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럽 여행기(2부)★....일반 게시판
서유럽 여행기(2부) (10개국=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독일. 오스트리아. 이태리. 모나코. 스위스. 프랑스.) 16일간 소산/문 재학
2016년 4월 18일(월) 흐림 8시 30분에 호텔을 나와 독일의 퓌센(Fussen)으로 향했다. 로만틱 가도(독일의 관광도로)의 마지막 기착지인 퓌센까지는 2시간 30분 소요예상이다.
흐린 날씨 속에 버스는 왕복 4차선을 달렸다. 강폭 가득 강물이 흐르는 곳을 지나는가 하면 푸른 농경지와 숲들이 교대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풍광에 젖은 즐거운 여행길이다 . 인구 8천명의 퓌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있다. 루트비히 2세의 비극적인 생애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노이슈반슈타인 성” 입구에 들어서니 화려한 상점들 속에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 곳을 지나 커다란 호수(슈타른베르거 호수?) 옆 대형 주차장에 도착했다. 이곳에도 버스와 승용차가 만원이다. 좌측 바로 위쪽 산에는 루트비히 2세의 어린시절을 보냈다는 노란색의 독특한 “호엔슈방가우 성”이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우측 멀리 산허리 언덕에는 운무에 휩싸인 “노이슈반슈타인 성” 신비감이 감도는 풍광에 모두들 탄성을 자아냈다. 이를 대상으로 “잠자는 숲속의 미녀의 성”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단다.
버스 주차장에서 울창한 숲속을 20여분을 올라가는데 쌍두마차 여러 대가 노약자들을 실어나르는 말발굽소리가 조용한 산속에 메아리를 이루었다.
백설공주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스페인의 에스파냐 세고비아의 아름다운 알카사르(Alcazar)성을 몇 년 전에 둘러보았지만, 이곳 독일의 노이슈반슈타인(새 백조바위)성에 대해서는 상당히 궁금했다. 더구나 노이슈반슈타인성은 ‘광기의 왕’, ‘공상의 왕’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루트비히 2세(Ludwig Ⅱ, 1845~1886)가 독일의 전설에 등장하는 곳을 충실하게 옮겨놓은 성으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드디어 성에 도착 했다.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었다. 미리예약을 해야만 화려한 내부관람이 가능하기에 아쉽지만 백조의 성(?) 외관만 여러 방향에서 영상으로 담고 발길을 돌렸다.
12시 30분 퓌센 시내에 있는 중국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오후 2시 20분에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Innsbruck)로 향했다. 그쳤던 비가 다시 운무가 짙게 드리우면서 안개비를 내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오스트리아 국경지대를 지나니 이동하는 구름사이로 험준한 알프스 산의 백설이 아름다운 풍광을 그리고 있었다. 버스는 구불구불 험산을 계속 오르고 산등선에는 안개구름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터널을 지나면 푸른 초원이 나타나고 이 높은 곳에도 잔설 사이로 파릇파릇 봄이 오고 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은 험산 백설의 풍광은 언제 보아도 아름다운 그림이었다.
버스는 숲이 울창한 협곡을 지나고 있었다. 계곡의 암반위로 새하얀 물보라를 일어키는 골짜기 2차선 길을 가는데 어느 사이에 철길도 동행을 하고 있었다. 넓은 지형이 있는 곳에는 서구식 마을이 그림처럼 나타났다.
가끔은 비도 그치고 안개를 걷어내면 신비로운 알프스 산이 미소를 지었다. 특히 인스부르크시 입구에 들어서면서 우측의 거대한 산의 흰 구름을 걷어내는 눈부신 설경을 영상에 담느라고 버스 내가 소란스러웠다.
