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수필

장가계. 봉황고성 여행기

소산1 2016. 9. 4. 09:42

장가계. 봉황고성 여행기|소산/문재학님

소산/문 재학 | 조회 62 |추천 0 |2016.09.01. 10:23 http://cafe.daum.net/2080seoul/Tsin/179 

장가계. 봉황고성 여행기

소산/문 재학


2016822() 맑음

풍년을 기대하는 벼의 出穗가 한창이고, 기록적인 폭염이 연일 계속되고 있어 밭작물이 극심한 旱害를 입고 있었다.

오늘 서울의 온도가 36.6도라 했다.


벼농사야 정부에서 수원개발을 전국적으로 거의 완벽에 가깝도록 해두었기에 피해가 적겠지만 밭작물은 거의 속수무책이다. 농민들의 가슴은 함께 타들어간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장가계는 2005년도에 다녀왔지만 유명한 천문산을 멀리서만 본 아쉬움과 4000년 역사 봉황고성의 수백 년을 자랑하는 고색 찬란한 3~4층의 목조기와집의 신기한 풍광을 보러가는 길이다.


아침 7시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휴가철이라 그런지 여행객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지금까지 인천공항에서 보아온 것 중 제일 많아 보였다.


출국수속을 끝내고 오전 1015분 아세아나기(OZ2533)로 중국의 중경으로 향했다.

인천공항 활주로 주변의 잔디가 빨갛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중경국제공항까지 소요시간은 3시간 30분 정도다.


오후 115분 중국의 상공은 약간의 흰 구름이 그림자를 드리울 뿐 날씨가 좋았다.

몽실몽실한 산봉우리 사이로 경작지들도 간혹 보이고 넓고 긴 물줄기를 이루는 댐 같은 것이 보였다. 인가는 보이지 않는데 꼬불꼬불 산길이 많이 나타났다.


잠시 후 야산과 들 사이로 흐르는 장강의 좌우로 산재된 주택들과 도로가 나타나는 것을 보니 중경시내가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현재 남은 거리 23km, 고도 2700m. 비행속도 394km이다.


이색적인 청색지붕들이 많이 보이는가 하더니 시원하게 뻗은 고속도로도 나타났다. 이어 비행기는 중경 시내 상공을 지나갔다.


중경시내는 장강을 중심으로 고층 아파트 들이 숲을 이루고 낮은 건물은 지붕이 역시 청색으로 단장을 해두었다.

한눈에 보아서도 대단히 큰 대도시 같았다.


시내 중심을 지나 한국시간 150(현지시간 1250. 시차 1시간 앞으로는 현지시간으로 명기) 비행장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비행장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게류중인 비행기가 많았다. 그리고 계속하여 이착륙을 하고 있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나와 현지 가이드 김보호씨(길림성 연길출신 교포 3)를 만났다.

11명 일행과 수인사를 나누고 밖을 나오니 36도의 뜨거운 열기가 한증막에 들어서는 것 같았다. 무더위로 고생을 할 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염려스러웠다.


중경시는 중국의 4대 직할시 중 두 번쩨 큰 도시이다.

면적은 82,300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3,600만 명이다.(1위 무한 4,600만 명, 3위 상해 2,500만 명) 산악지대라 농경지는 거의 없고 공업도시이고 경제와 교통의 중심지란다.

 

그리고 위도는 우리나라 제주도 보다 남쪽에 위치하고 낮 온도가 41도를 오르내리는 불가마 지역이다.

一年1/3일인 130일 정도가 안개가 끼는 날씨라 했다.

겨울에는 최저온도가 영상 5도라 눈 구경을 할 수 없단다.


우리가 승차한 25인승 미니버스는 의자를 반 침대식으로 뒤로 눕힐 수 있고 차 바닥은 비닐 장판으로 깔아놓아 깨끗했다.

차 앞 유리창위에는 작은 전광판에 현재의 시간과 외기온도와 실내온도 등을 알려주고 있어 장거리 여행에 편리할 것 같았다. 차내 온도는 23도 냉방 성능도 좋았다.


곧바로 장가계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여행안내서에는 8시간 이지만 10시간이라 했다.

15분 정도 시내를 지나자 오후 2시 현재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왕복 8차선 도로변은 넓은 들판은 보이지 않고 낮은 산들 뿐이다.


이어 터널이 계속되는데 총 42개의 터널을 지내야 한단다. 긴 터널은 17km나 되는 것도 있단다.

215분 현재 먹구름이 몰려들면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심한 소나기가 내렸다.

앞으로 갈 길이 많이 남은 장거리 여행이라 걱정이 앞섰다.


220분경에 장강을 지나는데 부둣가에는 붉은 철골장비로 하역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내 비가 잦아들고 시야가 터이고 있었다.

인가가 간혹 보이는 야산 구릉지대의 푸른 녹음이 물기를 머금고 한층 생기를 더하고 있었다.


부근에 높은 산은 보이지 않았고 도로변에 樹壁을 이루는 나무들은 천년 闊雜木들이다.

곳곳에 약간의 경작지와 별장 같은 2층 주택들이 보였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는 油桃花 같은 꽃이 활짝 피어 시선을 즐겁게 하고 대형 野立看板은 타곳에 비하여 그렇게 많지 않았다.


3시경에는 왕복 4차선으로 바뀌고 날씨는 눈부실 정도로 맑게 개이었다.

