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추억속의 고향

소산1 2011. 2. 1. 10:11

 

추억속의 고향|☞ 사는 이야기
소산 | 조회 14 |추천 0 |2011.01.30. 07:54 http://cafe.daum.net/eyudang/KXxP/831 

추억속의 고향

          소산/문 재학

 

이제는 아득한 세월. 전설 같은 추억이 되었다,

반백년 세월이 흐른 6.25 사변이후 50년대의 질곡(桎梏)의 삶. 하나하나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던 시절 그냥 눈만 뜨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의 연속 이였다.

그래도 허기진 배를 채우기 힘든 춘궁기 보리고개를 어김없이 해마다 맞이해야했다.

 

이른 봄부터 부족한 먹거리를 보충하기위해 사람들이 많이 나와 냉이와 쑥 등을 뜯느라 들판이 하얄(모두가 흰옷을 입기 때문임) 정도다.

 

산에는 취나물. 미역취. 수리취. 홀잎 등과 소나무 껍질(송기)을 채취했다.

송기는 물에 오래담가 송진 맛을 우려내어도 송기떡은 괜찮은데, 송기죽은 송진 냄새 때문에 항상 꺼렸다.

 

계곡물 소리가 높아가는 이른 봄. 이산 저산에서 “꿩 꿩” 장끼(수꿩)가 울기 시작하면, 야산에는 진달래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모두가 林産燃料로 난방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민둥산으로 변해버려 灌木인 진달래 등만 남아 온산이 진달래꽃으로 불탔다.

 

나무를 하면서 수시로 진달래꽃을 따 먹는데 모두들 입가에 자주색 진달래 꽃물이 묻어 서로 처다 보고 웃기도 했다.

 

시냇가 버들강아지 어린 꽃은 달작지근하고 먹으면 배가 부른데, 진달래꽃은 먹을수록 배가 고팠다. 그래도 땔감나무르 하면서 부지런히 따먹었다.

 

봄 햇살이 등이 따가울 정도로 쏟아지면 보리가 하루가 다르게 무성하게 그리도 탐스럽게 자랐다.

이때쯤이면 긴긴 봄날 가슴을 저미는 소쩍새와 뻐꾸기가 間斷없이 운다.

 

농가마다 식량이 바닥날 시기라 그런지 지금도 뻐꾸기와 소쩍새가 울면 배가 고프고 처량하게 들린다.

길가에 지천으로 피는 향긋한 향기를 내뿜는 하얀 찔레꽃만 보아도 배고픔으로 다가 왔다.

 

보리고개. 보리이삭이 탱글탱글 노랗게 물들면 풋보리로 베어다가 까끄라기를 제거하고 껍질체로 디딜방아에 찧어서 먹었다.

 

그렇게 어렵게 살아도 거지가 밥 동냥을 오면 이것이라도 조금씩 나누어 주는 美德은 살아 있었다.

 

비료가 없으니 풀을 베어 퇴비를 만들고 가축의 분뇨와 사람의 인분이 비료 대용 이였다.

길거리에 있는 가축분뇨를 남보다 먼저 줍기 위해 이른 새벽에 짚으로 만든 망태를 들고 나간다.

 

어두워서 희끄무레한 물체가 돌멩인지 가축 배설물인지 구별이 안 되기에 호미로 살짝 처보고 물컹하면 무조건 망태에 담았다.

 

겨울이면 동내 사랑방에 모여 놀다가도 오줌이 마려우면 추운 겨울밤 어두운 골목길을 더듬어서라도 자기 집에 가서 볼일을 보고 다시 놀러왔다.

그렇게 오줌 한 방울도 비료로 사용하기 위해 애를 썼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 失笑를 금치 못할 사연들이지만, 그 당시는 자연스러운 일 이였다.

 

모내기철이면 집안끼리 이웃끼리 품앗이로 공동 모내기를 하는데, 온 들판이 모내기 하는 사람으로 하얗다.

 

여럿이 하면 경쟁에 의한 일의 능률도 오르고, 담소 속에 일을 하니 피곤한 줄도 모르기 때문에 품앗이 모내기를 하는 것이다.

 

세찬 비가 내리는 날은 남자는 짚으로 만든 도롱이를 걸치는데(체온으로 약간의 보온은 되지만, 비에 젖으면 엄청 무겁다.) 여자들은 날비를 맞고(비닐 한 조각 없는 시절이라 그 흔한 비닐우의도 없었음) 추위에 떨면서 모내기를 했다.

 

새참으로 따뜻한 수제비를 먹을 때는 콧등을 타고 흐르는 빗물이 수제비 그릇에 그대로 흘려내려도 개의치 않고 빗물과 함께 먹었다.

 

제초제가 없으니 논은 초벌메기를 비롯 3차례나 뜨거운 태양아래 비지땀을 흘리며 맬때 피를 빠는 크다란 쉬파리가 왜 그리 많은지 진흙이 묻은 손으로 때려잡는 것도 고통 이였다.