오스트리아는 면적 8,300평방 키로이고 인구는 866만 명이다. 동계 올림픽을 두 번이나 개최한 인스부르크는 산악도시답게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먼저 마리아테레지아(Maria-Theresien-Straße)로 갔다. 인스브루크 거리의 중심에 있는 번화가이다. 이 거리의 가장 유명한 명소 성 안나기념탑이 도로 중앙에 우뚝 솟아있다
인스부르크 도시의 중심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는 남편 프란츠 1세와 함께 통치했던 마리아 테레지아 왕비의 이름을 딴 거리로 왕비는 뛰어난 정치가였으며 생전에 16명의 자식을 두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왕비는 프랑스로 시집가 젊은 나이에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비운의 왕비 마리 앙투아 네트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의 형형색색 집들이 알프스 산맥의 하얀 봉우리들과 어울린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다시 발길을 돌려 마리아 테레지아 거리 맞은편에 있는 “황금지붕”으로 갔다. 기대와는 달리 너무 초라했지만 영상으로 담았다.
황금의 지붕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주위의 상점들은 화려했다. 여러 곳을 둘러보면서 이색적인 상품들을 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오후 6시경에 버스에 올라 가까이에 있는 Charlotte 호텔 42호실에 짐을 풀었다.
2016년 4월 19일(화) 맑음 아침에 일어나 밖을 나와 보니 쌀쌀한 냉기가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알프스 험산 협곡에 자리 잡은 아담한 산장에서 밤을 보낸 샘이다. 지난밤에 내린 비가 부근의 높은 5부 능선 이상에는 하얗게 눈으로 덮었다.
안개 사이로 눈부시게 빛나는 만년설의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7시 30분에 이태리 베니스로 향했다.
높은 산에 실안개구름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산악고속도로를 따라 급경사의 초원을 거느리고 달리는가 싶더니 스키장이 나타나는 주위에는 눈이 많이 남아 마치 한겨울에 여행을 하는 가벼운 흥분이 말려오기도 했다.
8시 25분 이태리 국경표시가 있는 곳을 통과한 후부터는 파란 하늘과 초록빛 융단 새하얀 백설 등이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는 것을 즐기면서 달렸다. 연초록 나무 잎이 이름 모를 꽃나무들과 함께 미풍에 하늘거리고 있었다.
비탈진 곳에 빈틈없이 포도를 재배하고 급경사에 산재된 농가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식수해결은 어떻게 하는지, 차량운행이 가능한지? 궁금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연 속에 사는 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고속도로에는 대형 물류차량이 끝임 없이 다니는 것을 보니 삶이 풍요로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9시가 지나도 주위 풍경은 계속 설산을 이고 있는 험산 협곡이다. 4차선 도로 양측으로 하천을 따라 경작지가 있고 산록변에는 마을이 아늑히 자리 잡고 있었다. 11시가 지나자 대평원으로 나왔고 주위의 수목들은 푸르름이 짙어가고 있었다. 베니스로 가는 길은 왕복 6차선으로 바뀌었다.
5시간 60분이 지난 오후 1시경에 베니스 시경계에 들어섰고 버스 진입세(통행세?)를 내고 식당으로 향했다. 여행객을 전문으로 상대하는 대형 중국식당으로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중식 후 현지가이드(정주애)를 만나 현란한 말솜씨와 코믹한 이야기로 일행들을 웃음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이태리 본토의 Mestre와 베네토주와 주도인 베니스를 연결하는 3.85 km의 이 다리는 무쏘리니 때 건설 하였다는 자유의 다리와 1800년대 만든 철로가 함께 나란히 있다.
다리를 통과하여 선착장 주차장에 가니 대형버스 수백 대( ? )가 주차되어 있었다. 정말 세계각국에서 관광객이 많이 오고 있었다. 5분정도 걸어서 선착장 터미널에서 오후 2시에 승선 출발했다.
밝은 햇살아래 부는 시원한 바다바람은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베니스 시내로 진입하면서 주위의 풍경을 부지런히 영상으로 담았다. 베니스는 전체가 갯벌에 말뚝을 박고 흙을 채우고 돌울 쌓은 인공섬이라 하는데 그 규모가 너무 크기에 믿겨지지 않았다.
20여분마네 베니스 항에 도착했다. 면적은 414.57㎢ 인구는 약 26만 명이다. 유서 깊은 베니스 시는 북동쪽에서 남서쪽까지 약 51㎞로 뻗은 초승달 모양의 석호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도시가 세워져 있는 작은 섬, 진흙습지, 길이 3㎞, 너비 1.5㎞의 모래언덕들이 군도를 이룬다.
