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여행기▣♡ 아름다운 글
대만 여행기 소산/문 재학 2015년 4월 20일 (월) 아침부터 신록을 재촉하는 비가 부슬 부슬 내리는 속에 김해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오전 11시 20분에 탑승 수속을 마치고 중화항공(C10189)편으로 타이베이(TAIPEI)공항으로 설렘을 안고 출발했다. 비행기가 고도를 잡자. 아리따운 대만 안내양들이 비빔밥 점심 서비스가 있었다. 비행시간이 짧아 남미여행에 비하면 국내선을 타는 기분이다. 친구와 잡담을 하는 사이에 대만 상공이다. 포말을 일으키는 화물선을 뒤로하고 타이베이 중정국제공항에 들어섰다. 경지정리를 하지 않은 경직지에는 농작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그 사이로 농가 주택들이 산재한 낫선 이국땅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현지시간 오후 1시 20분(한국시간 2시 20분=시차 1시간)에 공항에 착륙했다. 밖을 나오니 열대지방의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에 티를 벗어야 했다. 현지가이드 훤칠한 키의 미남 손병채님을 만났다. 우리일행은 모두 11명(여자 9,남자 3)으로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랐다. 대만은 면적 약36.000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2,300만 명이란다. 그리고 수도 타이베이는 면적272 평방키로, 인구는 270만 명이다. 대만은 64%가 산이란다. 한국보다 지하자원이 4배나 많고 지진이 잦고, 태풍이 많이 오는 나라라 했다. 대만의 유명한 고량주는 金文이라고 했다. 지진으로 연간 50회 정도는 인명피해를 볼 정도로 지진에 취약해 삶이 상당히 불안할 것 같았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오늘아침 9시40분에도 진도 6.3도의 강진이 일어났다고 했다. 공항주변의 욱어진 숲은 전형적인 온대수림으로 마음을 평온하게 하였다. 타이베이 시내까지는 약 50분소요 예정이다. 유동인구가 60만 명이나 될 정도로 복잡한 도시라 했다. 연간 강우량이 2,100mm나 되어 다습하여 집안에는 벽지대신에 페인트로 마감을 한다고 했다. 도로변의 저층의 아파트 들은 조금 낡고 어두워 보였다. 51년 동안 일본치하에 있어서인지 국민들의 근검절약이 몸에 베였다고 한다. 또한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발달한 나라라고 했다. 버스는 숲으로 둘러싸인 호국영령들이 잠들어있는 忠烈祠를 찾아 정문 입구에서 내렸다. 마침 매시간 거행되는 위병교대식을 볼 수 있었다. 벌써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붐비고 있었다. 하얀 철모(육군들 모자)에 하얀 정복의 장신의 근위병들이 엄숙하고 절도 있는 교대식이 정문에서 충렬사 사당까지 약 200m(?)를 행하는 도중에 많은 관광객의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영국의 버킹검궁전 교대식처럼 화려 하지는 않지만 관광거리로 활용하고 있었다. 미풍이 살랑살랑 불고 있어도 약간은 더위를 느낄 정도의 날씨였다. 버스는 다시 긴 터널을 지나고, 숲속 길을 반 바퀴 돌아 1965년도에 개관한 세계5대 박물관중의 하나인 國立故宮博物院에 도착했다. 중국의 5천년 역사유물과 보물 등을 전시된 것을 일부만 둘러보았다. 1946년 장개석이 대만으로 피해 올 때 75만점의 역사유물을 가져와 그중 인기 있는 보물들은 영구 전시하고 기타는 3~6개월마다 바꾸어 전시 한다고 했다. 관광객이 너무 많이 와서 북새통이다. 또한 내부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 아쉬움이 많았다. 중국은 8천년 역사라고 하면서 벽면에는 BC 6200년부터 정리하고 있었다. 【신석기시대(6200 ~ 2070 BC) → 夏(2070 ~ 1600 BC) → 청동기시대(商.周시기 = 춘추전국시대 포함, 1600 ~ 221 BC, 대표유물 毛公鼎) → 秦.