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중국(계림 장가계)여행

소산1 2009. 11. 1. 09:51

제2차 중국 여행기(상해. 계림. 장가계)

 

2005. 3. 15일

여행객이 대부분 용주면 주민 들이고 그중에 환갑을 맞은 여자 분들이 많이 포함된 총 58명의 대부대가 인원이 많아 걱정 서러움 속에 아침 8시25분경 합천 고속버스로 김해공항으로 출발하여 10시반경 도착, 삼천포 출신 4인과 합류 탑승 수속을 마치고 30분이나 지연된 12시 35분에 중국 민항기(동방항공)에 탑승 상해로 향했다.

 

비행기가 횡으로 6석으로 아주 작은 비행기다(길이는 보잉 747정도 되어 보였다.)

부산 ~ 상해간 거리는 1,114km로 1시간 20분소요 된단다.

오후 2시 지나서 상해 포동 공항에 도착 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포동공항은 탑승 장이 전면 철골 직각으로 높이 15m 정도 길이는 200m정도로 조립하고 대부분 유리로 마감을 하였다. 그리고 비행기가 그 앞에 여러 대가 항공사 별로 일 열로 계루 되어 있다.

 

사람이 60명이 넘어 입국 수속이 길어지고 그기다 중국사람 특유의 느린(만만디) 책크로 짜증스러울 정도, 수하물을 찾고 탁송하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 됬다.

이곳에서부터 현지가이드가 2명 나오면 30명씩 별개로 조를 짜서 행동하기로 했다.

상해 현지 가이드 김성분 (할아버지 고향이 평안북도, 아버지 고향이 길림성이라는 31세의 여자 기혼자 ) 가 나왔다. 한국말을 배워서 가이드 한지 4년이란다. 약간은 이북 억양이 석인 말씨다.

 

상해는 서쪽에 있는 옛날 공항(홍조공항)이 있고, 이곳 포동공항은 새로운 공항이란다.

이곳 공항에서 시내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 청사까지 1시간 정도 걸릴 거란다.

현재 한국시간 3시 10분, 이곳 시간은 1시간 늦은 시차로 2시 10분이다.

시내로 오면서 차중에서 가이드의 주의 사항과 안내가 계속되고 있다.

이곳은 물이 좋지 않으니 식사 도중에 냉수를 마시지 말 것. 차량 통행이 무질서 하니 교통안전에 유의 할 것.

 

도중에 도로변에 LG와 삼성전자 대형 간판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LG의 에어컨이 대단히 인기가 많고 아주 많이 팔린단다.

상해는 동쪽은 동해 북쪽은 양자강 남쪽은 항주말이 있는 양자강 하류 하상 중적토로 이루어진 땅이라 역사가 일천 하단다.

작년에 개통하였다는 자기부상열차가 세계제일을 자랑하는 시속 430km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갔다.

 

중국에서 제일 큰 도시는 인구 3,000만 명인 중경이고다음은 상해 , 북경, 텐진이 4대 직할도시 이란다. 중국은 960만 평방km로 우리나라 남북한의 44배정도, 남한의 76배의 큰 나라다. 그리고 상해는 면적이 서울의 10배인 6,341평방km 에 인구는 1,700만의 큰 도시다.(이중 650만 명이 외국인이다.) 상해는 년중 200일은 비가 오므로 공기가 습하여 농가 주택은 보통 2층이고, 아래층은 부엌이나 창고용이고 2층은 주거로 이용하고 있다.

상해는 봄 가을이 좋은데 봄에는 비가 적게 온다.

여름은 5~9월로길고 평균 기온이 28도(한창 더울 때는 35도)이고 비도 많고 지온이 40도가 넘는 때가 많아 더위에 크게 시달린다.

다만 겨울은 영하 4도 까지 내려갈 정도로 따뜻하지만 집안에 난방 장치가 안 되어 있어 한국 사람이 와서 난방을 않고는 추위에 견디기 힘든 단다.

상해는 양자강의 하상 중적토 지대로 산이 없고, 역사도 700년 정도로 짧다.

시내 중심으로 황포강이 상해시를 동서로 나누고 동쪽은 포동신, 서쪽은 서포구 서동으로 나눈다.

 

시내로 오는 공항 도로변은 조경을 많이 하였고 정원수 재배하는 곳도 많이 보인다.

대우 대형 간판도 보인다.

도로변은 아파트도 있지만 공장이 많이 보인다.

중국은 13억 인구중 농민이 9억이고 남부지방은 벼와 밀 2모작을 하고 있다 또 하우스도 많다.

특징은 상해는 습하기 때문에 고급 주택을 제외하고는 빨래를 밖에 장대나 막대기를 꽂고 내다 건다.

 

상해는 아파트를 내장을 않고 팔고 입주자가 자기 취향에 맞추어 완성하는데 집값은 서울과 비슷하다.

즉 30평 기준 외곽은 1억, 시내는 5억 정도 그리고 물가가 비싸고 빈부격차가 심한 곳이다. 상해에는 LG를 삼성보다 더 잘 알아준 단다 특히 엘지 에어컨이 많이 보급되어 있다.

