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우루무치를 가다(1부)

소산1 2019. 10. 26. 07:42

우루무치를 가다|★--------소산 문재학

소산/문 재학 | 조회 27 |추천 0 |2019.10.23. 11:10 http://cafe.daum.net/wjstnqls4171/OaBx/275 

우루무치(칠색산)를 가다(1부)

(2019. 10. 5 ~10. 13)

소산/문 재학


2019105() 맑음

황금물결이 출렁이는 풍성한 가을 풍경을 거느리고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터미널에서 10여분 더 달려 새롭게 단장한 제2터미널에 도착했다.

평소지인의 권유가 많았던 곳이라 설래임을 안고 1910분 여객기는(KE883)어둠을 가르면서 우루무치로 향했다.


2045분 야경이 화려한 북경상공(?)을 나르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따라 바둑판처럼 도로가 들어서 있었다.

어둠속에 유난히 밝은 반달이 여객기 날개위에서 함께 동행을 했다.


2247고비사막 상공(?)을 지날 때는 도로 가로등이 보석처럼 빛나는 작은 마을을 지나기도 했다도착 48분전 (여객기 전광판에 나오는 시간) 불빛이 밝은 작은 도시를 지나는데 전력 사정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곧이어 산재된 인가들이 어둠속에 별빛처럼 빤짝이는 우루무치에 다가가자 가로등은 주황색 빛으로 흐르고 일부 건물에서는 네온 불빛이 춤을 추고 있었다.

동영상으로 우루무치의 야경을 담아 보았다.



우루무치 공항에는 여객기가 많이 계류 중인 것으로 보아 비교적 큰 공항 같았다.

 2335분 무사히 도착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오니 현지 가이드 신문천(교포 3)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 앞에는 화면이 깨끗한 대형 전광판에는 현란한 광고가 빛을 뿌리고 있었다.

경적소리가 요란한 주차장을 지나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오르니 새벽 1(현지시간 1시간 늦음)가 지나가고 있었다.


호텔까지는 30분 거리이다.

입국 시에 검색이 철저했는데 도로에서도 검문을 하고 있었다.

이렇데 철저히 검문을 하니 치안상태가 아주 좋다고 했다.

우루무치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목장이라고 했다.


연간 4 ~500만 명 관광객이 오는 우루무치는 면적이 14,577km² 이고 인구는 350만 명이다.

우루무치가 속한 신강성은 면적 1,665,000km²(한국의 8)5,600km 국경에 7개 나라와 접하고 있다. 인구는 2,200만 명이고 그중 위구르 족이 950만 명이나 된다고 했다.


그리고 소수민족도 55개 민족이나 살고 있다.

신강성은 지하자원이 풍부하여 석탄의 경우100년 이상 채굴할 매장량이 있고 석유와 구리. 철광석 특히 희토류가 많이 생산 되는 축복의 땅이다.


이곳의 주산맥인 천산산맥 2,555km 1,700km가 이곳 신강성을 지나고 있다.

그리고 신강성 우루무치는 서에서 출발한 실크로드가 이곳을 지나 중동을 거처 유럽까지는 7,000km 나 된다.


동방에서 서방으로 간 대표적 상품이 중국의 비단이라 실크로드(비단길)라 부르게 되었다.

기원전 4세기부터 유지되었고 불교와 이슬람교 문화와 각종상품 등의 고대동서교역의 중심지였다.

가로등 아래 크기가 다른 둥근 홍등이 이색적으로 시선을 끌고 있었다.

새벽 137DU SHAN(득산자) Hotel 4015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98106() 맑음

조용한 시가지에 아침 8시에 먼동이 터기 시작했다.

한국에 비해 상당히 늦게 날이 밝아와 이해가 잘되지 않았다.

9시에 호텔을 나와 홍산공원(红山公园)으로 향했다.


인구가 130만 명일 때는 공원에서 우루무치 시내전경을 볼 수 있었지만 인구 350만 명인 지금은 일부만 가능하다. 한때는 유동인구 포함 500만 명일 때도 있었다.

우루무치 인구의 40%가 위구르 족이고 55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


우루무치의 생활용수 및 식수는 바이칼 호에서 끌어 왔는데 지금은 티베트에서 끌어오는 대규모 공사를 하고 있다.

915분에 홍산공원에 도착했다. 상쾌한 아침공기가 마음을 푸근하게 했다.


'홍산'은 산 자체가 붉은색 사암으로 조성되어 있어 '홍산(红山)이라 한다.

해발 910m에 위치한 홍산공원 입구 좌측에 있는 검문소에서 철저한 검문을 받고 들어갔다.