넓은 들은 볼 수가 없고 산비탈 곳곳에는 수확을 끝낸 옥수수들이 말라버린 앙상한 대궁이만 남은 것이 보였다.


멀리 있는 것은 마치 화전 밭 같아 보였다.

산골짜기의 작은 논에는 벼가 황금빛을 자랑하며 익어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비슷한 지형과 불양한 林相이 이어지고 터널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터널 내에는 일정한 거리로 다양한 색상의 반원 아치형 조명시설을 해둔 것이 이색적이고 아름다워 영상으로 담았다.

330분 경 고층 아파트가 많은 南川이라는 소도시를 지나기도 했다.


고속도로변 산에는 척박한 땅이지만 곳곳에 유카리스 나무를 인공재배를 하고 있었다.

338수장이라는 휴게소에 들렸다.

부근의 집들은 대개 2층으로 규모가 크고 굴뚝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습기나 뱀 때문에 아래층은 창고 등으로 사용하고 2층은 주거용인데 보통 3대가 한집에 산다고 했다.

423분 경 부터는 긴 터널이 연속으로 나타나더니 5시경부터는 험한 바위산 지대로 긴 터널이 이어지고 있었다.


너널을 빠져나오면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나고 비탈 경사지에 옥수수 밭들이 많이 보였다.

옥수수 재배 풍경이 강원도를 연상케 했다.

533분경부터는 산의 5부 능선을 달리는데 대형화물차가 많이 보였다.


625분 산마루를 넘는 석양이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도로변 주택들 중 슬라브 지붕에는 물을 담아 놓아놓은 것을 자주 보였다.

모두 열기를 식히기 위한 것이라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했다.


2층집들은 하얀 벽에다가 나무들은 전부 붉은 페인트로 단장해 둔 것이 이색적 이였다.

더워서인지 마을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 幽靈의 집같이 을씨년스러웠다.

그나마 주위 농경지에는 담배 .고구마. 호박 등을 재배하고 있어 사람이 사는 것 같았다.


710분 어둠이 내릴 때 酉陽挑花源 관광지구 에 들려 현지식으로 저녁을 했다.

식당 주변의 집들은 3~4층의 목조들이 호기심을 자아낼 정도로 특이하게 아름다워 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며칠 뒤에 이곳 유원지 복희동굴 탐방이 있을 예정이다.


745분 어둠속에 장가계로 향했다. 앞으로 3시간을 더 가야하는 지루한 여행길이다.

역시 터널을 많이 지났다.

검은 산 능선을 타고 따라오는 유난히 크게 보이는 어스름 반달을 줌으로 당겨 동영상으로 담았다.


간혹 야간 조명과 네온이 화려한 작은 도시들이 나타날 때마다 영상으로 담았다.

113분 장가계 요금소를 통과 하여 1130분 경 크리스탈 호텔(梅洛水晶酒店) 1911호실에 투숙했다.



2016823() 맑음

아침에 호텔을 나와 보니 관광버스들이 호텔 앞을 가득 매우고 있었다.

630분 황석채로 향했다.


동정호(洞庭湖)를 중심으로 남쪽인 이곳 호남성은 면적 212천 평방키로(한반도 면적과 비슷함)이고 인구는 6300만 명이다.

그리고 장가계는 면적 9,516 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70만 명이다.


호남성은 모택동과 유서기의 고향이라 했다.

신흥건축물이 많은 장가계는 시내 중심으로 리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아파트가 많고 도로변은 중국 특유의 홍등과 적색 간판들로 뒤덮여 있고 관광객들이 붐비고 있어 활기가 넘쳐 보였다.

이곳은 4개의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데, 그 중 70%토가족 이라 했다.


도로변은 관광지답게 정원수 등으로 아름답게 조성하여 시선을 즐겁게 하고 있었다.

장가계 시내를 벗어나 2차선 숲속 길을 달렸다.


도로변 농경지에는 포도 비가림 시설이 많이 보이는데, 호남성은 수박. 복숭아 등 과일이 많이 생산 된다고 했다.

7시경에 협곡으로 들으셨다. 이른 아침인데도 통행차량이 상당히 많았다.

대부분이 관광객을 실은 미니버스였다.


울룩불룩 허공에 능선을 그리는 산등성이 위로 이글거리는 아침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버스는 가파른 경사 길을 굽이구비 돌아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긴 터널을 지나기도 했다.


2005년도에 왔을 때는 무릉 마을의 입구 기암괴석의 아름다운 자태가 설레임으로 넘치던 백장협을 통과 하였는데 지금은 새로 개발한 새 길을 가고 있어 또 다른 기대를 해보았다.


황석채로 가는 도로변은 상가들이 즐비하고 관광객들도 무척 많았다.

황석채로 들어가는 검표소에서는 입장권(카드)을 확인하면서 전자指紋 채취를 일일이 하는데 이는 카드의 이중 사용을 위해서라는데 새로운 제도였다.


부근의 산세는 장가계 특유의 바위산들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레를 받고 있었다.

출입구 좌측은 금관 계곡이라 하는데 울창한 삼나무 숲 사이로 맑은 물이 흘러가고 있어 나무 그늘과 함께 더위를 씻어 내렸다.



우수 용재림으로 각광받는 삼나무의 큰 나무들이 많아 상당히 부러웠다.

수백 미터 삼나무 숲길과 아름다운 산세를 보면서 올라가니 황석채 케이블카로 가는 셔틀버스가 많이 대기하고 있었다.