계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베니스 주민의 대다수가 관광업과 유리· 레이스 직물 생산 같은 관광 관련 산업에 종사한단다. . 이 섬들 사이로 중심 수로인 그란데 운하가 2개의 넓은 만곡부 주위를 흘러 도시를 통과한다. 너비 37~69m이며 평균수심이 2.7m인 그란데 운하 주위에는 많은 대저택, 교회, 해상주유소 등이 있다 . 베니스 건축물은 다양해서 이탈리아· 아랍· 비잔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이 모두 있단다. 아드리해에 있는 섬 베니스는 6개 행정구역의 물고기형 지형이고 118개의 섬과 400여 개의 다리가 있다.
베니스에는 자동차는 물론 자전거도 바퀴 달린 것은 없다. 오직 곤돌라와 수상택시와 수상버스로 모든 생활 물자를 운반하기에 생활비가 1.5배 비싸다고 했다. 탄식의 더리는 두칼레 궁전(행정종합 관청 건물로 사용되고 있음)과 작은 운하를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 나 있는 감옥을 잇는 다리이다.
1600년부터 1603년까지 안토니 콘티노(AntoniContino)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10인의 평의회'에서 형을 받은 죄인은 누구나 이 다리를 지나 감옥으로 연행되었다. 죄인들은 이 다리의 창을 통해 밖을 보며 다시는 아름다운 베니스를 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탄식을 했다고 한다.
다리로 이어지는 감옥은 조반니 카사노바가 갇혔던 곳으로도 유명한 다리를 보고 이어 침하되고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 비스듬히 기울어진 교회의 종탑 등을 다리위에서 영상으로 담았다.
기울어진 종답
다음은 인근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로 불리우는 산마르코 광장과 성당을 둘러보았다.
산마르코 광장
현지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1시간 30분 자유시간 동안 복잡한 미로에서 길을 잃을까봐 좁은 골목길을 수백 미터 씩 들어갔다 바로 되돌아 나오는 식으로 반복하여 둘러보았는데, 유리공예품과 가면 등 각종 상품을 판매하는 화려한 상점들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좁은 다리 이래 수로에는 아름답게 장식한 혼자서 노를 젓는 곤돌라(gondola])가 관광객을 태우고 수로를 누비고 있었다. 물은 시궁창 같은 물로 상당히 불결해 보였다.
오후 5시 약속장소에 집결 3대의 수상택시를 타고 무선으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베니스 심장부 대운하를 도는데 주변의 5~6층의 미려한 석조건물과 교회 등을 영상으로 담았다. 물결로 인한 주변의 건물 등 구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시속 7 km로 법으로 제한다고 했다.
대형 반원형 목조다리. 아름다운 조형물이 있는 석조다리. 유리공예의 고장답게 유리다리 등 명물다리 밑을 지나기도 했다.
40여분 동안 대운하 주변을 둘러보고 바다에 나와서는 쾌속으로 10여분을 달려 버스가 있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현지가이드와 작별하고 버스로 가까이에 있는 City 호텔 501실에 투숙했다.
2016년 4월 20일(수) 맑음 7시 30분 피렌체로 향했다. 왕복 6차선 도로변은 유채꽃재배지를 비롯 농작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산재된 수목들 사이로 농가들이 보였다.
구름이 약간 있어도 파란 하늘이 반갑기만 했다. 산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펼쳐지는 이곳이 이태리의 곡창지대 롬바르디아 평야다. 농작물은 대부분 밀이다. 남부로 내려 갈수록 밀이 많이 出穗되고 있었다.
10시가 지나자 대평원은 끝나고 완만한 능선의 산들이 나타나면서 크고 작은 황토색 지붕의 마을들이 많이 보였다. 야산 구릉지대를 시원하게 달려 피렌체 시 가까이 도착하니 활짝 핀 아카시아 꽃들이 우리를 반겼다.