영상 5도 손이 시릴 정도의 쌀쌀한 기온 속에 지역주민들의 집단 건강 체조를 보면서 올라가니 꽃과 정원수 등으로 조경을 잘해 두었다.



붉은 깃발과 붉은 홍보간판과 샐비어의 붉은 꽃등으로 온통 붉은 색으로 단장이 되어 있었다

1차 전망대에서 우루무치 시내전경을 영상으로 담고 우루무치의 상징인 홍산탑으로 향했다.


먼저 중국의 흰색 대리석으로 된 민족영웅 임칙서(林则徐)기념상을 지나면 붉은 색 안반위에 1788년 청대에 건립된 높이 8m 9층탑 홍산탑이 있다.


홍산탑홍산공원의 유일한 청대 건축물로 이곳에서 현대식으로 발전하고 있는 미려한 고층건물이 즐비한 우루무치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다시 발길을 홍산공원에 관한 다양한 사진이 전시된 반원형 긴 회랑을 지나 출입구 반대편인 후문계단으로 내려 왔다.

공원 전체 길바닥과 계단 난간 등을 모두 대리석으로 조성해 두어 아침 햇살에 빤짝이고 있었다.


아름다운 연못 남호(南湖)에 걸려 있는 석조다리와 정자가 있는 곳을 지나 945분에 15분 거리에 있는 신강박물관으로 향했다.

왕복 12차선 도로변은 꽃과 나무들로 조경을 잘해 두어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즐겁게 했다.

시내는 고가도로가 많아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103분 박물관 앞에 도착했다.

굳게 닫힌 대형 철문 우측으로 입장 하는데 철저한 검문검색이 있었다.

넓은 광장을 지나 박물관 건물 입구에서 다시 한 번 똑같은 검색을 두 번이나 했다.


1953년 준공한 박물관은 면적이 7,800이다.

신강박물관1층에는 신강지역에서 출토된 신강 역사 유물인 실크, 도기, 토용, 화폐, 병기, 문서, 서적 등 5만여 점의 진귀한 물건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12개 민족의 전시관에는 고대역사 유물을 기원전부터 진한 시대를 거처 청조시대에 이르기 까지 소수민족의 남녀마네킹을 중심으로 의상. 악기. 공예품과 생활용품들을 전시해 두었다.


신강박물관 실크로드의 최대 박물관으로 바닥에 관람코스를 화살표시를 해두어도 관람객이 너무 많고 전시실도 많아 자칫하면 일행을 놓칠 번하기도 했다.


2층으로 올라가 3800년 전 미이라 루란(樓兰)의 미녀와 3200년 전의 하미(合密)의 여인 그리고 남성 미이라 및 2500년 전의 여자 미이라와 1700년 된 미이라 까지 여러 구의 미이라를 전시해 두었다.


의상까지 포함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보존상태가 좋았다.

박물관내 촬영이 허용되어도 카메라 후레시는 미이라 손상을 막시 위해 금하고 있었다.

이곳의 사막지대는 지하 7m까지 수분도 세균도 없어 이렇게 보존상태가 좋은 미이라가 가능 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당나라 초기의 고창왕국의 대장군 '쟝송'의 늠름한 기마상과 그 아래 장송의 미이라가 함께 있는 것을 영상으로 담았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출입구 쪽의 옥 공예품 매장을 거처 관람을 끝냈다.





박물관 입구 계단에는 유니폼을 입은 초등학생들의 단체 사진을 영상으로 담고 1130천산천지로 향했다.

복강시에 속한 천산천지까지는 120km로 소요시간은 1시간 10분정도이다.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곳의 고가도로에 진입 했다.

어떤 곳은 3~4층의 고가도로가 있어 복잡했다.

고가도로에서 내리자 꽃등으로 잘 조성된 왕복 10차선 도로를 달렸다.


1155분 광활한 평야지대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신축 아파트가 곳곳에 들어서고 있는 곳을 지나자 무허가 공해공장지대다.

석탄 화력발전소 17개소를 비롯하여 드문드문 공장들이 있었다.


얼마 후 야산 구릉지대가 나타났는데 수목이 빈약했다.

그나마 인공조림이었다.

지금 이 고속도로를 2,800km 가면 북경이 나온다고 했다.


외곽지대 조림이 안 된 곳은 하얀 모래 구릉지대였다.

1220분 경 부터는 주위의 산은 자갈로 이루어진 산이라는데 모두 민둥산이다.