황석채는 유방의 참모인 張良이 조난 당했을 때 스승인 黃石公이 그를 구하였고 그 黃石公이 도를 닦아 신선이 되었다 한다.

그 후로 사람들이 이곳을 黃石이라 부르게 되었단다.


관광객들이 많아 순서대로 승차하여 올라가는데 도로변은 온통 대나무밭 이었다. 3분 정도 올라가니 넓은 주차장 뒤편이 황석채 오르는 케이블카 타는 곳이다.



8인승 케이블카를 타고 그림 같은 산세를 사방으로 둘러보면서 8분 정도 올라가니 해발 1030m 전망대가 있는 평지가 나왔다.


울창한 삼나무 숲길을 한참 걸어가 오지봉 전망대에서 기묘한 五指峰을 동영상으로 담고 이어 뾰족하게 돌출된 바위 전망대 摘星臺에서 아름다운 산세의 풍광을 내려다보았다.

돌계단들은 관광객들이 얼마나 많이 다녔는지 돌이 달라서 반들반들했다.


무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면서 가까운 정상에 있는 靑山白雲 액자가 걸린 六奇閣(1991년도 준공)이라 불리는 독특한 형상의 36각 정자위로 올라가서 황석채의 전경을 동영상으로 담았다.

처음 보는 장가계의 다른 모습 이였다.



다시 케이블카로 하산하니 838분이였다.

그리고 다시 셔틀버스를 2분 정도 타고 올라가 울창한 삼나무 숲길의 수백 미터 목책 산책길을 따라 오르면서 땀을 많이 흘렀다.


밀려드는 관광객 대부분이 중국 사람들인데 이런 깊은 산속을 걷는 기분이 묘했다.

땀은 흐르지만 상쾌한 공기를 마시면서 산마루에 올라서니 858분이였다.


능선 반대편에는 주차장이 있고 미니버스가 계속해서 운행되고 있었다,

관광객이 많으니 상가와 노점상도 있었다.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을 영상으로 담고 셔틀버스에 올라 급경사 길을 꼬불꼬불 내려갔다.

끝임 없이 셔틀버스기 지나갔다.


912분에 楊家界 케이블카 타는 곳에 도착했다.

양가계는 북송의 양가장이 천자산에 군대를 주둔시키면서 오래 머물다 보니 양씨 가문의 후손들이 번성하여 양가계라 불리었다고 했다.


양가계 케이블카는 2014년도에 준공했다고 했다.

케이블카 타는 대형건물 앞에는 관광객들이 시장통처럼 붐비었다.

주위를 동영상으로 담느라 일행을 놓칠 뻔 했다.


정말 많은 인파가 밀려들고 있어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 케이블카를 탈 수 있었다.

기암괴석 사이로 오르는데, 선녀봉어필봉이 있다는데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모르고 주위의 돌출된 바위사이로 동영상을 담으면서 10여분 올라갔다 10여 년 전에 왔을때 들어본 이름 같기도 했다.



깎아지른 절벽에 시멘트로 기초를 하고 케이블카 지주를 세운 것이 대단했다.

올라가는 좌측 절벽에는 트랙킹 하는 울긋불긋한 많은 등산객들이 절벽사이로 개미같이 작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기한 石林 속을 눈으로, 영상으로 담으면서 해발 1300m 능선에 오르니 929이였다.

북적이는 관광객을 뒤로 하고 수백 미터를 걸어가 다시 지프차를 티고 賀龍公園으로 향했다.(하룡공원은 천자산내 있는 전망대로 이곳 토가족 출신의 중국의 10대 원수 중 한사람인 하룡장군을 기념하기 위한 공원이다)


한참을 달려 차에서 내려 숲속 길을 들어가니 장가계의 진수를 맛볼 정도로 아름다운 풍광들이 펼쳐졌다.



옵션 관광코스라 그런지 관광객이 우리뿐이라 여유롭게 즐기면서 영상으로 풍경을 담았다. 계속해서 절벽 위 허리 길을 가면서 전망대마다 새로운 장면들을 영상으로 담아냈다.


한참을 돌아가니 엄청난 관광객들이 붐비는데 이곳부터 원가계 지역이란다.

사람이 너무 많아 사진촬영은커녕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觀光路 바닥은 전부 돌로 깔고 돌계단으로 조성 하였는데 사람의 발길에 의 돌들이 역시 반들반들 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얼마나 갔을까 산과 산이 天然的으로 다리가 형성된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 높이 300m, 넓이 2m, 길이 20m )를 만났다.



사람이 너무 많아 간신히 진기한 경관을 영상으로 담고 위로 올라갔다.

넓은 주차장이 있는 대형 木造건물 3층에서 1130분에 이른 점심을 하고 1210분 셔틀버스를 타고 백룡엘리베이터 로 향했다.


어디를 가나 관광객이 넘쳐나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2002년도에 완공된 백룡엘리베이터는 높이 335m, 실제 운행높이는 313m로 그중 156m는 수직 동굴이고 170m는 투명 창을 통해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그리고 운행시간은 158, 3대가 가동되는데 대당 최대 56명이 탈수 있다. 백룡에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2번째 타보는 것이지만 역시 대단한 시설이었다.


아래에 도착하여 넓은광장에서 주위의 장군봉 등 아름다운 산세를 영상으로 담고 까마득한 절벽에 붙은 백룡엘리베이터도 줌으로 당겨 보았다.