아파트가 새로 짖는 것 이외에는 지저분하고 대나무 등을 길게 걸어 놓고 빨래를 많이 말리고 있다.(보기가 흉하다.)

 

상해는 40층 이상 빌딩이 2,400개가 있고, 외탄 지역은 황포강 뚝이 관광 코스로 유명하다.

※ 중국말: 니하오(안녕 하십니까), 신콜라(수고 하셨습니다., 체어슈워 나이(화장실 어디 있습니까) , 세쎄(감사합니다.), 니 실필르머(식사 하였습니까) 등 간단히 소개 받음

거대한 제철소가 황포강변에 있다. 강은 수심이 평균 9m 이상이란다.

강철로 만든 아취형 노포다리를 건너면 서동이라는데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다.

지금 우리 차는 강을 건너 신호등이 없는 고가 도로를 지나고 있다.

중국에는 인구, 자전거, 가짜가 많다는데 역시 길에는 자전거가 많고 이곳 자전거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등록을 하고 번호판도 단다. (자전거 가격은 대당 3~10만원 정도)

 

드디어 시내 복잡한곳(서포구)에 있는 임시 정부청사에 도착 했다. 관람 시간은 영상 자료 포함 하여 40여분 소요 될 예정이다. 한국 관람객이 줄을 잇고 있으며 영상 관람실은 10평 정도로 5개방을 만들어 20~30명씩 임정 시절의 활약상 비디오(5분 정도)를 보여주고 있다.

2층까지 좁은 복도를 거처 회의실, 김구 집무실 주방, 침실 선금 기탁자 동판 액자 걸어 둔 곳 등을 과낢 했다. 김구를 비롯한 당시 그분들의 고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大韓民國 臨時政府 舊址

上海市 盧灣區 人民政府

1990년 2월 19일 公布

 

임시 정부청사는 1920년대 이전 건물로 모두 낡아서 , 임정 청사를 제외한 주위건물은 재개발을 하고 있다.

주위의 집들이 대부분 낡아 3~4층 건물 철거와 수리는 대나무를 아시바로 이용하고 있다.

외탄 언덕으로 이동 시간이 없어 공항으로 직행 하려다 차안에서 외탄언덕의 전망대를 포함한 화려한 건물을 둘러보기로 했다.

 

이곳은 6년 전부터 주 5일제를 시행 하고 있고 오후5시 반이면 퇴근 시간이라 붐비기 시작 한단다. 그리고 구정에는 1주일을 쉬고(많이 하는 곳은 15일 정도 휴무) 10월 1일 1주일. 5월 1일 노동절에도 1주일 정도 쉰다.

상해에서 가장 큰 골동품 판매 거리를 사진에 담았다. 조금은 불결한데, 이곳도 가짜가 많단다. 무괴도 전차가 다닌다. 중국은 지하철이 상해, 북경, 광동성의 광주 등 3곳이 있다.

 

잠시 뒤 외탄 언덕이라는 곳에 도착 했다. 시간이 있으면 내려서 여유 있게 둘러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공항에서 일행이 많아 입국 수속이 늦어 결국 버스 순회로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황포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은 현대식 고층건물이 즐비하고, 이주에 동방 명주탑(진주라는 뜻)이 383m까지 올라갈 수 있는 전망대(공처럼 돌출된 황금색 원형)에 얼마전 북한의 김정일이 방문하고 깜짝 놀랄 정도의 자본주의 사회 발전을 실감 하였다는 곳이다 전망대 탑의 부근에는 현재도 고층 건물을 짖고 있다. 한쪽은 유럽식 석조 건물(거리는 대략 200~300m)로 주로 은행과 호텔로 이용하고 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저서인지 거리가 차량으로 붐비기 시작 한다. 아쉽지만 상해 시내관광을 끝내고 남포대교라는 다리를 통과하면서 공항으로 향했다.

잠시 둘러본 상해거리의 인상은 교통질서가 전연 안 되어 있고, 차량도 비교적 적다. 그리고 대부분의 거리는 불결 했다.

공항으로 가는 연도변의 철탑 전주는 쇠로 2줄로 아래 위 3중으로 전기를 보내고 있다.

도로변 곳곳에 작고 가늘은 대나무를 조경용으로 군식을 하였다.

 

도로는 편도 4차선인데 차 종류 별로 차를 운행 시키는데, 버스는 3차선이다.

도로변 조경수는 아열대 지방이라 유도화, 종려. 메타쉐쿼어아 등이 많다 그리고 크로바가 파랗케 만이자라 온통 초록빛이다. 수양버들도 주기가 파핳고, 잎이 곧 터 질것 같다.

다시탑승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올랐다. 김해 비행장에서 탑승한 같은 회사의 동종 비행기다. 상해서 계림까지 (안내 방송에 의하면 ) 거리가 1,327km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라 한다. 현재 이곳의 시각은 오후 6시 30분이다.

 

96년인가 우리가 처음 방문 하였을때 국제공항으로 처음 개항하였다고 잔디는 마른 상태, 나무도 갓 심었던 공항, 한산 하다 못해 텅 비다 싶이 한 공항이 상당히 붐빈다.