도로변에는 건축용 자재로 사용하기 위해 채굴해 놀은 자갈들도 많이 보였다.


신강성에는 많은 화력발전소와 풍력발전소 태양광발전소가 있어 생산된 전기는 상해와 항주 쪽으로 공급한다고 했다.

지금 지나는 8차선 고속도로는 개통 한 달밖에 안되었다는데 승차감은 좋지 않았다.


1235분 고속도로를 벗어나 왕복 4차선 천산천지 입구에 들어섰다.

도로변 수목들은 일부 단풍이 곱게 물들고 있었으나 머리 보이는 산은 사막화 되어 황량했다.

도중에 현지식으로 중식을 하고 1315분 다시 천산천지로 향했다.


얼마 후 천산천지입구 넓은 주차장이 연이어 계속되는데 많은 승용차들이 들어서 있었다.

제일 안쪽 버스 주차장에도 많은 버스가 와 있었다.


화려한 조경을 한 광장을 지나 천산천지 대형건물에 들어서니 정면 대형스크린에는 천산천지 홍보화면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입장권을 받아 입장하는데 개인별로 얼굴촬영을 했다.

1341분 수백 대 셔틀버스가 대기 한곳에서 순서대로 버스에 올라 완경사 계곡따라 올라갔다.

주위의 야산 산록변에는 인공조림을 해두었지만 3부 능선위로는 수목이 자라지 못하는 사막화 되어 있었다.


이 부근이 중국의 희귀광물 희토류가 많이 매장되어 있다고 했다.

수고가 높은 미루나무가 일부 단풍이 들면서 나뭇잎이 햇빛에 보석처럼 반들 그리고 있었다.

20여분을 달려 버스에서 내려 다음 셔틀버스 타는 곳으로 지나는데 주위 노점상들의 호객행위가 심했다.


가이드가 전해주는 탁구공만한 붉은 사과를 맛보면서 다시 입장권과 얼굴촬영으로 확인 후 14252번째 셔틀버스에 올랐다.

관광객이 많아 혼잡한데도 일일이 얼굴대조 확인을 하고 있었다.


화창한 날씨 속에 좁은 협곡을 버스는 계속 오르고 있었다.

천산천지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었다.

잠시 후는 급경사 꼬부랑길을 현기증이 날 정도로 돌면서 올라가고 있었다.


바위산인데도 독일가문비 나무가 곳곳에 수림을 이루고 있고 가끔 보이는 자작나무는 노랑단풍이 들어 멋진 풍광을 쏟아내고 있었다.

도중에 숲속에 있는 작은 천산천지 못을 지나기도 했다.


오르내리는 셔틀버스가 꼬리를 물면서 곡예운전을 하고 있었다.

되돌아보니 길게 늘어선 꼬부랑길이 아찔해 보였다.

마치 백두산 천지를 오르는 기분이었다.


셔틀버스가 도착 한 곳에서 3번째 미니셔틀버스(작은 전동차 같았음)를 타고 잠시 올라갔다.

155해발 1980m에 위치한 산정자연호수 천산천지 못(가로 3.5km, 세로 1.5km,수심 95m) 에 도착했다.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이 와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린 후 다시 바위들이 수풀을 이룬다는 석림(石林)이 있는 곳의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미니셔틀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울창한 독일가문비 숲속 꼬부랑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울창한 곳은 길이 어두울 정도였다.

이렇게 높은 산위까지 숲이 울창한 것이 신기했다.

1530분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했다.


8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바위들이 수풀을 이루는 곳 급경사를 올라갔다.

멀리 보이는 천산산맥의 최고봉 왕관모양의 만년설봉 박격달봉(博格達峰 해발 5445m) 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천산천지 전경을 발 아래로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마야산(馬牙山:3000m)에 도착했다.

이미 관광객들이 많이 와 있었다.


걸어서 바위산 절벽 좁은 길을 조금 더 올라가 절경을 둘러보고 천산천지의 최고봉 설산의 아름다움을 즐기면서 천산천지 전경을 영상으로 담는 등 시간을 보내다가 하산하였다.



1720천산천지 유람선에 올랐다.

화려한 치장을 한 유람선 몇 대가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석양에 빤짝이는 수면위로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전동 유람선으로 도교사원과 전망대 정자 등 호수 주위의 아름다운풍광을 여유롭게 즐겼다.

1820천산천지의 관광을 끝내고 아찔한 그 꼬부랑길로 하산을 했다.


1910우루무치로 향했다.

검문 시간만 절약되면 1시간 정도면 우루무치에 도착 한다고 했다.