漢시기(221 BC ~ 220 AC) → 六朝 隨唐(220 ~ 960 AC → 宋代(960 ~1271 AC 도자기로 유명함) → 元代(1271 ~ 1368 AC) → 明代(1368 ~ 1644 AC) → 청나라 시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강력한 냉방 속으로 관광객이 끊임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玉으로 만든 축구공보다 작은 크기의 24겹 공을 3대(90년)에 걸쳐 만든 것이 특이했고, 값을 논할 수 없다는 손바닥 크기의 배추玉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오래 기다려야했다. 고궁밖에 나와 國立故宮博物院 전경을 영상으로 담았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독특한 양식의 오각선반 식당에 도착했다. 4층(?)높이의 건물외관이 시선을 끌고 있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영상으로 담았다. 영상을 담느라 일행을 놓쳐 식당입구에 기다리고 있는 친구와 함께 찾으려고 하였으나 미로와 같은 내부 장식 때문에 찾기가 어려웠다. 실내는 더욱 다양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장식을 하였는데, 奇想天外한 방법으로 장식한 내부를 동영상으로 담고 또 담았다. 한참 후 3층에 올라가서야 겨우 일행들을 만났다. 건물 중앙 1층에는 작은 연못에 잉어들이 유영을 하고 카누도 1대 놓여 있는데 천장까지 통하도록 별난 장식을 해둔 것을 영상으로 담아내기에 목이 아플 정도였다. 이곳저곳에 있는 테이블에는 빈자리가 없이 식사준비가 되어 있는데 모두가 예약되었다고 했다. 우리일행도 한 테이블에서 11명이 동시에 식사를 했다. 건물전체를 아름다운 예술작품으로 만든 건물주의 아이디어에 감탄을 하면서 대만 현지식으로 저녁을 먹고 밖을 나왔다. 이곳의 식사대는 비싸겠지만 여행코스에 반드시 넣어야 할 것 같았다. 식당밖에는 야간 조명이 너무 화려하여 다시 동영상으로 담고 타이베이 중심부에 있는 101층(높이 508m) 관람에 나셨다. 도중에 타이베이 시청을 지나기도 했다. 101층 꼭지 부근에는 수시로 구름이 흘러가고 있어 높이를 실감 할 수 있었다. 더디어 타이베이 금융센터인 101층 건물에 도착했다. 101층 주위는 교통체증이 심해 버스정차가 쉽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니 시원한 바람이 초여름 날씨를 느끼게 했다. 5층까지 에스컬레이터로 오르는데, 중앙의 윤기 흐르는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관광객을 압도하고 있었다. 5층 매표소에서 89층 전망대까지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37초 만에 올라갔다. 승강기 안에서 승강기 올라가는 위치를 알 수 있도록 모니터를 설치하였고 천정에는 어두운 바탕에 빤짝이는 별들을 繡놓아 시선을 끌고 있었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많은 관광객이 사방으로 타이베이 시내 야경을 영상으로 담고 있었다. 얼만 지났을까 열심히 관람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건물이 금방 무너질 것 같이 공포를 느낄 정도로 흔들렸다. 처음 느껴보는 지진이었다. 서둘러 건물을 나가기위해 88층에 있는 승강기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88층에는 건물의 중심을 잡아주는 680톤이나 되는 원통형 구조물에 자동차 완충기 같은 구조물로 바치고 있는 내진시설에 대한 설명을 하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무리 내진설계가 완벽하다고 해도 조금은 불안했다. 현지시각 오후8시(한국 9시) 승강기 앞에는 중국. 한국. 일본사람들이 뒤섞여 상당히 복잡했다. 승강기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건물이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수 십분 다리가 아프도록 기다려서야 겨우 승강기를 탈수 이었다. 밖을 나오니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어 우산을 사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101층 건물 전망대에서 바라본 타이베이 야경 그래도 고층건물들은 화려한 네온 빛을 뿌리고 이었다. 