08:34
생생한 기행문에 백두산 안에 제가 있습니다.,
    
원 공 16.08.04. 06:34
저도 몇년전에 천지에 올라갔을때 엄청 추워 혼났던 기억이 있는데,오늘 글과 사진을 보니,추억이 새롭네요.감사합니다.

꿀벌 16.08.02. 22:47
백두산 여행기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늘 오늘처럼 행복하세요


도산면 16.07.31. 09:15

백두산 기후때문에 한달 내내 가도 천지 경관를 보기어렵다고 하던데 올주신 이미지 보니 청명하군요
백두산 천지 잘봐습니다 감사합니다

소당/김태은 16.08.02. 18:46

7년전에 故 장백일 교수님 외 12명이 다녀와서 아물아물 했는데 소산 수필가님 시인님의 글 보니
다시 회상하게 되는 여행기 를 상세히 잘 써 올려서 감회가 새롭네요
다리 건강 하실때 여행을 많이 하니 참으로 멋지게 살아 가십니다 파이팅!

  연지 16.08.03. 16:47
무더운 날씨에 여행 무사히 즐겁게 잘 다녀 오셨군요 여행기 ....까지 수고 하셨어요
                                            
나뭇꾼 16.08.03. 07:08
백두산 엊그제 다녀오셨네요.
"소산" 참 부럽습니다.
오늘도 삶의 향기 가득한 날 되세요.

뮤직미르 16.08.03. 09:44

즐거운 여행~
노후를 즐겁게 행복하세요
세계일주 사진 많이 올려주시고요
 

눈보라 16.08.02. 22:51

소산 문재학님 ~
백두산 여행기라서 이곳 여행방에 이동했습니다...ㅎㅎ
제가 그토록 가고 싶은곳 백두산인데
여행기로 소상히 일과를 밝혀주셔서
여행기를 아주 잘 읽었습니다..
백두산 폭포수가 아주 장관을 이르네요
그리고 백두산 관광객이 저렇게 많이
인산인해를 이룬다는 사실에 놀랍습니다

청명 16.08.02. 16:20
여행기의 경험을 적어 주셨군요
잘 읽고 가옵니다
멋지게 살아가십시오.
 
커피사랑 16.08.02. 19:45
상상을 초월하는
경관이 아주 좋으네요^^
즐감입니다
긴글 쓰시느라
힘드셨겠어요
감사해요

미량 국인석 16.08.03. 00:09

멋진 영상과 함께 백두산 여행기 잘 감상했습니다.
폭염에 건강 잘 살피시고요.감사합니다.소산 선생님!^^

雲岩/韓秉珍 16.08.02. 15:26
소산선생님 무더운 오후에 백두산 여행 기행문 잘 감상했습니다
오후에도 무더운 날씨에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기 바랍니다

靑野/김영복 16.08.02. 21:05
소산 선생님
백두산 여행기 좋은 글을 잘 감상했습니다. 너무 무더운 날씨에 늘 건강 유의하시고,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좋은 8월 한달 되시길 바랍니다

진달래 16.08.02. 23:04
백두산은 여행을 간다고 다 천지를 보는것은 아니라고 들었는데
구경 잘 하신것 같습니다

雲海 이성미 16.08.02. 23:15
여행기가 백두산 가는이들
혹은 못가신분에게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삼복더위에 건강 잘 챙기십시요

은빛 16.08.03. 07:24
상세히도 여행기를 적어주셔서 시간이 나는대로 읽고 가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해피한 수뇨일이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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