석양을 안고 가는 우루무치 쪽에는 미세먼지가 가득하였다.


고속도로변에는 대형굴뚝에서 매연을 내뿜는 화력 발전소가 가끔 보였다.

좌측 멀리 천산산맥의 최고봉 설산이 석양빛에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1927분 고속도로 상에서 차량 검문검색을 하고 있었다. 터럭들이 수백 미터나 늘어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우리버스는 신속히 통과 되었다.

1935분 지평선 저 멀리 붉은 낙조가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우루무치의 외곽지역에는 중국의 다른 도시와 마찬가지로 고층 아파트를 많이 짓고 있었다.


1950분 시내 가로등에 불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시내에서 한식으로 저녁을 하고 2040국제바자르(이슬람 말로 시장을 의미 함.) 야간 관광에 나섰다.


도로변의 빌딩들은 저마다 독특한 네온 불빛이 흘러내리고 고가도로도 다양한 색상의 빛을 쏟아내고 있어 밤거리가 한국과 달리 화려했다.

21시에 국제바다르에 도착했다.


비지르 입구에는 높은 전망대와 아름다운 대형 이슬람 사원이 밝은 빛을 내면서 맞이하고 있었다.

관광객을 위한 바자르라 그러 한지 곳곳에 전광판과 도로 중심에 다양한 조형물이 현란한 빛을 뿌리고 가로등과 건물에서도 화려한 빛을 쏟아내고 있었다.



관광객들과 시민들이 너무 많아 밀려다닐 정도로 복잡했다.

위구르족의 민속악기. 장신구. 각종공예품 그리고 다양한 먹거리 들을 팔고 있었다.


2150분 시장관광을 끝내고 조명이 화려한 우루무치 시내를 15분 정도 지나 지난밤 투숙했던 호텔로 돌아왔다.


2019107() 맑음

830200km거리의 투루판으로 향했다. 예상 소요시간은 2시간이다.

해발 800m에 위치한 우루무치는 일출 전에는 희뿌연 미세먼지 속에 잠겨 있는 것 같았다.


많은 고층 아파트 사이로 멀리130km 떨어져 있다는 최고봉 설산이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우루무치의 모든 식물은 파이프로 지하 급수를 하고 있다고 했다.

840분 왕복 10차선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깨끗한 거리에 가로수를 비롯 조경이 잘되 있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활잡목(活雜木)이 수벽(樹壁)을 이루고 있어 시선이 즐거웠다.

승차감이 좋은 현재의 고속도로는 상해서 카자흐스탄으로 가는 312번 국도로 중국에서 제일 긴 5,740km나 되는 도로이다.


주위로는 빈약한 수림(樹林)이 있고 그 사이사이로 사막에서 자라는 말라붙은 풀들이 삭막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과수원이나 농작물 재배지가 자주 보이긴 하지만 방치된 땅들이 많았다.


삭막한 들판 멀리 희미한 산맥이 우리 버스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황량한 들판에 쭉 뻗어있는 도로와 거미줄처럼 엉켜있는 전기철탑을 지나자 이번에는 끝없이 이어지는 풍력발전기 수 만개가 바람에 꿈틀거리고 있었다.


간혹 보이는 녹지대가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처럼 반가웠다.

대부분 과수농장이라 했다.

925분경 호반 가장자리로 하얀 소금이 보이는 작은 염호(鹽湖)를 지났다.


연이어 얼음같이 축적된 많은 소금이 있는 대형 소금호수가 우리와 함께 달리고 있었다.

고속도로는 왕복 8차선 확포장 공사를 하고 있었다.

소금호수 반대편에는 천산산맥에서 끌어온 물로 경작하는 과수농원이 많이 보여 사람 사는 생기가 돌았다.


943분 소금호수를 벗어나자 60년대 고속도로 개설 당시에 처음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는 달판(達坂)마을이 나왔다.

이곳 마을은 고립된 지역이라 근친결혼 탓인지 성인 신장이 1m30cm 정도 난장이었는데 그 후 외부와 교류되면서부터 지금은 거의 정상 신장으로 되었다고 했다.


주변의 작은 사막 산들의 자갈은 전부 검은색을 띠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풀 한포기 없는 산악지대 터널을 지나는데 개통한지 얼마 안 된 곳이라 그런지 터널 조명이 화려했다.


어떤 골짜기에는 대형터럭이 먼지를 일으키며 다니고 있었다.

이 지역도 고비사막 일부라 했다.

