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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의 추억 소산/문 재학
몽골은 특이한 나라다. 강우량이 적어(년중 강우량이 우리나라 1/10정도 밖에 안 되는 130m정도) 하늘은 언제나 쾌청하고 풀이 잘 자라지 않아(년중 15cm내외 자람)초지는 넓어도 유목하지 않으면 안 되고, 몇 시간을 달려도 산골짜기와 들판에 개울을 보기가 힘든 나라다.
2007년 8월 인천공항에서 출발한지 3시간 반 정도 걸려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상공에 도착했다. 상공에서 내려다 본 몽골은 황량 했다. 민둥산 비탈진 초원에 판자촌이 즐비한 외곽을 지나 징기스칸 국제공항에 내렸다.
계루중인 여객기 1대 이외는 우리가 타고 온 비행기뿐이고 공항건물도 초라했다. 그래도 입국절차는 다른 나라 국제공항과 다름없이 철저했다. 몽골의 8월 날씨는 섭씨24~5도로 활동하기에 적합한 온도였다.
시내전체를 집중난방 하는 대형 굴뚝을 가진 난방 시설물이 눈에 확 띄게 시야에 들어오고 이곳에 연결된 직경 1m나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난방 파이프를 지상에 노출시켜 시내 곳곳에 이어진 것이 이색적이고 신기했다. 도로변에 대형 야립 간판도 많이 보였다.
몽골 인구의 42%가 살고 있다는 수도 울란바토르 시내는 판자 집은 없지만, 거리의 풍경이 우리나라 중소도시의 70~80년대와 비슷한 것 같았다. 아파트는 보이지 않았지만 시내 곳곳에 신축을 많이 하고 있었다.
시내 앞을 흐르는 조그마한 “퉁가강”을 지나 시에서 바라본 정중앙 앞 野山 정상에 있는 “자이승승전탑”(2차대전 일본군을 몰아낸 기념) 을 방문 했다. 산중턱까지 차가 올라갔다. 이곳에서 시내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승전 탑 山麓변에는 우리나라 조계종에서 지원 건립한 크다란 금동불상이 있는 공원이 있고 공원의 도로 맞은편에는 자랑스런 한국인 의사 이태준 기념 공원이다. 헌신적인 의술을 펼쳐 몽골에서 영웅칭송을 받는 인물이다.
기념비에는 한글을 크게 명기하여 더욱 반가웠다. 이태준 기념관에는 그 동안의 활동상황과 유품 등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숙소는 신축한지 3개월 밖에 안 되는 “신신그랜드 호텔”로 42“ PDP TV가 응접실과 침대 앞 등 2대가 있을 정도로 방이 넓은 호텔 이였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섭씨20도 내외 우리나라 초가을같이 기분 좋은 날씨였다.
시내 중심심지로 들어가면서 어제 본 승전탑 옆의 산에 돌에 흰 페인트칠을 하여 산 전면에 만든 거대한 징기스칸 초상화가 승전탑과 같이 시내 어디에서 보아도 잘 보이도록 만들어 두었다. 산에 풀이 자라지 않으니 초상화 관리를 위한 刈草작업은 필요가 없단다. 우리나라 같으면 여름이면 초상화를 보기 위해서 수차례 예초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시내 관광으로는 특이한 음성 노래를 곁들인 민속공연과, 관광객이 많이 오는 몽골에서 제일 큰 사찰 “간등사”도 둘러보았다 간등사의 본당 내 금동으로 장식한 대형 불상(3층 높이)이 아름다웠다. 찰영 하는데 10$ 이나 주고 찰영 하였다.
다음은 시내 중심지에 있는 “수흐바타르” 대형 광장 주위로 국회의사당. 정부청사. 대법원 건물 등이 빙둘러있는 곳을 방문 하였는데. 이곳에도 징기스칸의 대형좌상 동상이 있었다. 몽골인들이 얼마나 징기스칸을 崇仰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은 서울시와 자매결연 기념으로 조성한 “서울의 거리”를 방문 하였는데 이곳의 아스팔트 포장은 시내 여타 도로의 모범이 되고 있을 정도로 포장을 잘 하였다. 한국인의 자긍심을 느끼는 도로였다.