비행 소요 시간은 2시간 20분 지금 시각은 밤 9시 30분이다. 공항에는 조용히 비가 내리고 있다. 년 간 강우량이 1,900mm 비가 많은 지방에 부모님을 모시고 10년 전에 왔을 때는 맑은 날씨는 그야 말로 행운이 였던것 같다.

자그마한 체격의 31세의 기혼자 김홍매라는 가이드가 마중을 나왔다. 아버지의 고향이 부산이란다. 주차장에 대기 하고 잇는 버스에 올랐다.

 

시내 까지는 30분소요 어두어서 밖이 보이지 않지만 과거 기억으로는 시내까지 경지 정리되지 않은 들판이고 산은 없었다.

중국은 23개성으로 이루어저 있고 이곳 광서성은 그중 9번째 넓은省이다. 계림은 광서성에서 3번째 큰 도시다.

광서성은 22만 8천 평방키로로 우리나라 남북한보다도 약간 넓다. 인구는 4,550만 명이다.

계림은 주위 인구를 포함 80만 명이란다. 10년전 52만 명보다 많이 늘었는데 급속한 도시 집중화를 실감 할 수 있다.

 

중국은 55개 소수민족이 있고 한족 포함하여 56민족으로 이루어저 있단다.

인구증가 예방을 위해 한족은 한집에 1명, 소수민족은 한집에 2명으로 제한 한단다.

※광서성은 장족 자치구로 장족 민족이 제일 많다.

중국은 차번호에 8이 들어가면 돈을 많이 번다는 속설이 있어 8908등 8번이 들어간 차가 많다.

이곳은 안량미를 년 2회 수확하고, 사탕수수도 대량 생산 한단다.

 

시내 한식집에서 중국 술(대부분 주도가 40%내외)로 반주삼아 식사를 했다.

숙소는 시내 우리나라 아세아나 지정 숙소 호텔( )인데 시설이 상당히 좋았다.

모두 비용을 아끼려고 여행 가방을 직접 들고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3월 16일

아침에 5시에 기상하여, 6시 10분에 서양식으로 뷔페 아침 식사를 마첬다.

호텔 밖에는 안개가 많이 끼고 부슬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다.

離 江 유람을 위해 7시에 호텔 문을 나섰다

계림시내는 10년 전보다 4~5층 아파트도 상당히 많이 늘었고 상가 건물도 많고, 차량도 많아 젔다.

가는 길에 고속도로라고 통행료를 받는데 옛날에 없던 것이나, 2차선인데 길은 세멘트로 포장하여 우리나라 국도보다도 못하고 로면이 울퉁불퉁하여 승차감이 안 좋다.

 

경지정리 되지 않은 논밭은 여전하고 농가 주택도 달라 진게 없다. 다만 산록변의 묘지는 조금 다듬은 것 같다.

1시간 반 정도 걸려 離 강의 흥평이라는 곳(중국돈 20원 짜리 돈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곳임.)의 선착장에 도착 하였다.

리강은 모아산에서 발원하여 장가게의 호남성으로 향하여 내려간다. 리강 길이는 437km 광주쪽 바다에 나간다. 강가 선착장에는 잡상인이 엄청나게 많고 귀찮을 정도로 적극적이다.

작은 유람선을 타고 하류로 한 시간 정도 내려가면서 좌우의 계림만의 독특한 산들을 비디오와 사진에 담았다. 대나무 죽순이 2~3m 정도씩 자랐다. 鳳尾竹(봉황새의 꼬리라는 뜻) 이라 이름 했다.

선내에서 민물고기와 새우튀김을 우리나라 물가와 비슷한 가격으로 1만원에 술 한 병에 5천원에 사 맛을 보았다. 바가지 쒸우는 줄 알면서도 큰돈이 아니라 생각하고 안개낀 강변의 풍경을 감상 하면서 시간을 즐겼다.

유람을 간단히 끝내고 다시 동굴 관람을 위해 계림 시내 방향이다.

도로변 농촌은 자급용 채소랑 유채꽃 밀감나무 등이 유난히 많다.

주변의 간판 글씨는 대부분 붉거나 황금색이다. 전답은경자치 않은 곳은 잡초로 푸르고 거의 대부분 경작으로 초록 들판이다.

경지정리가 안 된 전답은 한필지가 50~100평정도 무를 많이 심어 마치 메밀꽃처럼 온 들판을 하얗케 만들었다. 이곳은 상록수를 제외한 나무는 보기 힘들 정도이지만 아직 새싹이 나지 않아 나목이다. 복사꽃 매화꽃 등은 지고 있다.

 

이곳 계림은 귤과 꽃감으로 유명하단다.

석회석 동굴을 관람하기 위해 銀子岩에 도착 하였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다.

화려한 석회석 동굴을 감탄을 연발 하면서 구경 하였다 옛날에 와서 보았던 계림 시내 가까이 있는 동굴보다 훨씬 장엄하고 화려 했다.