이곳에서도 버스 진입세를 내고 그 영수증을 차량 앞 유리에 부착시켜 운행 하는데 대당 300~600유로를 낸다고 했다. 베니스와 마찬가지로 이곳도 도로가 좁아 버스는 시내에 들어 갈 수 없었다. 10여 년 전에 왔을 때와는 분위가 달라져있었다.
아르노 강(Arno River)변에서 현지가이드(홍종철)의 안내를 받아 시내 관광에 나셨다. 도로변의 승용차들을 거의 소형차뿐이다. 심지어는 앙증스런 2인용차도 많이 보였다. 도로가 좁아 필연적으로 이루언진 현상인 것 같았다 . 조금 일은 점심을 스파게티로 했다. 대형식당인데도 관광객이 밀려들고 밀려 나가고 있었다. 중식 후 가죽세공을 교육하는 학교 앞을 지나 300~500년 된 돌로 포장한 길을 걸어서
피렌체의 양심성당이라는 산타 크로체 성당(Chiesa di Santa Croce)에 도착했다. 13세기에 지어진 고딕양식 건물이다. 성당 앞 광장에는 관광객이 무척 많았다. 이 성당이 유명한 이유는 바로 성당 내에 있는 유명인들의 무덤 때문이다. 내부에는 미켈란젤로, 갈릴레오, 마키아벨리, 로시니 등의 무덤이 있고 단테의 가묘가 있다.
산타 크로체 성당
외관만 영상으로 담고 단테 생가로 갔다.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하면 베아트리체를 향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한 책 신곡이 있다. 단테의 생가는 중세풍 3층 벽돌집으로 단테가 35세에 추방당할 때까지 살았다고 한다.
건물 외벽에 청동으로 만든 단테의 흉상이 걸려 있는 것을 보고 인근에 단테가 다녔다는 성당 내부도 둘러보았다.
이어 인근에 있는 피렌체를 대표하는 두오모 대성당으로 갔다. 피렌체에서 가장 높이가 큰 건축물이자,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큰 성당이다. 특히, 하얀색, 핑크색, 녹색의 대리석이 기하학 무늬를 이루고 있는 아름다운 외관을 가지고 있어, 원래 이름은 ‘꽃의 성모 마리아’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다. 성당의 건축은 1296년 시작되어 1371년 본당이 완공되었다고 한다.
엄청난 관광 인파들 사이로 화려한 외관을 영상으로 담고 줄을 서서 성당내부도 보았다. 10여 년 전에는 정문으로 들어가 옆문으로 나갔으나 지금은 정문 죄측으로 들어가 정문 우측으로 내 보냈다.
다시 가까이에 있는 피렌체의 정치적 사회적 중심 무대가 되었던 “시뇨리아 광장”으로 갔다. 시뇨리아 광장은 중세 이후 지금까지 피렌체의 행정의 중심지다. 지금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베키오 궁전과 우피치 미술관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유명 예술인들의 조각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광장 중앙에는 ‘넵튠의 분수’가 있고, 분수 옆에는 코시모 1세 대공의 동상이 있다 또 옛날에는 없던 대형 황금 거북상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피렌체는 메디치 가문이 장악했는데 디 비치 메디치는 은행가였으며, 그의 아들 코지모는 정치적으로 수완이 좋아 완전히 권력을 장악했으며 많은 지식인들을 돌봐 주었다. 이 집안에서 두 명의 교황이 선출되기도 하였다. 레오네 10세와 클레멘스 7세가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이였다 관광객이 시장통처럼 붐볐다.
우리일행은 베키오 궁전 옆 골목길 100m를 지나 아리노 강에 있는 2차대전중에도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된 베키오 다리를 약간 멀리서 보았다, 원래 이 다리는 대장간, 가죽 처리장과 푸줏간이 있었는데, 시끄럽고 악취가 난다고 하여 모두 추방하고 오늘날은 상점이 주를 이루고 있다.
16세기 이후부터 양쪽에 보석상 점포가 늘어서 있게 되었다고 한다 피렌체가 가죽제품으로 유명한 것은 2000년전에 시져가 이곳에 군인을 주둔 시키면서 피복을 가죽제품으로 이용한 것이 시작이 되었다고 했다.