10시경 버스는 우측에 폭 15~30m 정도 되는 약간의 계곡물이 흐르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생기 넘치는 녹색식물을 가까이에서 보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고속도로에는 비교적 차량이 많이 다니고 도로변 곳곳에 중장비들이 토석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자갈층이 50~120m 깊이로 자갈이 풍부 한 곳이라 한국의 건설업자가 상당히 부러워했다고 했다.

또한 이곳은 강한 바람이 불면 자갈이 차량 유리를 파손 할 정도로 강풍이 분다고 했다.


연간 강우량은 28mm 밖에 안 되는 건조한 사막지대이다.

부근에 있는 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출발 하는데 얼마 안가 검문소가 나왔다.

치안 때문에 검문을 자주해야 하지만 생활에는 상당히 불편 할 것 같았다.


1110분경부터는 광활한 사막지대가 나타났다.

고속도로변에 가금 과수재배농원이 보이는데 수세(樹勢)는 좋지 않았다.


2차 차량 검문이 있을 때 잠시 내려서 농장의 나무를 보니 잎이 3갈래로 갈라진 작은 뽕잎이었다.

오디가 많이 달리기 때문에 재배를 많이 한다고 했다.


뽕나무 재배는 2000년 전 실크로드를 개척한 장건(BC164 ~ BC114)이라는 사람이 오디 씨를 서역에서 가져와 재배를 하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단다.

1117분 멀리 투루판 시가 보이기 시작했다.


시내가 가까워지자 도로변에는 많은 포도를 재배하고 있었는데 대부분 수확이 끝난 상태였다.

이곳 사막지대에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는 천산산맥에서 지하수로인 카레즈라는 인공수로로 끌어 오는데 카레즈 운하1,800(1개 길이가 40~50km 정도)되는데 그 중 1,200개를 투루판 지역에서 사용하고 있다.


건조란 사막지대에 지하 인공수로는 위구르족의 위대한 유산으로 불리고 이의 구조를 박물관으로 만들어 세상에 소개하고 있다.

투루판 시(위구르 吐鲁番市)신장위구르자치구로 면적은 69,620km²이고, 인구는 65만 명 정도이다.


시내도로는 왕복 8차선으로 시원하게 뚫어놓고 도로 양측에 1차선은 가로수를 2줄로 심고 그 하층을 조경을 하여 정원처럼 조성을 해두고 있었다.

도로변의 포도를 비롯한 농경지는 시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얼마안가 아파트나 호텔이 들어설 것이라 했다.


특이하게도 이곳 투루판은 해저 70m로 바다 밑에 위치한 중국에서 가장 낮은 땅이다.

투루판은 실크로드의 중심지로서 이곳에서 천상북로천상남로로 갈라지는 곳이다.

원주민들의 주택은 지붕이 평면인 단층구조로 되어 있고 마치 빈민촌처럼 초라했다.


비가 오지 않는 지역이긴 하지만 옥상에서 침대를 놓고 생활하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많은 파출소와 순찰차가 끝임 없이 다니고 있어 마치 계엄령이 내란 것 같은 분위기였다.

1155분 버스는 소공탑과 작은 왕궁 군왕부 주차장에 도착했다.


군왕부(Prefect)는 청나라 속국으로 있으면서 9명의 군왕이 152년간 통치 하면서 농업용수와 식수 해결을 위해 카레즈 운하를 확대 개발했다고 했다.


군왕부는 작은 규모에 있는 연회실. 접대실과 왕의 침실 등이 있고 왕의 자리에 앉아 사진 촬영을 해보기도 하면서 개방된 곳을 둘러 볼 수 있었다.



지하통로 벽에는 하밀회 왕 3세 에민호자(1694~1776)의 초상화가 걸려 있었다.

이어 인접한 소공탑으로 갔다.


소공탑(苏公塔)위구르 모스크로서 1777년에 슬라이만이 아버지인 에민호자를 기리기 위해 높이 44m로 세운 탑이다.

소공탑 앞 광장에는 책을 들고 있는 에민호자의 동상이 있었다.



군왕부소공탑의 예배실 등에는 모두 자연채광 시설을 이용하고 밤이면 촛불을 이용했단다.

1250분 관람을 끝내고 시내로 향했다.


투루판 시내는 신축중인 건물이 많긴 하지만 고층건물은 간혹 보일 정도였다.

시내서 점심을 하고 1350분 서쪽 10km 거리의 야르나즈 계곡에 있는 교하고성(交河故城)으로 갔다.


도로변은 미루나무가 수벽을 이루고 주변 경작지 주위로도 군락(群落)을 이루고 있어 사막지대의 싱그러운 풍광이 가슴을 시원하게 했다.