무엇보다 다행한 것은 정아 母가 큰 어려움 없이 동굴 내를 우려와는 달리 잘 다녀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곳의 산들은 석회석산이라 동굴이 많아 어린애들이 종종 실족 당할 정도란다.

백미화랑이라는 곳의 수려한 경관을 차를 탄체로 통과 했다. 우리나라에 이런곳 하나만 있어도 관광객이 넘칠 텐데...

날씨가 아침에 비, 리강 유람시는 흐림, 안개가 많고 구름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12시경이 되니 구름과 안개가 짙어지고 있다.

 

양탁 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중국의 경작지는 경지정리가 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인력으로 충분해서인지 그 흔한 경운기와 손수례 하나 안 보인다. 우리나라 50년대 와 같이 소(물소)와 삽과 괭이로 농사를 짗는다. 토지가 국유지라 개인 할당이 적고 자급자족 을 벗어나 열심히 일할 필요성이 없는 모양이다. 가나도 벗어날 수 없고 자포자기인 것 같다.

桂林 奇石館을 지나 계림 시내에 가까운 곳의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다가 정전 속에 식사를 했다. 점심이 끝날 무렵 불이 들어왔다. 밖에는 비가 세차게 내리고 일행들은 우산 사기에 바빴다. 雨中에 地質 博物館을 訪問 했다. 고대 화석과 진귀한 광물 전시와 광물제품(반지. 목걸이 등)등을 관람 및 비디오에 담았다. 여행객의 시선을 끌고 한 푼이라도 돈을 벌기위해 옛날에 없던 것을 많이 만드는 것 같다.

 

지질 박물관을 나와 시내로 들어와 상비산은 차중에서 처다 보고(옛날에 왔을 때는 강변에서 내려서 시간을 가지고 보았지만) 다음은 왼쪽에 호수가 있는 구리탑을 지나 리강 상류인 해방교를 지났다. 그리고 우중이지만 그다지 높지 않은 북파산 (가파러지만 높이는 100m 정도 되어 보임. 이곳에서 리강과 계림 시내를 조망 할 수 있을 것 같음.)등반을 실시하였으나 ,

나는 정아 모 때문에 등산을 포기하고 북파산 아래 리강변 공원에서 기다리던 중, 돌에 거린 그림이 괜찮아 보이는 평풍그림(小)을 만원(한국돈)에 매입 했다.

 

다시 진주및 옥공예를 판매하는 곳을 들린 후 (물건을 아무도 안살 것 같아도 몇 사람은 사는 사람이 있었다. 필요 없는 매장은 안 가면 좋겠지만, 가이드로서는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중국집에서 저녁식사를 했다. 이곳에서 중국술(빼갈 술병 디자인이 좋음)) 한병과

목이버섯을 샀다.

오후 8시경에 열차를 타기 위해 유주(공업도시로 인구가 백만이 넘는 모양이다.)라는 곳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꼭 비포장도로와 비슷할 정도로 승차감이 좋지 않았다.

밤 10시경에 유주에 도착 했다. 유주는 계림보다 큰 도시로 주요 간선 도로는 조명이 밝았고 건물이 화려해 보였다., 특히 거리의 가로등이 몇 가지 이색적이다. 한 전주에 색깔이 다른 전구를 다양한 모양으로 다양하게 집단으로 달아 조명을 하머로서 사람의 시선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도 고객 상대 하는 집(회사나 장사하는 집)은 홍보를 위해 필요 할 것 같다.

 

대합실에서 나누어 주는 아침용 도시락을 배당 밧고 밤 10시 20분 장가게 행 야간열차에 올랐다.

난생 처음으로 타보는 침대열차 회기심이 크다. 그러나 4인 1실 2층으로 된 구조이고 상당히 불결하다.(※열차 호실 배정은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분리함) 화장실과 세면장도 불편하고 다소는 불결하다.

이 열차의 등급이랄까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몰라도 다시는 중국에서 열차여행은 사양하고 싶다. 내일 아침 장가게 도착 시간은 오전 11시경 이란다. 좀도둑 주의사항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3월 17일

아침에 일어나 간단한 세면을 하고 도시락으로 아침을 대신 했다. 좀 피곤하고 좋지 않은 여행 환경이지만, 그래도 모두 불평 한마디 없는 즐거운 표정이다.

張家界로 가는 철로변 산악 지대라 그런지 산을 경사가 급한데도 계단식으로(소규묘 ) 경작 하고 있다. 물론 농기계 사용은 엄두도 몿내고 전부 인력으로 하는 그냥 생계만 유지할 정도다. 우리나라 같으면 도시로 몰려들겠는데 중국이 농민이 도시로 몰려 신흥 도시가 많이 생겨도 아직 이런 곳은 영향이 덜 미치는 모양이다.

 

위도가 낮아 따뜻한 곳이라 그런지 밀감 재배를 많이 하고 각종 채소와 유채꽃이 만발하다. 일반 주택들은 (기와장이 우리나라 1/4정도 크기. 그나마 그냥 포개쌓는 식으로 지붕에 올려놓음) 낡거나 초라하고 현대식 아파트도 큰 들판의 부락에는 간혹 보이지만 외관이 무척 불결해 보였다.