호텔로 가는 도중에는 터널도 여러 개 있고 지진이 잦은데도 아파트가 많이 보이고 개성 있는 조명을 해두어 시선을 즐겁게 했다. 밤 10시 50분경에 CHUTO PLAZA HOTEL에 도착하여 1502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5년 4월 21일(화) 대만은 건물 옥상의 물탱크는 전부 스텐으로 만들었는데 보기도 좋고 위생적으로 보였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어 오늘의 관광이 염려스럽다. 花蓮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7시 30분에 호텔을 나왔다. 시내 중앙역까지는 한 시간 소요 예상이다. 타이베이 시내는 교통체증이 심했다. 자동차 사이로 사이드카(스쿠버 일색임)가 엄청나게 많이 다녔다. 도로변 간판도 난립이 심했다. 낮인데도 크고 작은 네온 불빛으로 홍보를 하는 등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고 행정에서도 통제를 안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대만은 모든 상품의 영수증이 로또기능을 하도록 하여 2개월마다 추첨을 하여 적게는 수 만원에서 최고 2억까지 당첨이 되기에 영수증 제도가 철저히 이루어진다고 하니 부가세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우리나라도 모방행정으로 도입했으면 좋겠다. 모든 교통의 중심지인 중앙역에 8시 50분경 도착했다. 중앙역의 규모가 상당히 크다. 주위의 풍경을 영상에 담고 역의 중심에 있는 광장으로 갔다. 수백 평이나 되어 보이는 넓은 관장은 4~5층 높이의 천정에 반투명 유리로 복개를 하였고 바닥은 대리석 타일을 깔아 화려해 보였다. 이색적이 장면을 영상에 담느라고 지하에서 출발하는 9시20분 기차에 늦을 뻔했다. 열차는 깨끗하고 안락했다. 우리가 가는 선로명은 住花蓮經濟線이다. 화련역까지는 2시간 10분 후인 11시30분에 도착예정이다. 아주 작은 승차권에는 열차차량 번호, 좌석번호, 출발, 도착시간 등이 상세하게 기재되어 있었다. 대만은 3천 미터가 넘는 산이 220개나 되고 제일 높은 옥산은 3975m 정상에는 겨울에 눈이 내리기도 한다고 했다.
열차는 松山역 등을 약 12분을 지하로 달리다가 지상으로 나왔다. 철로 양측으로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했다. 기차는 푸른 숲을 끼고 계속 달리는데, 작은 하천과 터널이 나타났다. 흐린 날씨라 먼 산의 풍경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산록 변에는 자연산 소철과 바나나 등이 보였다. 10시 10분이 지나자 암반에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태평양 바닷가가 나타났다. 탄성의 소리가 터졌다. 기차는 해안가를 계속하여 달리는데, 소규모 경지정리가 된 논에는 우리나라 7월초에 해당할 정도로 벼가 자라 완전 녹색융단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이곳에는 3기작이 가능한데도 정부에서 보상을 하면서 까지 지력증진을 위해 2기작으로 통제를 한다고 했다. 들판에 산재된 깨끗한 농가들은 그림 같았다. 수많은 터널을 지나는데 해안가 모래는 모두 검은 색이다. 간혹 시멘트 공장도 나타났지만 암반의 해안 절경이 시종 관광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정확히 11시 30분에 화련역에 도착했다. 화련시의 人道는 전부 흑백대리석으로 포장되어 있어 이곳의 풍부한 대리석 생산을 실감케 했다. 화련은 대만에서 면적이 가장 넓고, 산이 많은 지역이고 인구는 가장 적다고 했다. 그리고 원주민이 제일 많이 거주하고 있단다.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타고 비교적 한적한 길을 20여분 달리니 관광버스가 10여대 주차해 있는 곳의 식당에서 역시 現地食으로 점심을 하고 태로각 협곡으로 향했다. 날씨는 흐리지만 비가 내리지 않아 다행이었다. 태로각 협곡은 국제수준의 자연국가공원으로 공인받을 정도로 절경을 자랑하는 곳이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암석들이 대부분 웅장한 대리석이라 하여 더욱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25분 정도 달리니 雲霧에 서린 신비의 협곡에 들어서고 있었다. 