다시 한 번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셔틀버스가 대기하는 곳으로 가는 긴 지하터널은 시원해서 발걸음이 가벼웠다.


12 25분에 셔틀버스에 올라 십리화랑(十里畵廊)에는 1240분에 도착했다.

무더위 때문에 남자들도 일부 양산을 쓰고 있어 사진촬영에 지장이 있을 정도였다.

새롭게 단장한 모노레일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골짜기로 들어가는 좌측방향으로 보행로가 있고 溪川 건너편의 산 지형 5km가 그림을 펼쳐놓은 듯 아름다운 십리화랑의 풍광이었다.


한 가족 바위, 손가락바위, 약초 캐는 노인상, 그리고 낙타바위 종착지 앞을 가로막는 거대한 세 자매 바위 등 시종 눈을 땔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종착지에서 부근의 풍광을 영상으로 담고 되돌아 나왔다.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모노레일과 나란히 나 있는 산책로(?) 따라 많은 사람이 걷고 있었다. 아마도 시간적 여유가 많은 중국인들 같았다.


다시 셔틀버스에 올라 무릉원 마을로 향했다.

좁은 산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무릉원 매표소였다.



필자가 처음 이곳을 통해 천자산을 찾았을 때와는 많이도 변해 있었다.

매표소 입구 부근에는 지금도 대형 건물들을 한참 신축하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는 우리버스에 올랐다. 현제시간 오후 2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무릉 시내도 많이 변해 있었다. 역시 관광지답게 독특한 양식의 상점이랑 집들이 화려하게 단장을 했다. 관광객들도 많았다.


시내에서 간단한 쇼핑과 마사지를 하고 430분 버스는 보봉호 입구를 지나고 황룡동굴 입구를 지나났다. 다시 한 번 둘러보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이어 농산물 판매장을 들린 후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토가족 여인들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삼겹살 무한리필로 저녁을 했다.


그리고 710분경 매력상서쇼장으로 갔다.

공연장 주변은 이색적인 건물들과 조형물 등의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 대형 공연장으로 들어가니 거의 만석인데 관람객들이 계속 들어오고 있었다. 앞자리 중앙에 에매가 되어있어 관람하기에 제일 편리한 자리였다.


본 공연이 시작되기 전에 남자 한사람이 화려한 치장을 한 미녀들의 도움을 받으며 즉석에서 한문 글을 써서 대형 화면으로 보여 주었다. 필자는 필체를 모르지만 액자로 만들어 집에 걸어두고 싶을 정도로 잘 쓴 글씨 같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장엄한 쇼를 1시간 30분 정도 관람하고 밖을 나왔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일행을 놓쳐버렸다.

미리 버스대기 장소를 기억해 두었기에 망정이지 큰일 날 번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주변에 있는 건물들의 화려한 네온들을 감상하면서 호텔에 도착하니 밤 10시가 훨씬 지났다.



2016824() 맑음

630분 호텔을 나왔다.

천문산은 관광객이 너무 많아 예약제로 실시한다는데 우리일행은 12~ 1사이 탑승예정이라 무릉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독특한 양식의 중국풍 집들도 많고 새로운 아파트들도 많았다.


그리고 열대식물인 고무나무로 가로수가 조성되어 있었다. 이곳이 그만큼 따뜻한 아열대 지역이라 생각되지만 이색적 이였다. 또 도로변과 로타리 등도 조경을 잘해두어 거리가 한층 아름다워 보였다.


남는 시간은 쇼핑센터와 농산물 판매장 등을 둘러보고 11시 조금 지나 이른 점심을 하고 천문산으로 향했다.


무릉마을을 나가는 길은 옛날에 한번 지나간 산세가 수려한 백장협곡길이라 반가웠다. 긴 협곡을 지나가는데 주변에는 대부분 대나무 밭이었다.

그리고 긴 터널이 나타났는데 그 길은 조금 생소하게 느껴졌다.


교통체증이 심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천문산 케이블카 타는 곳에 오니 화려한 신흥건물들로 새로운 도시로 이루어져 있었다.


케이블카 타는 주차장에 도착하니 1230분이였다. 버스가 초만원을 이루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뜨거운 열기 때문에 숨이 막힐 지경 이였다.

뛰다시피 서둘러 매표소를 통과했다.


낡은 케이블카를 타기위해 무더위 속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고통이었다. 8인승 케이블카는 빈자리 없이 채워서 올려 보내고 있었다.

케이블카는 오래된 마을위로 지나가는데 이곳 주민들에게 보상을 많이 주어 민원은 없다고 했다.

(케이블카는 2005년도 준공한 세계최장의 관광전용케이블카이다.

길이는 7,455m 이고 소요시간은 35 ~ 40분 정도라 했다.

135 ~ 최대 50천명까지 수송 한다고 했다.)


설레임 속에 천문산이 가까워 오는데 산 정상 제일 좌측에 여자의 풍만한 젖무덤과 젖꼭지가 선명한 바위가 있어 같이 탑승한 여자들도 신기해했다. 절벽 암반위에 철탑을 세운 것도 기적 같은 일이였다


개인이 설치하였는데 1년 반 만에 본전을 뽑았다고 했다.(현재 1인당 편도 100천원이라 함)

케이불카는 통천대도 꼬부랑길을 발아래로 하고, 하늘로 뚫린 통천동을 옆에 끼고 올라가는 동안 비경을 부지런히 영상으로 담았다.