산악 지대라 그런지 터널이 계속 이어지고 산에는 나무가 거의 없다. 암반이 많은 산이라 토질도 척박해 보였다.

이곳은 아직 자동차가 많지 않은가보다 큰 부락을 몇 개나 지났는데도 차가 보이지 않는다. 간이역 한곳을 지나니 역에 석탄을 하차하여 놓고, 그것을 조그마한 추럭에 여성들이 삽으로 실고 있었다. 차도 귀하려니와 장비로 석탄을 차에 실어면 간단 할 것을 그런 장비가 없는 탓인지 인력으로 그것도 여자들이 실는 광경은 측은하기도 하고, 언제 빈곤을 탈피할지.... 동정이 간다.

이곳의 생활수준은 우리나라 60년대 정도로 되어 보인다.

 

張家界 역에 10시 5분에 도착 했다.

현지 가이드 교포 3세인 손 국(할아버지 고향은 경주 길림성 출신) 이 나왔다. 가이드 수입이 어느 직장 보다 많고 특히 한국인 여행객이 많아 서로 필요에 의한 것 같다.

계림서 한국인 여행 가이드가 320명 아라 했는데, 이곳도 그 수준은 되는 300명이란다.

역 앞에는 관광 홍보를 위해 화려한 대형 간판이 많고 장사하는 분들이 엄청나게 많다.

※잡상인에게 중국말로 “”무요“”하면 싫다는 뜻이라 그렇게 사용하란다.

 

열차에서 내려 여행용 가방을 우리 돈 천원을 주고 많이 나와 있는 짐꾼에게 마겼다.

꾀 무거웠는데도 (체격이 작은 토호족) 계단을 잘도 내려간다.

張家界 관광지 까지 50분이 걸린단다. 張家界는 면적이 9,653 평방키로 인구는 150만 명이란다.

張家界 시내는 상당히 넓어 보이고, 10층 내외의 아파트도 있고, 화려한 건물의 백화점도 보였다. 오래된 아파트는 불결하기 그지없다. 이곳은 호텔이 별 5개는 없고 4개가 최고란다.

 

張家界 시내는 차가 비교적 좀 많이 다닌다.

역시 도로는 노면이 한국의 세멘트 길보다 승차감이 좋지 않다. .

시내에서 같이 온 일행 중(다른 조) 어느 아주머니가 열차 출구를 나오면서 넘어져 병원 응급처치를 위해 시간이 지체 되었는데 그분은 결국 장가계 산행은 우리 이재근 사장과 함깨 포기를 하였다. 조심해서 다녀 본인은 물론 타인에 누를 끼치지 말아야겠다.

 

장가계는 비가 많아 상해와 마찬가지로 1층에는 못 살고 2층에 살아야 한단다.

중국은 어디를 가나 교통신호를 무시 할 정도로 질서가 없는데 이곳도 마찬가지다.

차가 적어 오래된 무질서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는 모양이다.

관광지로 가는길 시내는 중앙 4차선이 있고 양쪽으로 녹지대(조경이 잘되 있슴) 녹지대 밖에 차도가 양쪽에 또 하나 있다.

장가계는 150만 인구 중 토호족 원주민이 100만 명이 되고 20여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시내를 빠저 나오니 다시 차선이 없는 2차선 도로에 들어섰다.

주위의 야산에는 거의 심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유자나무 유목이 많고 유채꽃도 많다.

잠시 가다가 고속도 통행료인지, 입장료인지 차를 세워 받고 있다.

그리고 관광지주변이라서 묘지를 많이 옮겼다는데도 아직도 석문 형식의 묘가 많다.

경사가 급한 곳에 밀감 재배 등 화전을 일구어 농사를 짖고 있다.

 

장가계 입구 무릉원으로 가는 진입로를 세멘트 포장 보수 공사를 하고 있다.

도로변 중간 중간에 명승지에 대한 대형 칼라 홍보용 조경 간판이 즐비하다.

이곳에도 산에 소나무 편백 삼나무 등이 보이나 임상이 아주 빈약 하다.

가는 길이 노면이 계속하여 좋지 않다. 터널에는 조명이 없는 곳이 많고, 2km이상 되는 곳은 조명이 희미한 것을 보니 전력 사정이 좋지 않는 것 같다.

 

안내원의 주의사항 관광지내의 흡연은 한국 돈으로 벌금 5만원이라고 강조한다.

무릉원 마을입구에 좁은 협곡에 들어서니 희뿌연 운무 속에 뽀족 뽀족한 산들이 송곳처럼

탄성을 자아낸다.

더디어 무릉도원 마을에 도착하여 이곳에서 한식으로 중식을 마친후 장가계 입구 무릉원이라는 대형 출입문에서 입장 시 신원 확인을 지문으로 카드와 함께 정리 후 별도 마련한 미니버스(일제 도요다)로 갈아타고 입산을 하는데, 200여m 올라가니 좌측으로 협곡에 계곡을 막은 호수가 나타났다.