출입문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니 이내 터널을 만났다. 이 길은 장개석의 명에 의해 험준한 산악지대를 동서개통을 위해 장개석의 아들 장경국이 1956년 7월에 공사를 착공하였는데, 감옥 죄수와 마을 사람들을 동원 인력으로 길을 내면서 3년 9개월에 걸쳐 192km를 1960년 5월에 완공하였다. 그동안 수많은 사상자가 나왔는데, 그중 신원이 확인된 순직자 226명을 위하여 慰靈사당 長春祠를 건립하였다고 했다. 어두운 긴 터널을 이리저리 지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한참을 가니 급경사 산자락에 풍부한 수량의 아름다운 자연폭포위에 그림 같은 장춘사가 강 건너편에 유혹의 손짓을 했다. 주차장에 내려서 많은 관광객과 함께 붉은 철교를 지나 암벽을 뚫어낸 좁은 길을 따라 15분정도 가니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요란한 폭포소리가 우리를 반겼다. 폭포를 중심으로 長春祠가 자리를 잡았는데 감탄사가 절로 나는 풍광이었다. 특히 주위의 바위들은 전부 하얀 옥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부러운 눈으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다리를 건너와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다시 되돌아 나와 갈림길에서 우측의 깊은 협곡으로 향했다. 도중에 아주 높은 곳에 위치한 마르지 않는 은실폭포를 지나기도 하였다. 이 태로각 협곡에는 전통문화를 유지하고 있는 아미족 문화촌이 있고 이 원주민들만 이곳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상행위를 하도록 하면서 생활이 어려운 주민에게는 정부에서 별도의 생계비를 지원한다고 했다. 대리석과 비취생산으로 유명하다고 하는 급경사의 대협곡을 탄성 속에 굽이굽이 올라갔다. 차선도 없는 곳이 많을 정도로 좁은 산악도로를 버스가 올라가고 있었다. 풍광이 좋은 곳에서는 버스에서 내려 협곡관람에 나셨는데, 주위의 산세가 너무 높고 험하여 낙석사고가 잦다고 주의를 하라고 했다. 아름다운 경관에 취해 낙석사고 이야기는 귀밖에 들리고 동영상으로 풍광을 잡느라 정신이 없었다. 페루의 마추픽추 가는 길 우루밤바 강 주변의 험산보다도 비교가 안될 정도로 협소했다. 세계에서 제일 좁은 협곡(?) 산 높이는 안개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지만, 육안으로 보이는 곳만 100m 이상 되어 보이고 아래로는 물소리가 요란하게 계곡을 울리는데 계곡의 폭은 5m도 안되어 보이는 귀한 장면을 영상으로 담으면서 둘러보았다. 또 양쪽 절벽의 끝 하늘이 꼭 대만지도를 닮은 곳이 나와 신기하기도 했지만. 거대한 수직절벽이 필자 앞으로 넘어 올 것 같은 아찔한 느낌이 들 정도로 험산 협곡이었다. 절벽의 석벽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크고 작은 구멍 속에 제비가 많이 서식한다고 붙여진 燕子口는 버스에서 바라보고 영상으로 담았다. 이곳이 태로각 협곡 제2경이라고 했다. 다시 하천을 끼고 좁은 도로를 곡예를 하듯 올라갔다. 차량교행이 안되는 곳에서는 신호등으로 통제가 되고 있고 일부 구간은 도로를 보강공사를 하고 있었다. 20여분 정도 올라가니 이 공사에 동원된 아들을 위해 도시락을 싸오던 어머니는 아들이 사고로 목숨을 잃자 어머니도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 소식을 들은 장경국이 감동하여 만든 다리 慈母橋가 나왔다. 다리위에 설치한 붉은 철탑 구조물 정중앙에 양측 어디에서 보아도 보이는 慈母橋라 명기한 대형 간판이 있고 좌측의 청개구리 형상의 작은 뫼 정상에는 慈母亭이 그림처럼 있었다. 자모교 다리 난간에는 일정간격으로 대리석으로 연꽃모양 조각을 해두었다. 그리고 이곳은 삼각 합류지점으로 우측으로는 미려한 대리석 암반을 타고 맑은 玉水가 흘러내리고 좌측 계곡으로는 석회석 흐린 물이 흘러내려 합류되는 특이한 광경의 지점이었다. 慈母亭에도 올라 주위의 절벽에 가까운 험산 등 대단한 협곡의 풍광을 마음으로 담고 버스에 올랐다. 협곡이라 버스를 돌릴 수 있는 휴게소까지 한참 올라갔다. 관광버스는 꼬리를 물고 있었다. 