147분 넓은 교하고성(交河故城) 주차장에 도착했다.

흙으로 도색한 대형 홍보관의 특이한 형상이 돋보였다.



교하고성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는 전시관을 지나 전동차를 타고 5분 거리에 있는 교하고성 유적지에 도착 했다.


전동차에서 내리니 강변에 거목(巨木)들이 있는 곳에는 매점과 편의 시설이 있고 강물이 많지는 않았지만 흘러가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교하고성으로 올라갔다. 날씨가 더워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렸다.


200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교하고성(交河故城)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강(무르투크 강)의 중간에 거대한 섬 위에 지어져있다.

규모는 길이 1,650m, 300m이다.


옛날에는 강물이 많이 흘러서 강으로 둘러싸인 절벽과 함께 천연 요새였단다.

나무 한그루 없는 유적지는 흙을 파고 다듬어서 만든 옛 주거지역 등이 광활한 면적에 펼쳐지고 있었다.


정중앙에 있는 왕이 거쳐했던 곳에는 경비실 우물 등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제일 위치가 높은 전망대에서 지형을 둘러보니 동쪽과 서쪽 거주지가 있고 북쪽 지구는 불교 사원과 탑이 있었다.


 

넓은광장이 있는 대불사 관광을 끝으로 돌아서 나왔다.

단단한 흙으로 이루어진 유적지라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탐방로 이외는 한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하게 곳곳에 팻말을 게시해 두고 이었다.


이곳에서 번영을 누렸던 사시민족은 전쟁과 자연재해 등으로 현재 멸종되고 없다고 했다.

1550분 버스는 포도농장으로 향했다.


포도 농가를 방문하여 생포도 시식도 하고 건포도를 일부 구입한 후 15분 거리에 있는 카레즈(Karez 페르시아어로 '지하수'라는 뜻 ) 박물관으로 향했다.


2차선 미루나무 숲속을 달리는데 주위는 대부분 포도나무 농원이고 농가들도 많이 있었다.

카레즈의 넓은 주차장 정면에는 나무모양의 대형 조형물로 만든 매포소가 이채로웠다.



검색대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 토산품매장을 지나자 옛날 지하수로 카레즈 작업과정을 기구와 마네킹 등으로 재현해 두고 있었다.

지하로 내려가자 인공수로 모형도가 있었다.


2000년 전부터 시작한 천산산맥의 물을 이곳까지 증발을 막기 위해 지하로 끌어오는 카레즈는 인부 3~5명이 한조가 되어 1개 파는데 수개월에서 몇 년이 걸렸다고 했다.


지하수로(地下水路) 1개 길이가 40~50km1,200개의 인공 수로는 깊이는 얕은 곳은 2m 깊은 곳은 150m 나 되고 또 50~80m 간격으로 작업인부들의 숨구멍을 내었고 이곳에 우물 기능이 있어 지금도 관리인을 지정 관리하고 있단다.


엄청난 규모의 대형공사를 삶을 위해서 만들어 온 것이 경이롭기만 했다.

푸른 조명을 받은 옥색물이 발아래 투명유리를 통해 흘러가고 차가운 물을 손으로 떠 맛보기도 했다.


카레즈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17화운계곡으로 갔다.

석양을 등지고 왕복 6차선을 시원하게 달렸다.

1713분부터는 2차선 도로다.


도로변은 일부 자갈 채취를 하는 곳 이외는 삭막한 사막지대이다.

얼마 후 대형터럭들이 고추를 실고 와서 넓은 면적에 붉은 융단을 펼친 것처럼 말리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고 3일이면 완전건조가 된다고 하니 그야말로 태양초이다.


집단 태양광 발전지대를 지나 1730화운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붉은 흙으로 덧칠한 대형 구조물에 검색대와 화운계곡의 상세한 설명이 있는 내부를 둘러보고 붉은 불꽃의 형상을 한 화운곡(火雲谷)을 버스를 타고 들어갔다.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지형에서 잠시 내려 멋진 풍광을 영상으로 담았다.

정말 독특한 지형이라 형상이 아름다운 곳마다 버스에서 내려 영상으로 담았다.



계곡 깊숙이 있는 꼬불꼬불한 협곡의 특이하고도 아름다운 계곡을 걸어 올라가면서 영상으로 담으면서 둘러본 후 다시 전망대로 올라가서 주위의 풍광을 돌아 본 후 내려 왔다.

같은 지역인데도 붉은 흙과 검은 흙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것이 신기했다.