 

올라가는 길이 좁기도 하지만 급경사 S자 코스다. 터널도 있다. 하산 시에 이 길로 다시 내려온단다.

이태리의 쏘렌토 카프리섬 코스와 비슷하게 스릴이 있다.

천자산은 케이불로 올라가는데 불러보는 시간은 1시간 정도, 원가계 둘러보는데도 한 시간 정도로 예정한다.

가이드는 한국의 대통령 박정희. 전두환 등을 모른다. 조국에 대한 관심이 전연 없는 것 같다. 올라가는 도로변에는 목련과 벚꽃이 피었다.(합천보다 한 달 정도 빠른 것 같다.)

 

천자산은 높이는 1,250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케이불카 올라가는 길이가 2,098m나 된다. 감탄을 하면서 천자산 정상에 올라가니 이곳에 200~300명 정도 되는 관광객이 모두 한국 사람이다. 사진과 비디오로 기록을 남기고 기념품 가계를 둘러보았다. 장사도 전부 한국말이고 불구자들 의 노래도 아리랑. 도라지 등 온통 한국 노래 가락이다. (천 원씩 선금을 주저 없이 준다) 한국의 유원지에 놀러온 기분 이다.

어디로 올라왔는지 비니버스가 다음 행선지로 안내키 위해 대기해 있는 버스에 올랐다.

 

원가계는 버스로 40분 정도 소요 됬다. 역시 장사하는 사람이 즐비하고, 온통 한국사람 뿐이다.

주위의 산에 많이 심겨져 있는 삼나무를 비롯한 잡나무들이 금년에 예년에 없던 폭설로 심하게 부러지거나 넘어져 있다.

산 정상에는 한국의 야산과 같은 완만한 능선을 이루고 발아래 산들이 원래는 완경사지 였는데 장구한 세월을 두고 누루와 침식으로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고 , 산 정상에 풍우와 비바람에 형성된 것에 비하여 감상하는 기분이 반감된다.

 

원가계 와서 비디오 테이프를 빼앗겼다. 잡상인들이 관광객 지나가는데 천원 천원 웨치는 소리가 꼭 참새들의 노래 소리 같다. 외국인 이 섞여서 관광을 해야 관광 기분이 날 텐데, 아직 홍보가 않되었는지 조금은 씁쓸하다.

 

원가계 꼬불꼬불한 산길(편도 이용하고 있슴)을 돌면서 사진도 남기고 중국 막걸리도 맛을 보면서 풍경을 잘보고 하산 길은 높이 326m를 자랑하는 중형의 엘레베트를 이용 했다

내려 오는 시간이 1분58초 초 고속이다. 내려오는 도중 반 정도는 전방 확 틔어 경관을 보면서 내려 왔지만, 도착 지점에서 는 약 100여m가 동굴이고, 동굴 양쪽으로는 중국의 유명 관광지를 화려한 대형 칼라 간판으로 가득 채워 홍보를 하는데 아이디어가 좋고 기분도 좋았다.

 

이곳에서 (골짜기 협곡) 장가계의 대표적인 산세를 차가 도착 할 때까지 감상을 하였고 당초 천자산으로 올라가는 갈림길 까지 골자기를 따라 내려오는데 차창 밖의 경치가 정말 볼만 했다. 나머지 길은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가는 길인 셈이다.

하산하여 낮에 중식을 하였던 옆 식당에서 삽겹살로 저녁을 먹었다.

다음은 무릉원 마을에 있는 관광호텔 같은 곳에서 1인당 5딸라 씩 팁을 주고 발 마사지를 하는데 남자는 젊은 여자가, 여자는 젊은 남자가 서비스를 하는데 처음으로 받아 보았지만 하루 종일 산행을 한 후라 그런지 발과 몸이 다소 시원 하기는 했다.

 

저녁 약간 늦은 시간 무릉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가야면의 무릉 호텔에 투숙했다.

외관은 좀 오래된 것 같았지만 숙소는 비교적 상위 급 이였다

3월 18일

아침에 6시 30분에 기상하여 부패식으로 식사를 했다.

식사도전에 말로만 듣던 참깨 구입이 있었는데 5k에 1만원 우리나라에서 사는 가격보다 훨신 싸니까 많은 물량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 우리도 10k(두 봉지) 정도 사려고 했지만 기회가 없었다.

8시에 말로만 TV에 홍보가 많이 되는 寶峯湖 湖水로 출발 했다.

소요시간은 10분정도 가까운 곳이다. 매표하는 입구에 대형 주차장을 중심으로 상점이 많았다. 입구부터 주위의 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좁은 골짜기를 100m 정도 올라가니 높이 85.5m 인공 폭포가 쏟아지고 있다.

야간의 경사진 길을4~500m 정도 길을 올라가는데도 정아 모는 힘겨워 하는데 가마꾼이 2만원이면 테워 준다는데도 주위 눈이 무서워 사양하여 그냥 쉬어가면서 올라가기로 했다. 다시 급경사 좁은 산길이다. 우리일행 중 (삼천포 출신) 이것을 이용하는 사람은 당초 약 속 2만원에서 추가 2만원을 요구해 입씨름하여 만원 추가로 겨우 일단락 지웠다.