지난번에 와서 보았던 미켈란제로 언덕에서 피렌체 시내를 내려다보지 못하고, 가죽제품 판매장만 둘러본 후 오후 6시 버스는 로마로 향했다.
도중에 작은 산위의 성곽이 보였는데 이것이 중세의 아름다운 마을 오르비에트(Orvieto)로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이태리 지방은 전란을 피해 산위로 생화터전을 마련한 곳이 곳곳에 남아 있기에 관광객들의 호기심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이태리는 GDP가 남부는 2만$, 미라노 등 북부는 7만$이라고 했다. 세금을 40%정도 징수 하면서 무료교육과 무료진료를 실시한다고 했다. 특히 대학 진학은 쉬운데 졸업생은 5% 미만이라고 했다.
그리고 의사. 변호사, 교사 공무원 등은 보수에 큰 차이가 없다고 했다. 기업은 피아트 회사를 제외 하고는 기족경영체제의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오후 6시 30분경 로마시 변두리에 도착했다.
사방 멀리로 산들이 약간 있을 뿐 광활한 지역이다. 옛날에 한번 와 본적이 있어도 로마 시내가 어느쪽에 있는지 도저히 모르겠다. 한인이 경영하는 대형 식당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한 후 1시간여를 휴양지에 있는 숙소를 달리는데 석양의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풍광을 그리고 있었다.
8시 10분경 호텔 등이 밀집해 있는 Tiffang FIUGGI 호텔 212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이곳에서 3일을 머무를 예정이다.
2016년 4월 21일(목) 맑음 오늘은 바티간시와 로마시내관광 예정이다. 7시 20분에 호텔을 나왔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로마 근교를 시원하게 달렸다,
낮은 구릉지대로 펼쳐진 대평원 어디에 고대도시 로마가 자리 잡아 있는지 2번째 방문길이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 옛날 이 대지를 주름 잡았던 호걸들의 흔적을 상상을 하면서 원근의 마을들을 둘러보았다.
8시 10분부터 시내로 향하는 도로는 교통 체증이 심했다. 이곳의 차량도 거의 전부 소형차들이다. 작난감 같은 2안용 차도 많이 보였다.
버스는 교통 혼잡지역을 피해 테베레(fiume Tevere)강을 따라 가니 9시 10분경에 높은 성벽이 있는 바티칸 시 입구에 도착했다. 다행히 입장객이 많지 않아 9시 50분경에 세계 3대 박물관중의 하나인 바티칸박물관에 입장을 했다.
먼저 소지품등 검색대를 통과 하면서 검사를 받았다. 나누어 주는 수신기를 끼고 성베드로성당(Basilica di San Pietro in Vaticano)의 돔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돔이 있는 곳에서 설명을 듣고, 바로 옆에 있는 바티칸시의 상징인 높이 4m의 솔방울 조형물이 있는 정원으로 가서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완성까지 4년 소요) 과 "천지창조"(완성까지 7년 소요) 에 대한 모형도를 앞에 두고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내부 관람에 나섰다. 조각의 방 등 현란한 작품을 감상하면서 영상에 담았다. 미켈란젤로 그림이 있는 방에는 촬영도 대화도 제한되어 있어 앞서 모형도로 설명들은 것을 상기 하면서 침묵 속에 눈으로 담고 마음으로 담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 줄을 서서 밀려나가기에 머물러 감상할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이어 대형 적색 화강석 욕조와 아름다운 조각을 한 적색의 석관 등이 있는 방을 지나 생활관과 카펫걸개 그림 방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감탄 속에 둘러보았다 . 그리고 계속해서 세계최대의 성베드로 대성당 내부를 둘러보고 성베드로 광장에서 바티칸 교황청 전경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가까이에 있는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중식을 한 후 버스에 승차하여 푸른물이 넘실대는 테베레 강을 건너 로마시티투어에 나섰다.
진실의 방을 둘러보고 대기하고 있던 벤츠 짚차로 2000년 역사의 로마의 상징물 (?) 콜로세움을 찾았다. 콘스탄티누스대제의 개선문 뒤에 있는 콜로세움은 보수공사를 많이 하였다.