휴게소에서 5$ 주고 망고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달래고 올라갔던 길을 다시 되돌아 내려오면서 출렁다리를 건너보기도 했다. 다행히 비가 내리지 않았고 물안개도 100m 이상 상층에 머물고 있어 시계가 확보되어 풍광을 즐길 수 있었다. 협곡을 빠져나오면서 되돌아보니 신비의 계곡에 서기가 감돌고 있었다. 갑자기 빗줄기가 기다렸다는 듯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우중에 일행은 光隆 대리석가공공장과 화려한 조각과 다양한 색상의 보석이 전시된 매장을 둘러보면서 가격이 너무 비싸(쑥색비취 목걸이 1개에 할인 가격이 한국 돈으로 460천원 이였음) 눈요기로 만족해야 했다. 비가 잠시 멈추었다. 버스는 태평양 해안가의 七星潭風景區로 향했다. 낭만의 바닷가 옥색의 푸른 파도가 쉴 새 없이 부서지는 긴 해안 따라 다양한 색상의 海石들이 눈을 즐겁게 했다. 이 지역에도 관광버스가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오후 6시 10분경 역시 現地食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花蓮驛에 도착했다. 전기사정이 좋지 않은지 시가지가 다소 어두웠다. 역 대합실에서 1시간여를 가다려서 7시 23분 열차로 타이베이로 향했다. 올 때와는 달리 정차하는 곳이 많아 10시 30분경에 중앙역에 도착했다. 호텔까지 다시 50분을 가야한다. 대기하고 있던 버스로 출발했다. 타이베이 시내는 늦은 시간인데도 상당히 밝고 고층건물에는 독특한 조명의 빛을 뿌리고 있었다. 타이베이의 고가도로가 시내곳곳에 많이 있어 교통흐름을 좋게 하여서인지 11시 10분경에 지난밤 묵었던 CHUTO PLAZA HOTEL에 도착했다. 2015년 4월 22일(수) 오늘은 아침 9시에 호텔을 나와 대만 북부 신베이 시에 있는 지우편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가이드가 풋 도토리처럼 생긴 야자나무 열매를 잎사귀에 싸서 주는데, 빈랑(檳榔)이라고 했다. 처음 씹는 물은 뱉어내고 다음부터는 즙액을 삼키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얼굴이 화끈 거린다는데 약간 그런 것을 느낄 것 같았다. 떪은 맛과 약간의 단맛이 섞인 묘한 맛이었다. 치아손상을 가져 오는데도 대만인은 즐겨찾기에 10만 여개의 판매소가 있다고 하니 놀랄 정도이다. 지우편으로 가는 고속도로변은 열대우림 속에 아파트가 그림처럼 散在되어 있었다. 공기가 맑아 살기 좋아 보였다. 지우편은 산중턱에 위치한 마을로서 9가구가 물건과 먹거리를 공동구입 배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九份(지우편)이라고 했다. 청나라시대에 금이 발견되면서 사람이 모이고 번창하였다가 그 후는 이곳에서 촬영한 영화 “悲情城市”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케 되어 유명지역이 되었다. 지우편은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에 수많은 계단이 있고 그 길을 따라 홍등가 술집이 지금은 커피숍으로 바뀌고 다양한 먹거리와 기념품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골목길에 들어서니 관광객이 너무 많아 밀려다닐 정도였다. 오카리나(OCARINA 도자기로 만든 소품의 악기)로 명곡을 연주하고 있어 들렸는데, 우리일행을 포함 많은 사람들이 선물용으로 사고 있었다. 그리고 가까운 상점에 땅콩아이스크림을 맛보면서 골목길을 다시 올라갔다. 상점 주인들은 대부분 한국말을 조금씩 하고 있었다. 급경사에 상점들이 자투리땅을 최대한 이용하는데 놀랄 정도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해안의 아름다운 풍경은 색다른 맛이었다. 버스는 다시 野柳海洋公園으로 출발했다. 기륭항의 萬里 마을의 어촌지역에 있는 야류해양공원은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된 경관지역이다. 산악지대를 지나는 고속도로는 높은 다리와 터널을 시원하게 통과하고 있었다. 곳곳에 이곳의 작은 집 모양으로 묘지단지(?)가 마을을 이루듯 숲속에 있는 곳을 지나기도 했다. 50여분을 달려 태평양 해안가에 도달했고 버스는 해안을 끼고 다시 북으로 달리고 있었다. 해안가 작은 바위를 부수고 있는 하얀 포말의 파도가 우리나라 주문진 해안가를 닮았다고 했다. 