해발 1518m 천문산 정상에 도착하니 관광객이 엄청나게 많았다.

좌측으로 먼저 돌려고 하였으나 사람이 너무 많아 우측 琉璃棧道 쪽으로 향했다.


아래로 내려가니 넓은광장에는 하산 케이블카를 타려는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유리잔도 쪽으로 가는 길은 산 정상 부근인데도 많은 나무들이 시원한 그늘을 내어 주고 있었다.


짧은 공중다리를 건너는가 싶더니 곧 유리 잔도가 나왔다.

(유리잔도는 20124월에 개통 하였다는데 해발 1400m에 길이 60m, 90cm로 설치 해 두었다.)

먼저 투명유리 보호와 미끄럼 방지를 위해 모두 준비된 붉은 천 덧신을 신게 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절벽 쪽에 바짝 붙어서 걷거나 아예 눈을 감고 장님처럼 사람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유리가 너무 맑아 정말 1000m 아득한 절벽이 그대로 보여 시선이 자꾸만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戰慄에 등줄기가 식은땀으로 흐르는 기분이었다.


사람이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1톤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하였다지만 두려움의 공포는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부지런히 영상으로 담았다.


이어 鬼谷棧道1,600m에 달하는 길을 지나가야했다.

도중에 나무가 있는 곳은 소원을 비는 붉은 리본이 나뭇가지가 휘어지도록 온통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귀곡잔도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면서 지나가니 골짜기 조금 넓은 2곳에 토속족의 아가씨들이 아리랑 등 한국노래를 전통악기와 함께 부르고 있었다. 격려의 뜻으로 천 원씩을 주고 있었다.

도중에 폭 2m, 길이 100m(?)나 되어 보이는 天門山索橋 흔들다리가 나왔다 너무 고공이라 약간의 두려움도 있었지만 스릴도 있었다.



부근의 풍광을 담느라 다리위에는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다리를 지나자 나무그늘이 있는 데는 해발 1500m나 되어서인지 비교적 시원했다.


얼마를 지났을까 천문산 정상에 대형사찰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당나라 때 창건하였다는 천문산사는 그 옛날 자재를 어떻게 운반 하여 집을 짖었는지 신기했다.


사찰을 찾아 들어서니 넓은광장 한편에는 조경과 함께 작은 연못을 만들어 두었고 광장을 지나 계단을 올라서면 天門山寺가 있고 그 뒤 天王殿을 지나면 황금색 지붕의 거대한 2층 건물 大雄寶殿 등과 많은 요사채를 비롯 사찰규모가 대단했다.



다시 반대편 절벽 천문동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곳곳에 안내문 작은 간판마다 한글이 병기되어 있어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한참을 숲길과 잔도 등을 걸어서 천문동 입구가 보이는 곳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고 천문동을 영상으로 담고 99개 꼬부랑길 통천대도(曲道通天=표지석의 글임)를 한눈에 정경을 볼 수 있는 곳에서 영상으로 담았다.


위에서 내려본 천문동 입구


곧이어 거의 수직(60)으로 지하갱도의 좌측으로 내려가는(올라오는 것은 우측임) 에스컬레이터를 7번이나 갈아타면서 내려갔다. 재료가 모두 스텐리스로 되어있어 밝은 조명아래 아래 더욱 빤짝이었다. 왕복시설인데도 오후시간이라 그러한지 올라오는 사람은 극히 적었었다.



밖을 돌아서 나오니 비행기가 지나갔다는 뻥 뚫린 天門洞(높이 131m, 넓이 57m, 깊이 60m)이다.

부지런히 영상으로 담으면서 하산 길 쪽 주차장이 보이는 곳으로 나가니 999(1000개에서 1개 부족)의 가파른 계단으로 관광객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이 계단을 이용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그리고 주차장에는 개미처럼 작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대자연이 만들어낸 걸작품 천 미터 높이의 절벽 위에 거울처럼 걸려있어 하늘 문을 열어 둔 것 같은 풍광을 동영상으로 담고, 이어 좌측으로 돌아가니 다시 입장티켓을 검사한 후 이번에는 우측으로 내려가는(올라오는 사람은 좌측임) 에스컬레이터를 5번이나 갈아탔다.

(산 전체를 관통하는 이 에스컬레이터는 20154월에 개통하였다, 127+5이나 갈아타는 에스컬레이터는 총길이 897m, 상승고도 340m 시간당 한 방향으로 3600명을 수송 할 수 있다는데 세계 최대의 시설 같았다.)


이어 밖을 나가니 넓은 광장에는 개미처럼 작아 보이든 사람들과 한편에는 셔틀버스 (25인승)가 쉴 새 없이 운행되고 있었다.



까마득한 999개단 위의 천문동 등 부근의 아름다운 산세를 열심히 영상으로 담고 줄을 서서 가다려 오후 422분에 셔틀버스에 승차해 통천대도로 내려가기 시작했다.(이 통천대도는 8년에 걸쳐 공사를 하여 2005년도 개통하였는데, 길이가 11km이고 해발 200m에서 1300m까지 99굽이 길로 급상승 하는 화보에도 자주 나오는 세계유일의 도로다)


이런 험산절벽에 어떻게 길을 내었을까. 99개 꼬부랑길을 곡예운전으로 내려오는데 백두산 북파의 지프차 길은 이곳에 비하면 양반길이였다.