콜로세움의 바깥벽 높이는 거의 50미터이고, 타원형 평면의 장축과 단축은 각각 188미터와 156미터, 둘레가 527미터나 된다.
콜로세움 뒷편
다음은 팔라티노 언덕과 전차 경기장, 미켈란제로 광장. 베네치아 광장. 그리고 대형 기둥만 남은 시져가 암살된 대형로마 공회장을 둘러 본 후 다시 2000년 전에 중심축(기둥) 없는 특수공법으로 완공한 대형건물인 황금의 신전 판테온(Pantheon) 앞 분수대와 천장의 원형창(지름 7m) 등 내부를 보고
동전을 던져 사랑을 이루는 트레비분수(Fontana di Trevi)는 1732년 교황 클레멘스13세가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에게 명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트레비 분수의 아름다움은 바로크 양식의 마지막 최고 걸 작품 이라고도 했다
분수대 옆 로마의 휴일의 여배우 오드리헵번이 꽃을 받았다는 가게 앞에서 촬영당시를 상상해 보고 자리를 벗어낫다. 오후 6시 30분 버스에 올라 대통령 궁과 무쏘리니때 준공한 로마의 중앙역 등을 거처 교통체증이 심한 로마시내를 빠져나와 9시경에 호텔로 돌아왔다.
2016년 4월 22일(굼) 맑음 .비 아태리 남부 나폴리로 가기위해 6시30분 출발했다. 산길을 벗어나 맑은 날씨 속에 고속도로를 달렸다.
먼 산위로는 옅은 구름이 걸쳐 있고 도로변에는 아카시아 꽃들이 많이 보였다, 나폴리가 가까워질수록 조금은 조잡한 비닐하우스가 자주 나타났다.
산티루치아는 나폴리 해안거리의 이름이다. 루치아라는 젊은 여인의 선행과 비운의 삶을 그리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버스는 먼저 봄페이로 향했다.
도로양측으로는 10여 년 전보다는 4~5층 아파트가 많이 세워졌다. 잠자리처럼 TV안테나가 설치된 것이 예날 우리나라 모습과 닮아 있었다. 봄페이 신시가지도 많이 변했다.
봄페이는 2천 년 전 베수비오산의 화산폭발로 2만 명 정도 거주하는 이도시를 삼켜버렸는데, 약 300년 전에 발굴하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3/5 정도 발굴되었단다. 유적지 입구에 도착하니 관광객으로 역시 북새통이다.
출입구도 산 듯이 새로 정비를 해두었다. 출입구에서 돌로 포장된 길을 따라 들어서니 옛날과는 달리 베수비오 화산이 보이는 넓은 광장에는 대형 청동 조형물을 여러개 설치하였고 유적지를 너무 많이 보수하여 많이 바뀌었다.
지금도 계속 통행금지를 해두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옛날에 보았던 공동목욕탕이 있었던 나대지는 옛날의 욕실을 상상하여 복원을 해두었고, 임신부등 다양한 석고상과 생활도자기가 있었던 곳은 흔적도 없었다.
원형 그대로 보존이 되어야 실감이 날 것인데 아쉬웠다. 석고상과 생활도자기 등은 창고 같은 곳에 모아 진열하여 쇠창살을 통하여 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유적지 인근에서 스파케티로 중식을 하고 11시 10분 쏘렌토(Sorrento)로 가는 완행열차를 타고 종점인 쏘랜토 역에 12시에 내렸다. 아직도 수확치 않은 유자나무들이 향기를 자랑하고 멀리 올리버 나무 사이서이로 농가들이 점점이 들어서 있었다.
길이 좁은 전통시장에서 유자가 들어간 과자 등을 시식을 하면서 다양하고 독특한 상품들을 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관광객이 많아 시장이 활기가 넘쳤다.
다시 절벽 길을 갈지자로 내려와 배를 기다리는 동안 카프리 섬 쪽으로 먹구름이 밀려오고 있어 산 정상으로 가는 리프트를 타지 못할까 염려스러웠다.