 

논에 김을 매다가 간혹 자라나 메기가 잡히면 모두 개울로 던져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보양식으로 먹을 것을 왜버렸는지 아깝기 그지없다.

 

밭 흙은 전부 잡초 씨앗으로 구성되었는지 무더운 여름 쉬지 않고 김매기를 해도 처음 작업한곳은 또 잡초가 무성해지니 작물이 잘 자랄 수 없어 고생은 한없이 해도 수확은 항상 빈약 했다.

 

입는 옷도 전부 자급자족이다.

집집마다 목화와 삼(대마)을 재배하여 실을 뽑고 베틀에 앉아 베를 짜서 직접 옷을 해 입었다. ( 베틀에 앉아 옷 잘 짜는 처녀가 일등 신부 감이였다.)

 

이 일연의 작업과정은 밤잠을 설치게 하는 고통 이였다.

전기불이 없으니 가물거리는 호롱불아래 밤새도록 목화씨앗을 빼고, 물레를 돌려 실을 뽑아 베틀에 베를 짰던 것이다.

 

이렇게 힘들게 만든 옷(천연 섬유로 몸에는 좋겠지만)이 얼마나 잘 헤지는지 외출복 초차 무릎. 팔꿈치. 엉덩이 부분은 천을 덧 붙여 꿰매어 입었다.

모두가 그렇게 입으니 부끄럽지 않았다.

 

천연 섬유라 그런지 이는 얼마나 많은지 피부에 닿는 곳 솔기 부위를 호롱불에 태우면 이의 씨알 터지는 소리가 타닥타닥 났다.

그 당시는 모두 그렇게 살았으니 예사였다.

 

해충이 이 말고 벼룩과 빈대가 사람의 피를 빨며 괴롭혔다.

벼룩이나 빈대에 물린 자리는 근지럽고 피부 염증이 생길 정도였다.

 

방에 톡톡 튀는 벼룩은 잡기가 쉽지 않고, 빈대는 낮에 벽지사이나 나무 틈 같은 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면 고약한 노린내를 내면서 사람을 괴롭혔다.

 

신혼 방에 놀러온 노총각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나는 집에 가보아야 기다리는 파랑고무신(새색시를 뜻함)은 없고, 木枕이 사이 빈대만 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고 할 정도로 빈대는 마을마다 집집마다 들끓었다.

 

군불을 아랫목이 탈정도로 지펴도 혹독한 추위 때문에 윗목은 항상 자리끼가 얼었다.

문종이 하나로 한겨울 외풍을 막는데, 문틀의 문풍지를 비집고 찬 공기가 황소바람 되어 들어오기 때문이다.

 

좁은 방에 솜이불 하나에 식구들이 발을 함께 넣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고, 추위에 이불을 서로 끌어당기다 보면 부모님은 늘 이불 없이 주무셨다.

 

동지섣달의 차가운 바람이 얼마나 부는지 요란한 문풍지는 밤새도록 울고,

문풍지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들면서 긴 겨울밤을 보내야 했다.

 

그 옛날 고향.

골목마다 돌담장에는 호박덩굴을 올려 노란 호박꽃이 피고, 맛깔스러운 애호박과 통통한 누렁이 호박이 달리고

초가지붕에는 하얀 박꽃 사이로 하얀 둥근 박 등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정감이 넘치는 풍경 이였다.

 

저녁노을 따라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를 무렵이면 무거운 무쇠 솥 여닫는 소리. 아이들 찾는 소리. 가축들 울음소리 등 삶의 향기가 넘치는 부산한 하루하루가 저물어 가던 고향.

 

초가지붕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감나무, 반들거리는 연초록 잎새 사이로 눈꽃처럼 하얗게 쏟아지던 감꽃. 감꽃을 실에 꿰어 목걸이로 만들어 약간 시들면 달콤한 맛을 즐기던 고향.

 

지금은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나물 뜯던 구불구불한 논두렁은 경지정리가 말끔히 되었고, 징검다리 돌다리는 차가 다니는 橋梁으로 바뀌었다.

 

돌담장 골목길은 불럭 담장에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었고 골목마다 가로등이 밤길을 밝힌다.

처마에 참새 잡던 초가집은 콘크리트 집으로 변했다.

 

꼭지만 틀면 상수도 물이 나오니 우물가의 낭만도 사라지고,

취사도 전기나 가스로 한다. 모두가 많이 변했다.

 

그렇게 고생만 했던 정다운 이웃 지인들도 세월 따라 하나둘씩 떠나가고, 산야를 함께 누비던 옛 친구들은 백발의 모습으로 간혹 고향을 찾을 뿐이다.

 

쓸쓸한 고향. 바람조차 낯설다.

모든 것이 아득한 추억 속에 머물고 있다.

 

農閑期 겨울에도 낮에는 나무하고, 밤이면 가마니 짜고, 莞草 돗자리 짜느라 가까운 유원지 한번 가보지 못하고, 눈만 뜨면 살기위해 밤낮으로 허덕이며 살았던 그 시절이 새삼 그립다.