다음은 퉁가강 부근 관람석이 있는 활터에서 사전에 준비된 활쏘기 시합(한국5명-몽골5명) 하였다. 활과 화살이 한국과 달랐다.몽골 전통복장을 하고 나온 궁사가 명중률이 높았다. 그리고 한국 활을 쏠때는 위험하여 화살수거를 못하게 하는데, 몽골은 활을 쏘고 있는중에도 현지인이 화살을 수거해 가져다주었다.
시합이 끝난 후 兩國의 화살을 기념으로 교환하고 단체 사진도 남겼다. 이어 몽골 측에서 베푸는 주연에 참석 몽골 酒(50도)에 大醉하여 숙소로 돌아 갔다.
다음날은 “게르”(유목민의 주거인 원형 텐트)와 승마 체험을 위해 기차를 탔다. 복도가 있는 침대 열차였다.
열차로 2시간을 달려도, 산은 많은데 나무하나 없는 민둥산 초원이다. 대 평야는 보이지 않고 완경사 산록변 초원에 가축을 방목을 하고 있고, 이의 관리를 위한 주거용 “게르”가 군데군데 산재해 있었다. 그리고 판자촌 부락도 간간이 보였다. 초원에는 맹금류 독수리 같은 것이 자주 보였다.
이곳은 강우량이 적어 판자가 수십 년을 지나도 썩지 않기 때문에 편리하게 이용한단다. 우리나라 같으면 일년이면 썩기 때문에 판자를 이용하려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철로변에는 방목 가축의 출입을 막기 위해 모두 철망을 설치해 두었다. 농작물(채소 포함)을 경작하는 것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어쩌다가 감자 같은 것을 재배하는 것이 한 두필 보이는데 확실치는 않았다.
3시간여를 달려 열차에서 내렸다. 역은 우리나라 간이역 같이 허술했다. 기다리는 버스가 오지 않고 전화도 불통이라 가까이 있는 판자로 된 큰 부락으로 갔다. 트럭을 빌려 타기 위해서다. 직접 목격한 판자촌 부락. 조금은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트럭을 급히 구하다 보니 적재함에 동물의 피가 묻어 있는 것을 폐 다이어로 덮고, 그 위에 앉아서 비포장도로를 20여 키로를 먼지를 둘러쓰면서 산골짜기로 들어갔다.
산골짜기 입구 저지대에 가축 糞을 산처럼 많이 쌓아 두었는데 날이 건조하니 썩지 않고 그대로 말라붙어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농사용 퇴비로 이용할 것인데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는 산에 나무도 있고 골짜기가 깊어서인지 모르지만, 작은 개울에 물이 흐르고 있어 우리나라 산골과 같은 분위기였다.
목적지에 도착하니 몽골 주민을 위한 교육장인 큰 시설물이 있고, 그 맞은편에 우리가 묵을 “게르”10여 채를 비롯 창고를 겸한 식당 건물이 있었다.
일행은 3인 일조씩 “게르”배정을 받고 미리 준비된 승마체험에 들어갔다. 필자는 승마가 두려워 부산에서 온 한의사인 70대 초반의 H씨와 함께 마차를 탓는데, 몇 키로 쯤 타니 방석이 있어도 덜컹거리는 충격에 엉덩이가 아파 중도에 돌아 왔다.
일행이 돌아올 때까지 숙소(게르)옆에서 담소를 하면서 기다렸다. 이야기 도중 무심코 바라본 앞산 능선위로 떠있는 뭉게구름을 보고 깜짝 놀랐다. 大氣중에 습기가 적어서인지 몽실몽실한 흰구름이 그렇게 희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흰구름을 볼 수도 없고, 보지도 못했다. 정말로 아름다웠다. 동영상에 담고 마음에도 담았다.
2시간 정도 지나 승마체험 일행이 돌아왔다. 이어 현지인들에게 승마경주를 준비케 하고 높은 곳에서 관람을 하기 위해 게르 앞 거대한 장승들이 즐비한 곳을 지나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선수는 어린이를 포함 13명이 참여 했다. 10여키로 밖에서 대각선으로 뽀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광경은 영화에서도 볼 수없는 멋진 장면 이였다.