나라가 다르니 당초 약속을 이행 안하여도 (즉 억지를 부려도) 손해 볼 수밖에 없으므로 조심을 하여야겠다.

 

무리를 하여 300m 정도 급경사를 오르니 보봉호 호수다. 들어가는 입구에서 산야와 선착장을 산진과 비디오로 기록을 남기고 유람선에 올랐다. 이곳도 관광객이 온통 한국인뿐이고 사람이 많아 유란선 승선이 복잡 했다.

보봉호는 제일 깊은 곳이 119m 이고 평균 수심이 90m라 한다. 총 길이는 2.5km 면적은 모르지만 그리 넓지 않았다.

하산 하는 쪽의 폭5m . 높이 85.5m. 막은 것이 이렇케 거대한 관광용 호수가 된 것이다.

 

보봉호 호수 주변에는 토호족들이 살고 있고 호수 안으로 진입 할 적에 우측에 처녀가 정자 같은 테서 노래를 배가 지나갈 때마다 부르고 돌아 나올 때는 총각이 노래를 부른다.

호수의 물도 깨끗하고 주위 산세도 계림의 산처럼 아름다웠다.

호수내는 뚜꺼비 바위랑, 선녀 얼굴 모습 등 형상석이 유람선 운치를 더하였고 선상에서 토호족 아가씨 노래와, 우리일행의 노래솜씨에 순식간에 하선 지점에 도착 하였다.

내려오는 길에 타관광객과 가이드간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곳은 약 10여년 전에 말레지아 화교가 50년 임차로 계약하여 만든 것 이라한다.

1일 입장료가 우리 돈으로 700~1천만 원 이라니 대단 한 수입이다.

보봉호를 내려 올때는 회전식인공 계단을 이용 했는데, 필요에 의해서 만들었겠지만 이색적이다. 올라갈 때 보았던 인공폭포(호수의 물을 자연적으로 흘려보내는 시설의 폭포임)에서 단체 기념 찰영을 하였다.

 

이곳 인공폭포 앞에도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매점이 늘어서 있다.

검은 깨 무개를 달지 않았지만 한 봉지 5kg 로 생각하고 만원씩 두 봉지 샀다. 어디를 가나 관광지는 한국 돈으로 통했다.

다음은 천자봉 쪽의 10리 화랑이라는 곳으로 출발 했다. 차중에서 바라보는 보봉호 쪽의 산봉우리는 정말 아름다워 비디오에 담아보았다.

도중에 SILK매장에 들렸다. 제품의 질보다 가격이 비싸다. 넥타이도 이태리 보다 비싼편임. 그래도 명주 솜이불과 넥타이를 사는 분들이 있다.

 

한인이 경영하는 중국집에서 중식을 끝내고 작일 올라갔던 길을 다시 올라 좌측으로 한참 올라가니 주위경관이 좋은 협곡에 모노레일을 타는 10리 화랑이라는 곳이 있었다.

매표소 입구 주차장을 중심으로 승차하는 출입구 쪽으로 매장이 늘어서 있어 승차할 동안 구경거리다. 한 칸에 6인이 탈수 있고 한번에 30~40명 정도 승차 여러대가 운행중이고 약간의 소음은 있지만 오가면서 주위 경관을 감상하기에는 안성마춤 이다. 특이하게 모노레일 천장은 투명 아크릴로 하여 편리했다. 산골짜기 종점에는 삼형제봉을 비롯한 봉우리가 경관도 좋고, 먹거리와 관광 상품 매장이 이곳에도 아주판매에 극성 이였다.

 

내려오는 길에 수정판매점에 들렸다. 돌로 만들었다는 돋보기 안경이 사용해보니 아주 시원하게 밝게 보여 무려 3개나 샀다. 다른 것은 우리나라 안경과 마찬가지로 한 개 만원인데 안경집이 있는 것은 한 개 2만원 지불했다.

다음 코스는 석회암 황룡동굴로 큰 기대를 하고 향했다.(이재근 사장이 계림보다 좋다는 홍보를 하였으므로)

가는 주우ㅣ 야산들은 완만한 산들이 거의 민둥산이다. 산에 임상을 보고 국력을 평가 한다는데 이곳은 국가에서 인공 조림을 하던 천연림 보육을 하여야 하겠다.

 

차에서 내려 하천을 따라 동굴로 가는 1km정도 되는 연변에는 간이 천막으로 만든 매장에서 호객 행위를 하고 있었다.

오후 2시 26분 동굴 입구에 도착 하였다. 입구는 조각을 잘한 누각처럼 집을 잘 짖었고 약간 가파른 경사다. 동굴 관광이 건강한 사람도 2시간 이상 걸린다는데 오르막이 얼마나 되는지 정아 모 때문에 걱정이다.

입구에서 얼마가지 않아 동굴 내 인공호수를 만들고 조각배(모터 장착) 20여척이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다. 우리도 처음이라 호기심과 함께 승선 했다.