 

 
산나리 11.01.30. 09:17
잘 읽었습니다. 지금은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도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니 , 어쩌면 그때 사람들이 더 .... 즐감하고 다녀갑니다.^^
 
소당/김태은 11.01.30. 10:49
이글을 그 옛날에 써 놓았던 글인지 ...요즘에 기억속에서 쓰신 글인지....어찌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지 .....
타고나신 문인 이십니다 탁구방 모임에서 가 보았는데 합천에 풍수지리학 적으로 볼때 지금 살고 계시는 집도
참으로 평온해 보이고 사방으로 아름다운 곳에 위치 했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설같은 이야기 속에
소산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여행도 좋아하시고 글도 잘 쓰시고 술도 좋아하시고 여자도 좋아하시나요? 하하
 
멋쟁이 11.01.30. 10:51
저도 그렇게 산 세월이 있었습니다
세삼스럽게 그리워도 지는구먼요..... 
 
 
빈들에허수아비 11.01.31. 16:05 new
나뭇짐에 진달래 한아름 올려 집에 오면 누이동생 반기던 모습 눈에 선합니다 내 자라던 시절과 어찌그리 잘 맞는지 저도 소설쓴답시고 이백여 페이지 긁적이다 내려 놓은 글 이어갈 생각을 들게끔 합니다  
 
센스 11.01.31. 19:03 new
전 어려서부터 아주 어렵지 않게 살아서 그런지 진달래꽃을 먹는다던지 보릿고개란 말은 들어 봤지만 먹어 보지는 않아 실감은 안 나지만 옛날 어른들이 생활했던 모습을 자세히 그려 상상을 한번 해 봅니다~ㅎㅎ명절 즐겁게 보내십시요~^^

   

퇴촌 11.01.30. 09:07
세월이 흘러 세상은 많이도 변하였지요
모든것이 부족하고 어렵던 시절엔 자급자족많이
살길이 었고 부지런해야만 가난속에서도 배고픈
설움을 면할수 있었던 시대였으니 지금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아닐수 없지요 현대문명속에 살면서도
옛추억을 생각하면 그리워지는 것은 당연하지요
항상건안하시고 행복한 시간 보내세요..선물 사랑1
 
꽃사랑 11.01.30. 11:26
가슴찡한글이군요,,,어렵고 힘들었어도,,,그시절이 그립네요.^^

 

맨날먹는밥 11.01.31. 00:20 new
이런 겨울철에는 고향에서는 가마니를 짜지고...
그러다가 어느 날 부터 가마니가 필요없이지고
비닐 포대로 쌀을 담고 벼를 담고 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순수7 11.01.31. 10:15 new
먼 옛시절의 일들이지요.좋은 글 감사합니다.
 
문경자(21회) 11.01.30. 19:18
그 시대로 돌아가 잠깐 동안 고향의 향수를 만끽했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살아도 행복이 가득하고 만나는 이웃끼리
정을 나누며 한 조각의 콩이라도 나누어 먹으며 부럽지 않은
삶을 살아온것이 정말 마음을 아름답게 한 근본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세미실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은 한 폭의 그림처럼 닥아오네요.
선배님 다가오는 설 명절 복많이 받으세요.
좋은 글 잘 보고갑니다.

 

빛난 별 11.01.30. 12:03
옛생각하며 읽었습니다. 건강하고 행복하셔요  
 
꽃바람 불어와 11.01.30. 15:12
설날에 읽으니 더욱 그때가 그리워지네요
그모든 일들이 오늘의 밑거름이 되었으니 참 아름다운 추억이라 할만합니다. 감사합니다.

 

승비 11.01.31. 20:50 new
그리움 가득한 옛얘기를 들려주어 감사합니다. 어쩌면 저의 어릴적 동네에서 있었던 모든 얘기를 그데로 본것처럼 .........
지나간것은 모두다 그립겠지만 어릴적 잊혀지지 않은....... 어저께 일같이 가슴에 닦아 옵니다.
사랑스런글 정말 잘! 보았습니다. 언제나 건강하시기 바라면서 설 명절 행복하게 지내십시요 쏘핫 쏘핫

 

당신멋져
11.01.30. 20:35
저녁노을 따라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를 무렵이면
무거운 무쇠 솥 여닫는 소리.
아이들 찾는 소리.
가축들 울음소리 등
삶의 향기가 넘치는
부산한 하루하루가 저물어 가던 고향.
그 시절이 새삼 그립습니다
추억속의 고향 향수의 글 감사 합니다.

 

강바람
강바람
2011/01/31 19:16

결코 오래전 이야기가 아닌데, 세상 인심과 풍경은 너무 바삐 변해가는군요. 정말 감사히 읽었습니다. 갑자기 고생만 하시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생각이나 담배에 손이 가는군요. 즐거운 명절 보내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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