보기만 해도 아찔한 세계최대의 꼬부랑길 손에 땀을 쥐면서 스릴 속에 내려오니 450분이였다. 28분이 소요된 셈이다.


아래 셔틀버스 주차장 부근에도 대형야외 공연장을 비롯 건물들을 많이 짖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우리버스에 올라 내려오면서 되돌아보니 까마득한 천문동 주위의 아름다운 산세들이 그림같이 다가왔다.


이어 시내에 있는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불고기와 시원한 청도맥주로 저녁을 하고 노을 지는 석양을 안고 봉황고성으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3시간이라 했다.


이곳도 중국의 다른 지역과 같이 아파트가 많았다.

곧이어 왕복 4차선 고속도로에 들어섰다.


645분 현재 해는 서산마루에 걸려있고 야산 곳곳에 경작지와 산재된 농가들이 무척 평화로워 보였다. 어둠속에 피곤한 잠을 청했다.

대형 야립간판도 조명을 하는 것이 있었다.


9시 현재 봉황까지는 29km 남았다.

920분경에 봉황휴게소에 들어가니 넓은 주차장에 대형 화물차들이 가득하였다. 중국의 활발한 경제를 엿보는 것 같았다.


곧이어 고속도로 봉황 요금소에 들어서니 도로변은 상상의 새 화려한 봉황새 가로등이 이채롭고 아름다워 가벼운 흥분이 일기도 했다.


봉황은 인구 30만 명(주로 묘족이 거주 함)의 중국에서는 작은 도시이다.

타강(沱江) 부근에서 내리니 현란한 조명들이 강을 중심으로 부근의 건물들을 밝히고 있어 별천지에 온 것 같은 황홀감을 느꼈다.


10시가 다되어 가는데도 엄청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강 중앙에 있는 누각에서 좌우사방으로 아름다운 야경을 영상으로 담고 또 담았다. 대도시 환락가도 이렇게는 붐비지 않았던 것 같다.



시원한 강변을 따라 걷는데 인파 때문에 걷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곳곳에 터져 나오는 음악소리와 젊음의 열기가 대단했다.


붉은 등이 늘어선 좁은 골목길도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가까이에 있는 봉황가든호텔(鳳凰花園酒店) 502호실에 투숙하니 밤 11시가 다되었다.



2016825() 맑음

730분에 타강의 쪽배를 타기위해 호텔을 나왔다.

타강 주변의 분위기는 지난밤과는 전혀 다른 마치 다른 지역에 온 기분이다.

그 많은 사람은 다 어디로 갔는지 지극히 한산하고 조용하였다.



쪽배를 타려 강으로 내려가니 강물에 쓰레기가 떠다니고 강물도 아주 탁했다.

물고기 잡는 사람, 수영하는 사람. 야채도 씻고 빨래도 하는 사람이 있었다.


위쪽으로 600년 역사를 자랑하며 강을 가로 지르는 거대한 홍교(무지개다리)도 지난밤의 화려한 자태는 어디로 갔는지 쓸쓸한 분위기였다




.

745분 노를 젖는 쪽배(8인승)에 올랐다.

일부 사람이 살지 않는 집들도 있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의 반은 기둥으로 지탱하고 있는 수상가옥들은 세월의 무게를 실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기대에 못 미치는 낮의 풍경들이였다.


그래도 관광객들은 많았다.

간단한 선상유람을 끝내고 845분 다음 행선지인 유양 도화원 복희 동굴로 향했다. 소요시간은 3시간 예정이다.


가는 길 도로변 야산 완경사지의 옥수수들은 熟期가 늦었는지 아직 수확을 하지 않았다.

다양한 밭작물들 自給用인지 몰라도 소규모로 재배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요금소를 통과하자 왕복 4차선이다. 시원하게 달렸다.

집단 마을 부근은 일부 벼농사를 짓고 있었다.

버스는 높은 교각 위 8부 능선 고지대를 달리고 있었다.


930분 현재 도로변 야산들은 林相들이 상당히 좋은 편이였다.

소규모 경작지에 담배 경작지도 자주 보이고 말라붙은 옥수수 대궁이 밭들도 군데군데 있었다.

모든 작물이 소규모라 기계사용이 불가한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계속해서 8부 능선을 달리는데 시원한 호수 마을도 지났다.

보기 드문 검은 기와지붕의 옛날 고택마을 지나기도 했다.

주위의 산들은 계림처럼 아름답지는 않지만 산맥이 없이 뾰족뾰족 돌출되어

독립된 산들이었다.


1050분부터는 갑자기 큰 산들이 나타나고 긴 터널이 시작되었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의 다양한 색상의 백일홍 꽃들이 시선을 즐겁게 했다.

1118분 현재 桃花源풍경구17km 남았다.


시골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부는지 40~50층의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옛날의 낮은 집들은 대부분 청색으로 도색을 하였다.

도화원 요금소를 빠져나와 중식을 끝내고 1210도화원 伏羲동굴로 향했다.


10여분 달려 酉陽 시내가 나왔다

도연명의 도화의 근거지로 중국에서 공식 발표한 이곳은 좁은 골짜기에 고층 아파트와 깨끗한 상가들이 아름다운 정원수로 단장한 도로를 따라 즐비했다.