시상금을 걸어서인지 안장도 없이 채찍을 휘둘리며 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었다.언덕을 달려 올라와서인지 말이 온몸이 흠뻑 젖을 정도로 땀을 많이 흘렸다. 말이 땀을 흘리는 것도 처음 보았다
1등에 1만원, 2등에 5천원(이곳 노동자 일당이 5천원임)을 주고 나머지 선수는 3천 원씩 모두 주었다. 전부 흡족해 하면서 조금 전의 경주마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한국어를 공부하는 남녀대학생 10여명이 우리일행을 돕고 있었다. 한국말은 서툴지만, 모두 한국사람 같고 미남 미녀 들이였다. 남학생들은 양을 잡고 여학생들은 저녁 준비를 했다. 몽골 전통 요리인 양고기와 귀한 채소를 곁들인 푸짐한 저녁 식사를 했다.
저녁에는 늦도록 켐프파이어로 대학생들과 춤과 노래로 즐기고 잠자리에 들었다. 야간에는 기온이 낮아 “게르”내 난로에 4차례나 밤잠을 설치면서 불을 피우는 학생들에게 미안 했다.
밤중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게르”에서 나와 바라본 밤하늘의 별. 정말 엄청나게 많았다. 우리나라 시골의 청명한 가을 밤하늘의 별보다 10배 이상 별이 많았다. 그리고 빤짝이는 별빛은 너무나 영롱하여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야말로 별빛이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답고, 달이 없어도 달빛처럼 주위가 밝았다. 처음 보는 광경. 평생 잊지 못할 별과 별빛 이였다. 맑은 밤하늘 전체가 빤짝이는 별 덩어리였다. 대기중에 습기가 극히 적어니 그 수많은 별을 육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수고한 대학생들과 단체사진을 찍고, 덜컹거리는 버스를 같이 타고 우리나라 노래를 부르면서 어제 도착했던 기차역까지 나왔다.
역에는 기차를 타고 갈 몽골인들이 많이 나와 있고, 70~80%는 牛乳 통을 가지고 있었다. 우유 통은 아무용기나 담았고, 뚜껑이 없는 것은 비닐로 칭칭 감아 불결하기 그지없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 우리일행의 승차가 힘들 정도였다.
그런데도 역마다 기차는 서고 우유통을 든 주민들이 계속 승차를 했다. 이유가 있었다. 기차가 아니면 운송 수단이 없고, 이 기차를 놓치면 우유를 팔수 없기 때문에 사생결단인 것 같다.
이 역시 평생격어 보지 못할 서있기도 힘든 교통지옥 이였다. 그렇게 3시간 정도를 고통 속에서 보내고 울란바토르 역에 도착 했지만. 하차도 전쟁이다. 우유가 상하기 전에 빨리 운반해야 하기 때문인 것 같다. 간신히 일행들을 만날 수 있었다.
중식이후 80여키로 떨어져 있는 “데렐지 국리공원”으로 향했다. 가는 도중에 나무다리위로 지나가는데 다리가 무너지지 않을까 조마조마 했다. 차에서 내려 직접 다리위에 걸어보기도 했다.
도로변에는 관광객을 위한 낙타도 보이고 야크 방목도 많이 하고 있었다. “데롈지” 국립공원은 기암괴석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자랑이다. 이곳에는 몽골인의 별장과 색상이 있는 아름다운 “게르”도 풍광이 좋은 곳에 있었다.
차가 머무는 곳마다 외국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산 능선에 잘생긴 기도하는 여인상을 마지막으로 보고, 해질 무렵 석양을 안고 울란바토르 시내로 돌아 왔다.
인구 290만 명의 나라에 소(牛)가 2억 마리가 넘는다고 하니 우리나라 한우 160만 마리보다 120배로 많이 사육하고 있는 것이다. 그 외 말. 양 등 생계유지를 위해 가축을 많이 사육하는 축산국 이였다.
형제의 나라같이 모두 친절하게 대해주는 나라 몽골. 무척 인상 깊은 여행 이였고, 4박5일의 짧은 기간 몽골의 극히 일부분만 둘러보았지만, 추억에 남는 것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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