1915분 관광을 끝내고 분홍빛 골짜기를 석양으로 물들이면서 내려 왔다.

호텔까지는 30분 소요 예정이다.

20시에 호텔에 도착하여 야외에서 양고기 바비큐로 저녁을 하고 SUN Hotel 6003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019108() 맑음

830화염산(火焰山) 천불동으로 향했다.

왕복 6차선달리고 있었다. 투루판은 최근 5년 동안 급속적인 발전이 있었다고 했다.


시가지 전체가 시원한 광로로 뚫려 있고 가로수 등 조경이 잘되 있어 쾌적한 환경이었다.

850화염산(火焰山) 산맥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도로 좌우에는 소형 원유 채취기가 수없이 늘어서서 돌아가고 있었다.


뽕나무 재배지가 가끔 보일 뿐 부근의 산들은 전부 사막화 되어 있었다.

도로변에는 서유기를 테마로 한 재미있는 형상의 영화 세트장도 있었다.

화염산은 길이 98 km, 9km이고 평균 높이는 850m 정도이다.


여름에는 80 °C 까지 올라가 중국에서 가장 무덥고 건조한 지역이다.

연간 강우량은 18mm 정도이다.

화염산 입구에는 천간산맥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이 주위를 풍성한 녹지공간을 만들고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하여 손오공파초선을 빌려 화염산 불을 진압했다는 불꽃 형상의 봉우리가 있는 주차장에서 부근의 특이한 풍광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가까이에 있는 천불동으로 갔다.


무토우 계곡 절벽 중턱에 있는 천불동은 계곡물을 이용 농작물을 경작하기 위해 농부가 작업을 하다가 발견했단다.

6세기 고창국시대에 시작하여 8세기 당나라를 거쳐 14세기 원나라에 이르기 까지 계속된 불교 유적지다.


전체 83개 석굴 중 57개가 내부에 벽화가 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많은 부분이 도굴 되고 파손되었다.

그 중 6게 석굴만 개방 되고 있는데 석굴보존을 위해 내부 사진 촬영은 금하고 있었다.



황제들이 기도하는 장소로 큰 석굴마다 보석과 불화로 천정과 벽에 가득했는데 금등 보석으로 장식한 벽화는 도둑맞아 흔적만 남아 있었다.


방문한 한곳에는 당시 왕족들과 함께 화상으로 남아있는 정자관(程子冠)을 쓴 문익점 선생의 모습을 촬영금지라 영상에 담지 못해 아쉬웠다.


이곳에서 목화 종자를 한국에 가져가 우리민족의 의류 해결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참고로 이곳 신장지구에서는 목화재배를 제일 많이 하는데 정부에서 농민들에게 보조금을 많이 주면서 권장 한다고 했다.


목화 수확시기에는 20만 명 인력이 동원 된다고 하니 놀랄 지경이다.

흙으로 된 절벽의 많은 종교 흔적을 외부만 영상으로 담고 1010분 가까운(15분 거리) 아스타나 고분군으로 갔다.


가는 도중의 2차선 도로는 대형 뽕나무 가로수로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주위에는 산재된 농가들 사이로 방치된 땅이 없을 정도로 포도. 석류 등 농사를 짓고 있었다.

1030아스타나 고분군(위구르영원한 휴식이라는 뜻)에 도착했다.


고창국과 당나라 때 무덤 군으로 약 456기의 무덤을 발굴할 때 2,700여개의 문서가 출토 되었단다.

입구에 들어서면 넓은 광장 뒤에는 12상 석상들이 있는 중앙에 사람얼굴에 뱀 꼬리가 감고 있는 대형 여와복희상(이곳에서 출토된 인류의 시조인 복희와 여와를 입상으로 만든 것임) 이 있고 그 뒤에 전망대인 2층 누각이 있다.


넓은 면적에 고분을 발굴하여 개방한 왕족부부의 미이라가 있는 2곳을 둘러보았다.

2개중 한곳은 유교 가르침을 풀이한 6첩 병풍 그림이 있었는데 눈으로만 담았다. 이어 고창고성으로 향했다.


도로 주변의 농민들은 전부 위구르족인데 대부분 중국어를 모른다고 했다.

산이 없는 대평원에 풍성하게 자라는 농작물과 수목들은 카레즈 수로의 물을 이용한다고 하니 카레즈의 기능이 대단했다.


대규모 집단 하우스 지역을 지나는데 하우스 뒤와 양옆은 전부 토담을 쌓아 놓았다.

이곳은 바람이 심해 남쪽만 개방하여 비닐을 씌운다고 했다.