 

1km 정도나 배를 타고 들어가니 2층 3층으로 길을 낼 정도로 동굴 내가 넓고 크다.

그러나 석순 등은 조명을 하여 두었지만 90% 이상 인공 조형물 같아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았다. 계림처럼 사람으로서는 만들 수없는 신비스러운 맛은 거의 없고 거의 전부가 인공으로 만들 수 있는 것뿐이다. 일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걸었지만 헛고생만 한 것 같다. 그래도 관람객은 엄청나게 많았다.

 

관람을 끝내고 차 타러 오는 도주에 화장실은 용변을 보는 바닥에 하천 물을 유입 대변과 함깨 그대로 겨울 보내는데 중간 중간 걸려 있는 것이 좋지 않았다.(소변은 상관없겠지만)

도중에 다리 위(폭 30m 정도)에서 5~6세 되어 보이는 어린이 2명이 밀감을 들고 천원 천원 소리를 하는 것이 기특한데 모드 그냥 지나는 것 같아 내가 들고 있는 것을 사주었더니 가까이 있는 어머니는 아랑곳 하지 않고 천원짜리 지페를 들고 좋아서 뛰면서 내 뒤를 잠시 뒤 딸아 왔다. 밀감은 차중의 일행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음은 녹차 판매장을 들려 시음을 하면서 녹차에 대한 기능별 설명을 듣고, 오후 5시 30분경 장가계로 향했다. 장가계 까지 40분 소요 된다고 했다.

도중에 장가계 시내를 차중에서 비디오에 담았다. 경관이 좋은 뒷산(?에 케이불카를 설치하고 있다. 멀리서 보아 작은 산의 구멍으로 비행기가 지나다닌다고 한다.

어둠이 내릴 즈음 한식으로 장가계의 마지막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그동안 우리일행 따라 다니던 아가씨 2명이 찍은 비디오와 사진을 사느냐 안사느냐 시간을 상당히 지체 했다 나는 그들이 찍은 사진 몇 장과 CD를 한 장에 2만원 주고 샀다.

 

어둠이 내린 밤길로 장가계 공항에 도착 했다. 비행장 탑승 수속 받는 건물에 붉은 글씨로 크게 “張家界 荷花機場(비행장의 뜻이라 함.) 게시되 있다.

서울 사람을 비롯한 대부분 한국인들로 붐비고, 모두 중국 농산물을 싸다고 많이 사서인지 탁송하는 짐들이 많다.(여기서는 다른 직항로가 없어 일단 상해로 가서 환승 하는 모양이다.)

이곳에서 빼앗겼던 비디오 테잎을 받았다.

출국장 매장 간판이 한글로 “진주(眞珠)전문 매장”이라는 큰 간판을 걸어둘 정도로 한국인 관광객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이곳에서 동방항공을 이용해 9시 50분 출발 상해에는 12시경 도착 할 예정이다. 숙소에 들어갈려면 새벽 1시가 지나야 될 것 같다. 장가계서 상해까지는 1,236km 1시간 40분소요 된단다.

상해 공항에 도착하여 일행 중 어떤 아주머니가 화물이 도착치 않아(짐이 많아 추가로 부친 것이 미도착 :못 찾은 것 같다.) 공항에서 한 시간 이상 지체 했다. 밤이 늦어 모두 극도로 피곤해 했다.

새벽 2시지나 상해 시내 금융가 거리에 있는 호텔에 투숙하였다.

 

3월 19일

아침 9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5시 30분에 기상했다. 세면을 하고 짐을 챙겨서 로비로 내려 왔다.

대부분 나이가 들어서인지 제 시간에 나왔다. 호텔로비에서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였다.

호텔 밖에 나오니 어둠속에 청소 하는 분들이 있다. 어둡지만 기념으로 호텔 전면을 사진에 담아 보았다. 차량은 간혹 다닌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 은행건물 금융거리인 것 같다.

 

6시에 상해 포동 공항으로 출발하여 7시경 도착하여 우리가 단체 손님으로는 제일 빨라서인지 화물 탁송 제일 앞자리에 화물을 대기 시켰다.

아직 직원들은 나오지 않았다. 곧이어 화물을 부치고 탑승 수속도 끝냈다.

이곳 공항은 국제도시답게 외국인이 상당히 많다.

8시 30분 탑승을 하였다. 비행기는 9시 출발 예정이다.

역시 중국 비행기라 30분정도 늦게 출발 했다. 상해서 부산까지는 1,000km , 소요시간은 1시간 10분 예상이다.

 

김해공하에 도착 하여 짐이 많은 사람은 별도의 확인을 받는데 나도 그곳에 가니 어떤 분은 먹다 남은 밀감 등 때문인지 생물은 압수당하고 신고서를 작성케 했다.

앞으로 여행 시에는 참고로 하여야 하겠다.

대기하고 있는 합천 고속 관광버스에 탑승 12시 조금 지나 무사히 합천에 도착 하였다.

이번 여행기간이 짧고, 여행지가 별 볼거리가 시원찮아서인지 덤덤한 여행인 것 같다.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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