조금 더 올라가니 하얀 백사장이 나오고 해안가에는 상가 등이 늘어서 있고 산록 변에는 고층 아파트가 풍광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곳을 지나 산모롱이를 하나 돌아가니 해안가에 대형 주차장이 버스로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표를 구입하여 야류해양 공원으로 가는데 관광객이 너무 많이 와서 복잡했다. 처음 보는 특이한 지질에 기묘하고 신기한 다양한 형상의 조형물이 온갖 교태를 부리고 있다. 이색적인 풍광에 눈을 떼지 못할 정도로 흥분의 연속이었다. 사암으로 이루어져 있어도 지면이 폭신폭신한 스펀지의 땅이 바람이 불어도 모래먼지 하나 일지 않는 땅이라 더욱 신기했다. 여왕바위 같이 사진 촬영이 좋은 곳은 줄을 서서 한참 기다려야 했다. 공원의 규모는 1.7km 1.2. 3구역으로 연결되어 둘러보는데 정말 기분 좋은 풍광이었다. 부지런히 영상을 담고 아쉬움을 남기면서 공원을 빠져나와 대형 주차장 부근에 있는 식당에서 오후 1시가 지나 점심을 하고 2시경에 타이베이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50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시내에 있는 펑리수(명절 때 주고받는 대만의 대표 과자로 = 파인애플. 밀가루. 계란 등을 원료로 마든 구운 과자임)만드는 제과점에 들려 시식도 하고 선물용으로 구입했다. 그리고 서울의 명동에 해당하는 西門町을 둘러보았다. 가이드가 소개하는 삼형제 식당 지하에서(벽에는 대부분 한글로 다녀간 흔적을 내는 낙서투성이였다) 우유로 하얗게 얼려 만든 “아이스망고빙수”를 4$주고 맛보았다, 양이 많아 둘이서 먹어도 다 먹지 못하여 남겼다. 서문정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좁은 거리에 길거리 음식도 많고 온갖 상품이 진열되어 있고 사람들도 많이 붐볐다.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로 이곳도 젊은이의 거리였다. 다음은 대만에서 제일 오래된 사찰(1738년 청나라 시절에 건립됨) 龍山寺로 향했다. 현제의 건물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57년도에 다시 건축 하였다는데, 기둥과 지붕 등에 龍등 다양한 조각품이 화려한 색채를 자랑하고 있었다. 마침 많은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며 예불을 드리고 있었다, 황금빛 대형향로(2개)에는 쉴 새 없이 향불을 피우는데 香煙이 사찰 내를 가득 채우고 있어 눈이 따가울 정도였다. 곳곳에 온갖 꽃들과 음식 등을 준비해두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네 신앙이 무엇이지 느낄 것 만 같았다. 동영상으로 열심히 담아도 모두들 개의치 않고 禮佛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사찰을 나와 보니 용산사 길 맞은편에 있는 조그마한 중앙공원에는 우리나라 탑골공원처럼 노인들이 쉬고 있었다. 다음은 인접한 맹갑거리의 대만의 가장 오래된 화시지예 야시장을 둘러보았다. 조금은 허술한 것 같기는 해도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는 이색적인 곳이라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큰 도로변에 나오니 대형건물들은 모두 도로까지 나와 있고 상점들은 인도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 비가 잦은 타이베이 시민들이 비를 피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라 우리나라도 도입 적용하면 편리 할 것 같았다. 저녁은 샤브샤브로 식사를 하고 하루의 피로를 풀기위해 발마사지를 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주변의 대형건물과 교량의 다양한 색상 화려고 개성있는 조명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었다. 저녁 9시가 지나서 호텔에 돌아왔다. 2015년 4월 23일(목) 오전 8시 50분에 호텔을 나왔다. 