처음 보는 광경이라 신기해서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하우스단지는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1115투루판에서 46km 떨어진 고창고성(高昌故城)에 도착했다.

고창고성고창왕국의 유적지로 후한이 멸망한 후 번성했던 투루판의 중심지였다.


출입구 앞 넓은 광장 중앙에 우리나라 고승 현장스님(玄奘, 602 ~ 664) 또 다른 명칭은 삼장법사의 대형 동상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왕관 모양의 법장(法杖)을 집고 마치 바람에 옷자락을 휘날리는 형상이었다.



그리고 그 뒤편에 있는 대형전시실에 들려 이곳저곳을 살펴 본 후 전동차를 타고 고창고성 성내로 들어갔다.


둘레가 5.4km 면적이 200km² 토성내 거대한 유적이 펼쳐지는데 그 옛날 번성기에는 거주 인원이 10만 명이나 되고 승려도 3,000명이나 있었다고 했다.

남아있는 토성과 유적들이 1,500년 전 옛 영화를 말해 주고 있었다.


당나라시대 고창왕국국문태(麴文泰)가 이웃나라 아이콘에서 삼장법사 포교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삼장법사의 거처를 마련하고 왕이 직접 승려 3,000명을 거느리고 십리 밖까지 마중 나가 맞아 들였다고 했다.


먼저 삼장법사가 거처했던 로 대불사(大佛寺)갔다.

이곳에서 불교서적과 방석 등 유물이 나온 것으로 보아 삼장법사 거처로 확인 되었단다.


그때 법회를 열었던 건물은 복원을 해두었는데 대불사(大佛寺) 벽체는 사각형, 천정은 원형으로 하여 음향 효과를 주기 위한 구조로 지었다고 했다.


삼장법사6302월경 이곳에 도착하여 1개월간 법회를 열어 한 달 동안 인왕반야경(仁王般若經)을 설법했다.

23일을 잠을 자지 않고 포교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개월 후 가려고 하는데 보내주지 않아 3일을 단식하여 승낙을 받았고,

인도로 떠날 때는 24개국 통행증과 충분한 노자와 손오공 같은 하인 20을 수행토록 했다는 것이다.


고창고성은 실크로드의 최중심지로 교역이 활발한 곳이라 했다.

1210분 버스는 선선시로 출발했다.


지나는 도로변에는 대형 하우스 단지와 구멍이 숭숭 뚫린 포도 집단건조단지 그리고 유전 채굴 지역들을 지났다. 곳곳에 원유 저장탱크들이 있었다.

때로는 황량한 대평원에 직선도로를 따라 달리기도 했다.


1250분 물이 흐르는 산악지대 골짜기를 지나 올라서니 광활한 들판이 나오고 수리시설이 좋은지 포도를 비롯한 농작물과 미루나무들의 녹색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이곳에도 갈림길이 있는 곳마다 검문검색이 있었다.


또 주유소마다 쇠창살로 막아놓고 출입차량을 일일이 확인 하여 들여보내 주유시키고 있어 이 지역의 분위기가 상당히 살벌했다.

1310선선(鄯善)시에 도착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속하는 선선시는 면적 3.98이고 인구는 20만 정도 작은 도시다.

실크로드 일부로서 동서 문화 교류의 중요지역이고


세계에서 유일하게 도시속의 사막이라고 불리는 쿠무타크 사막(규모 :동서 간 길이 120, 남북 간 폭 약 60~70 , ) 때문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단다.


시내에서 점심을 하고 142010분 거리에 있는 쿠무타크 사막으로 갔다.

선선시쿠무타크 사막 사이에 하천이 있어 사막의 모래 진입을 막고 있다.


대체적으로 선선시내는 수원이 좋아 그런지 가로수 등 수목이 울창하고 공원도 많아 녹지공간이 풍부해 쾌적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아름답게 장식한 매표소 입구를 지나 미니열차를 타고 모래지프차 주차장으로 갔다.


멀리 모래 산에는 개미처럼 사람들이 들 끌고 있었다.

무더위 속에 굉음을 내는 지프차를 타고 비탈면을 달리는가 하면 오르막내리막을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고 있어 무더위는커녕 스릴과 부딪치는 바람이 간까지 시원하게 지는 느낌이었다.



모래 산 정상부근에서 황금빛 모래의 부드러운 촉감을 즐기면서 선선시내를 내려다 볼때 감미로운 바람이 더위를 식혀주고 있었다.


짜릿한 쾌감을 느끼고 1630분 호텔로 향했다.

서유호(西游酒店) 호텔 1212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2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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