버스에서 내려 복희동굴로 가는 입구에는 대형 원형 돔의 특산품 매장이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 옆으로 정원수로 욱어진 이름 모를 공원에는 곳곳에 다양한 형상의 청동 동상들이 눈길을 끌고 있었다.


공원내 조형물


공원 맞은편 산자락에는 중국 특유의 검은 기와의 다층건물들이 이색적이라 영상에 담았다.

외기온도가 38도 후끈거리는 열기 속에 검표소를 지나니 엄청난 공간의 석굴이 나타났다.


시원한 냉기아래 인근 주민들로 보이는 노인들이 한가로이 마작을 하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이곳을 지나 다양한 꽃들로 조성된 오솔길을 지났다.


수십 개의 가 있는 碑林지대를 지나 비지땀을 흘리며 산 중턱에 있는 동굴 입구로 올라갔다.

계곡에는 水量은 적지만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경사진 곳 일부는 미려한 형상의 목조로 만든 긴 비가림 시설이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고 있었다. 곳곳에 漢詩로 보이는 액자를 수십 개 게시하여 두었다.


앞을 막는 거대한 수직 절벽 앞에는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이용 작은 연못을 만들고 예쁜 누각을 몇 개 만들어 쉼터로 이용하고 있었다.

드디어 아가씨가 지키고 있는 입구를 지나니 찬바람이 터져 나오는 동굴입구다 우선 더위가 싹 달아나니 살 것 만 같았다.


입구의 전광판에는 동굴 내 온도가 14.6도 습도는 100%라고 알리고 있었다.

2km나 되는 동굴은 장가계 황룡동굴(소요시간 1시간 정도) 보다 길어 1시간 30분 정도 소요시간을 예상했다.


동굴내로 들어서니 높은 천장 등 곳곳에 아름다운 종유석들이 화려한 조명 속에 자태를 뽐내고 있어 부지런히 영상으로 담으면서 올라갔다.

바닥은 계단을 포함 목재 또는 시멘트로 관광객을 위해 정비를 잘해 두었다.



경관이 좋은 곳은 일일이 사진을 찍어주고 출구 쪽에서 유상배부를 하고 있었다.

볼거리가 많은 복희동굴의 수많은 소형 안내간판에는 중국어. 영어. 한국어를 병기한 설명이 있어 반갑기도 하고 쉬운 이해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물론 중국 사람이 일본사람을 싫어해서인지 일본사람도 보이지 않고 일본어 설명도 없었다.

기나긴 관광을 끝내고 나오는 출구 쪽 100m에 바닥에 카펫을 깔아 미끄럼 방지를 해두었다.


그리고 수백 미터에는 열대식물의 모조품과 桃源境답게

만개한 복숭아꽃으로 장식을 해두어 마치 생화 속 도화원을 걷는 기분이었다. 밖을 나오니 뜨거운 열기가 질식 할 것 만 같았다.


가이드가 얼음과자를 나누어 주어 더위를 달래며 조금 떨어진 주차장으로 향했다.

오후 220분 버스는 중경으로 향했다.


다시 수많은 터널이 있는 산악지대다.

멀리 산 능선을 다라 고압선 철탑이 끝임 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중국의 전기사정을 짐작할 것 같았다.


가끔 강변의 평화로운 마을도 지나고 화전을 이루고 있는 산골도 지났다.

오후 4시 현재 버스 내 전광판에는 외기온도가 4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후 520水江휴게소에 들릴 때는 38도인데도 열 가마 같았다.

6시경 중경시 변두리인 것 같은데 신흥 아파트를 많이 잦고 있는 곳을 지났다. 중국은 어디를 가나 급진적으로 발전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부러웠다.


이곳 중경 부근에도 급경사지를 소규모로 개간하여 밭농사를 많이 짖고 있었다.

버스는 계속 달려 공항동 요금소를 통과하여 중경시의 공업지역에 있는 상고호텔(尙高酒店) 1015실에 투숙했다.

호텔 2층에서 저녁을 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16826() 맑음

아침에는 8시에 호텔을 나와 마지막 일정인 시내에 있는 임시정부청사 관람에 나셨다.

호텔 밖 상공에는 수시로 여객기가 지나갔다.


중경시내는 지하철은 없고 전철이 운행되고 있었다.

전철이 아파트를 관통하는 곳이 있다는데 보지 못해 아쉬웠다.

시내에 있는 임시정부 청사로 가는 도로변에 타원형 탑 모양의 미려한 건물이 높이 솟아 있는데 백화점이라 했다.


출근시간이라 그러한지 교통체증이 심했다. 왕복 8차선을 차량들이 가득 매우고 있었다.

그리고 고층 아파트를 여러 곳에서 신축을 하고 있었다.


912분경 시내 중심을 흐르는 장강을 지나는데 대형 화물선 사이로 작은 배들이 물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장강은 하폭도 넓고 수심이 깊어 수상 운송 기능을 톡톡히 할 것 같았다.

장강을 지나자마자 民生路라는 거리의 언덕을 올라갔다.


주위는 미려한 고층빌딩들이 많았다. 복잡한 도로에 간신히 回車를 하여 도로변에 주차 한 후 골목길로 내려가 100m 들어가니 회색 벽에 대한민국림시정부라는 글씨가 있는 임시정부청사 입구가 나왔다.



출입구 우측은 붉은 전광판이 움직이는 안내소이고 좌측 2층으로 올라가니 군사 전시실이 나왔다.