쏘렌토 선착장 내려가기전
오후 1시 10분 만선의 여객선이 카프리 섬으로 향했다. 선상에서 바라보는 쏘렌토는 다시보아도 그림 같은 아름다운 풍광이었다.
파도도 없는 짙푸른 바다를 30여분 달려 새하얀 집들이 작은 섬을 덮고 있는 카프리 섬에 도착했다. 인구 4만 명이나 이 작은 섬에 상주 한다니 실로 놀랍다. 먹구름과 안개로 짙어오는 카프리 섬 정상투어는 포기했다.
덕분(?)에 필자는 지난번에 들리지 못했던 곳을 보게 되었다. 경사지를 오르는 전동차를 타고 5분 정도 올라가는데 급경사에 돌출된 기암괴석들 속에 별장 같은 주택들이 있어 황홀한 기분으로 동영상으로 담았다.
정상에는 대도시 시장처럼 붐비고 좁은 골목길 곳곳의 쇼윈도에는 다양한 상품들을 진열해 두었다. 마이클잭슨이 공연하였다는 집과 5성급 호텔이 있는 곳을 지나 아우그스토(Augusto) 미니 정원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유명 인사들이 다녀갔다는 풍광 좋은 곳의 다이아나비 신혼여행지 건물을 아쉽게도 가이드는 모르고 있었다. 10여 년 전에 카프리 섬 정상에서 손으로 가리키던 집을 잠작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결국 안개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우중이라도 리프트 타는 곳까지 가기로 하고 밴츠 짚 차에 올랐다. 아슬아슬하던 절벽 길을 많이 정비하여 두었는데도 여자들은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더 이상의 관광은 포기하고 선착장에서 피자 한판에 12유로를 주고 맛을 보면서 여객선을 기다렸다. 오후 4시 30분에 여객선에 올라 한 시간 지나 5시 30분에 나포리항에 도착했다.
먼저 맞이하는 것은 거대한 누오보 성이다. 누오보 성은 1282년 앙주 가문의 샤를 1세가 지은 누오보 성 (새로운 성) 이라는 뜻으로 기존에 있던 성과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옛날에 지저분한 거리 낡은 APT들을 새로운 상가 건물이나 아파트로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도 도로변에 쓰레기는 딩굴고 이었다.
항구에 정박해 있는 여러대의 유람선에는 점등이 시작되고 안개비도 그쳤다. 다행히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아 저녁 8시 조금 지나 호텔에 도착 할 수 이었다.(계속)
윤한상 16.05.06. 10:51 15일의 한정된 기간에 서유럽10개국을 여행하면서 시간제약으로 정말 바쁘게 다녔는데 이렇게 상세하게 여행기가 나오다니 동행인으로서 존경을 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은 여행기 공유할 수 있어 깊은 감사드립니다. 조기남 16.05.05. 12:36 즐거웠던 서유럽여행의 좋은 사진작품과, 친절히 해설까지 덪붙여 올려 주셔서, 구경도 잘 하고 좋은 정보도 많이 가지고 갑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초강 16.05.06. 16:18 실감나게 잘 보았습니다. 옛날에 가보았던 추억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습니다. 부디 건강하시고 좋은 글 부탁합니다. 초강거사 드림
등관악 16.05.06. 09:42 멋진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실감납니다. 이게 참다운 여행입니다. 대개가들 갔다오면 끝 어디갔다온것도 모르기 일수입니다.
눈보라 16.05.05. 06:53 서유럽 여행기 (2부) 올려주신 문제학님 참 감사드리며 그져 부럽습니다.. 저는 외국 여행 한번도 못가봤는데.. 그져 신비로운 경치입니다..
홍두라 16.05.09. 22:52 서유럽 여행기 저가 직접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 雲泉/수영 07:28 서유렵 여행기에 많은 것을 체험하고 오신줄 압니다 여행가서 보고 느낀 상세한 이야기에 감동받습니다
은빛 16.05.05. 00:31 그림처럼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멋진나라인데 가보지 못하고 글로 대신합니다 모르리 16.05.05. 18:03 기록으로 남기셨군요 유럽 가보고 싶은 죽기 전에 가보련지요..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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