오늘 마지막 일정인 중정기념관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 도로변에 미려한 고층건물이 시선을 끄는데 용도가 궁금하기도 했다. 中正은 장개석의 본명이고 介石은 그의 자이다. 중정 기념관은 타이베이의 중앙에 위치한다. 가는 도중 中正路 옆에 있는 일제치하 때의 건물 총독부를 지났다. 우회전 하니 멀리 101층 건물이 마주했다. 중정기념관은 1975년 장개석이 사망하자 그를 기리기 위해 1976년 공사를 시작 4년여에 걸쳐 1980년에 완공 했다. 본당의 계단 89개는 장개석이 89세일기로 타개한 것을 상징한다고 했다. 장개석 기념관은 타이베이에서 가장 비싼 땅을 78,000평방키로나 확보 하였다. 주요 건물로는 높이 70m의 거대한 중정기념관과 그 앞에 멀리 떨어진 곳의 양측에 주황색 지붕의 우리나라 세종문화회관 기능을 하는 커다란 국립극장과 콘서트홀 등 두건물이 마주하고 있었다. 본관1층의 각 전시실에는 장개석의 출생에서부터 일대기 사진과 유품(장개석의 캐딜락 자가용과 관용차 2대 포함)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장개석의 만남의 사진도 있었다. 이곳도 관광객이 많아 4층으로 오르는 승강기를 타기 위해서는 한참 기다려야 했다. 4층 대형 홀 중앙 벽면에는 무게 25톤의 거대한 장개석 총통의 동상이 있고 마침 이곳을 지키는 근위병들의 교대식이 있어 관광객이 둘러싸고 있었다. 5명이 같은 순간에 동시에 마치 기계처럼 동작하는 장면을 촬영하는 것이 까치발로 일어서도 쉽지 않았다. 장개석 동상이 통일을 염원하면서 중국본토를 바라보는 곳의 시야 내는 시야를 가리는 건물을 짓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 한다고 했다. 장개석(부인:송미령)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손문(부인:송경령)의 보좌관으로 근무했고 두 사람은 동서 사이다. 오전 10시 50분경 관람을 끝내고 시내에 있는 면세점 만물 백화점(?)에 들렸다가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마지막으로 불고기로 점심을 하고 공항으로 이동 오후 3시 40분 중화항공(C10186)편으로 김해공항을 통해 귀국하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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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초 15.04.29. 09:05
소산님의 여행기 보고 탄복 하였소이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스님님 뫼시고 5박6일 다녀온적 있어요 허나 우린 따라다니기 바쁘니
메모도 못하고 그때 생각이 아물 아물하군요 몰래 몇명이서 야시장 갔다가
영어가 안 통해서 한문으로 써서 숙소까지 찾아오는데 상당히 고생한 기억만 생생합니다
이미 가이드 보다 더 설명 잘 하시는것은 잘 알지만 글로 표현하기란 상당히 어려운데 ...
너무 상세하게 잘 쓰셨으니 지난날 회상해보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잘 보았습니다
아직 가보진 않았지만
가보고 싶게 만드는군요
고운 하루 보내시구요
써 본 적없는 여행기
둘 다 해 보고 싶습니다.
좀 길어서 제가 쉬는 날 차분하게 읽어볼께요.
긴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사진만 훑어보고 갑니다
눈보라 15.04.29. 06:02
세계를 유람하시다 보면 그 나라의 문화를 접할수있고
신비한 경치를 접할수있어 참 행복한 여행이 되시죠
대만에 대해서 소상히 설명도 해주시고..
그림과 글을 보면서 대리만족합니다..
줄까말까 15.04.29. 12:41
대만이나 중국이나 문화는 같으지만 어마어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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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렇게 소상하게 일기를 쓰셨는지요
저도 해외 여행을 조금 하였는데
돌아오면 어디를 다녔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데
대단 하십니다
여행 가이드를 하여도 손색이 없을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