사진과 함께 그 당시의 분위를 느낄 수 있었다.


5호실까지 있는데 맞은편 언덕의 주석의 비서실을 지나 오른쪽 주석실에는 김구 주석과 김규식 부주석의 대형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옆에는 회의탁자만 있는 국무위원실이 있었다.


곳곳을 영상으로 담는 도중 정전이 되어 사진촬영은 단념하고 김구 주석의 흉상이 있은 곳은 어둠속에 둘러보고 간단한 기념품 가계도 들렸었다.


이곳은 중경시의 중심지에 가까이에 위치해 있었지만, 70여 년 전 골목 깊숙한 낫선 이국땅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해 고생하신 선인들의 숨결을 뒤로 하고 940분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서둘러 올랐다.


임시정부청사 부근은 고층아파트와 화려한 상가건물들이 장강을 내려다보고 이었다.

다시 호텔로 돌아오니 1030분이었다.


잠시 기다린 후 11시경 호텔 2층에서 때 이른 점심을 하고 중경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비행장 규모가 작기는 하지만 승객들도 많지 않았다.

1220분 화물 탁송과 동시에 비행기 탑승권(OZ3543 )을 받았다.

지루한 기다림 끝에 오후 25분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오후 553분 비행기는 제주도 상공을 나르고 있었다.

오후 640분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인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

 

        

감자바우, 16.09.01. 23:21
너무나 자세히 설명을 해주셔서 장가계를 가 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다녀온 것과 같았습니다. 장가계 관광 잘 했습니다.

꿀벌 16.09.01. 11:47
시인님의 상세하게 써올려주신 장가계. 봉황고성 여행기를 감사히 읽고 갑니다
가기힘든 곳곳 글로서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로운달 9월에도 지금처럼 행복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다가오는 가을 16.09.01. 12:33
끝까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마치 다녀온듯한 기분으로, 감사합니다.^0^ 수고 많으셨습니다.*.*

혜슬기 16.09.01. 13:03
장가계. 봉황고성 여행기를 읽으먼 직접 저가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어쩜 그렇게 세밀하게 표현하시지요 고맙습니다 ~ 

   미량 국인석 16.09.02. 00:57
설명만으로도 아찔한 현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장가계의 신비를 보기위해서 무더운 날에도 인파가 몰려드는군요?
장문의 여행기 영상과 함께 즐감해봅니다.감사합니다.소산 선생님!^^

낙락장송 (정태교) 16.09.03. 05:17 new
와~아 세상에 역시 중국 입니다 멎진 사진 자세한 설명끼지 고맙습니다 수고 하시었습니다
  
白雲/손경훈 16.09.01. 15:06
직접 간듯 세세한 설명으로
오닐조밀한 풍경과
웅장함이 제일입니다
고맙습니다

옥화 16.09.01. 13:37
시인님의 장가계. 봉황고성 여행기를 탐독합니다
즐거운 여행 되셨네요 ~ 
    
꽃망울. 16.09.01. 10:30
소산 문재학님 멋진 여행기 고맙게 즐감하네요 므흣 빵긋
 
눈보라 16.09.01. 18:11
문제학님 ~
이번에는 중국 장가계를 여행하셨네요~
사진과 함꼐 장가계를 소상히 밝혀 주셔서
참 아름다운 여행기였구나 실감나게 합니다..
문제학님 덕분에 구경 잘 했습니다...ㅎㅎ

성을주 16.09.01. 13:56
울창한 삼나무 숲길의 수백 미터 목책 산책길을 따라
여행하신 소산님의 여행기를 탐독합니다

연지 16.09.01. 18:12

장편의 여행기 글 쓰시느라 엄청 수고 많으셨슈 ~~~

  백초 16.09.02. 09:18         
많은 정보 ....올려주심에 도움이 되고 또한 긴 글 써서 올리느라
노고가 많소이다 한참 읽고 서성이다 갑니다 수고 했습니다

커피사랑 16.09.01. 12:35

기가 막히게 좋은곳이네요 ^^
즐감입니다

미미멘트 16.09.01. 13:43
중국 관광지 엄청 잘해놓았어요 (^^)
놀러 가면 볼거리가 많다지요~
글도 잘보고 ~구경 잘했답니다


雲岩/韓秉珍 16.09.01. 10:13

소산선생님 9월 첫날 중국 기행문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9월에도 건강하시고 가정의 안녕과 행복 행운이 가득 하시기 비리며
오늘도 일교차에 건강 유의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

靑野/김영복 16.09.02. 00:12
소산 선생님
중국 기행문과 아름다운 장면을 잘 감상했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오늘 밤도 평안한 시간되시길 바랍니다

진달래 16.09.01. 23:35
다음에 한번 더 읽어봐야 여행기의 맛을 알것 같아요
자상한 여행기 감사드립니다

은빛 16.09.01. 23:49
글과 사진으로만 보아도 웅장한 장가게의 여행은
최고의 여행이 아니였나 생각을 합니다

조약돌 16.09.02. 08:26
장가계의 사진찍는 장소가 거의 비슷해서
제가 찍은 곳하고 같은 곳이 많네요 ㅎ

雲海 이성미 16.09.02. 09:24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듯 빼곡히 써주신 여행기
옛 추억에 젖어봅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수장 16.09.02. 22:05
직장이 끝나면 여행좀 해야겠어요
이렇게 좋은곳을 못가는 마음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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