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기(1부)▣♡ 아름다운 글
북유럽 여행기(1부) (러시아. 핀란드.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2015. 8. 23 ~ 9. 2 소산/ 문재학 2015년 8월 23일(일. 맑음) 오늘은 처서 날. 목함 지뢰로 촉발된 남북관계 긴장 속에 남북고위 인사의 철야회담이 새벽 4시 15분에 끝나고 오후에 다시 재개 된다는 보도를 보면서 인천공항에서 13시 10분 러시아 항공 SU251편으로 모스코바로 향했다. 대형 비행기인데도 빈자리 없이 만원이다. 러시아와 인적교류가 많음을 실감했다. 붉은 유니폼의 러시아 승무원들의 서툰 한국말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러시아 대륙 중심부를 지나고 있다. 과거 유럽여행 시에는 러시아의 북쪽 툰드라 지역을 지났는데, 지금은 최단거리로 운항하고 있단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내내 맑은 창공을 9시간 비행하여 한국시간 밤 9시 56분(현지시간 오후 3시 56분 시차 6시간)MOSCOW SHEREM/SVORNRWP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공항 주변은 자작나무가 많고 조금 멀리로는 아파트가 많이 보였다. 이 비행장은 4개 비행장중 1개로 모스코바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공항은 규모가 비교적 작아 한산해 보였다. 입국수속을 마친 후 인솔가이드 신현주씨 주선으로 일행 34명이 모여 인원 점검을 하고 밖을 나오니 날씨가 시원했다. 마중 나온 현지가이드 조민철씨를 만나 모스코바 시내로 향했다. 도로변 수벽을 이루고 있는 자작나무(러시아의 國木)속 왕복 10차선을 시원하게 달렸다. 모스코바 시는 계란 프라이모양의 원형지형으로 외곽순환도로와 내부순환도로 2개 등 중국의 북경시처럼 순환도로가 잘되어 있다고 했다. 평소에는 차량이 너무 많아 교통체증이 심한데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라 시민들이 외곽지대로 빠져나가 비교적 한산한 것이라 했다. 러시아는 면적이 17,098천 평방키로 (한국의 78배)이고 인구는 1억 4천7백만 명이란다. 모스코바는 면적 251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1,450만 명이다. 그중 교민은 3천 명 정도라 했다. 겨울궁전내 있는 황금마차
가스 생산은 세계에서 1위, 석유도 4위에 이를 정도로 지하자원이 풍부 하다고 했다. 시내로 들어오는 도중 2층 3층의 고가 도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 곳곳에 있는데 지형이 평야지대라 고가도로를 많이 설치 이용하는 것 같았다. 모스코바 강을 지났다. 모스코바는 녹지공간이 많아 공기가 깨끗하다고 했다. 왕복 6차선 도로 가운데 중앙분리대 기능의 산책길(?)은 폭 7~8m나 되어 보이는 녹지대에 큰 나무가 짙은 그늘을 이루고 그 중앙으로 1개 차도의 산책로가 시원하게 나 있는데, 땅이 넓은 러시아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도로를 횡단하는 긴 육교는 비바람을 피할 수 있도록 투명 아크릴로 설치하여 시민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본받았으면 좋겠다. 운행차량은 안개등을 캐나다처럼 켜고 다니고 넓은 도로 한쪽으로는 레일위로 전차가 다니고 있었다. 오후 7시경에 모스코바 시내 VEGA호텔 26층 45호실에 여장을 풀었다. 오후 8시 20분경에 해가 진다는데. 어둠이 내리는 창밖에는 반달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호텔의 좌측으로는 나무가 울창한 큰 공원이 있고 우측으로는 복잡한 시내 가로등이 빛을 뿌리기 시작했다. 2015년 8월 24일(월) 맑음 시차는 있지만 새벽 4시 반이 지나니 사방이 환했다. 한국의 5시 반보다 주위가 밝았다. 9시에 호텔을 나와 시내 중심에 있는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한국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겠지만, 가을기운이 느껴지는 시원한 날씨였다. 더구나 도로변 나무들은 일부 단풍으로 물들고 있었다. 모스코바 강을 따라 주변은 우리나라에는 없는 황금빛 돔들의 건물들이 곳곳에서 손짓을 하며 호기심을 달구고 있었다. 교통체증이 별로 없어 한 시간 정도 지나 말로만 듣던 볼쇼이극장 앞에서 하차하여 부근을 동영상으로 담고 거대한 마르크스 석상이 있는 공원을 지나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볼쇼이 극장 9월 5일 모스코바 기념의 날을 앞두고 광장 출입문 도로에는 귤이랑 피망 등 색상이 다양한 생과일로 장식한 처음 보는 많은 조형물이 가벼운 흥분을 일으켰다. 붉은 광장 입구 부근 깃발을 앞세운 가이드 따라 관광객이 끝없이 밀려들고 있었다. 우리일행은 광장의 출입구 옆에 있는 세계2차대전 당시 나치를 물리치고 구소련을 수호한 주코프 장군의 기마동상 앞에서 붉은 광장 등 여러 가지 설명을 들었다. 출입문에서 순서를 기다려 입장하니 붉은 광장 곳곳에 모스코바 기념의 날 행사를 위한 거대한 간이공연장 등 공사로 인하여 광장 뒤쪽에 있는 레닌의 묘지는 멀리서 위치만 확인했다. 모스코바 박물관은 외형만 보고 크렘린의 맞은편에 있는 1893년에 건립 1953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개조한 거대한 석조건물 국영 굼백화점(3층)을 둘러보았다. 다시 붉은 광장에서 모스코바 강 쪽으로 있는 성바실리성당(ST Basil Cathedral)을 외관을 둘러보았다. 성바실리성당 1560년에 준공한 성당은 높이 47m의 양파머리의 화려한 색상을 자랑하는데, 많은 관광객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경비병들이 곳곳에서 지키고 있었다. 크렘린 성벽에 있는 커다란 시계탑의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카메라 세례를 받았다. 바실리성당을 100m정도 지나면 모스코바 강을 가로 지르는 볼소이 모스코레즈키 다리가 나왔다. 이 다리의 중간쯤에 인도에는 작은 러시아기가 펄럭이고 2사람이 지키고 앉아 있는 다리 난간 쪽에는 상당히 많은 꽃다발이 피살자의 사진과 추모의 글이 놓여 있었다. 금년 2월 27일 밤 11시 러시아 야당당수 보리스넴초프가 이곳에서 우크라이나 모델 아가씨와 걷던 중 괴한의 총에 피살된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것이다. 평소 방탄차를 타고 다녔다는데 피살되고 보니 온갖 억측이 난무 한다고 했다. 허무한 삶. 인생무상의 쓸쓸한 바람이 우측강변으로 높고 긴 크렘린궁의 위협적인 붉은 성벽으로 불고 있었다. 성벽 아래로는 많은 차들이 다니고 넓은 강에는 많은 유람선이 여유롭게 지나가고 있었다. 크렘린성벽의 시계탑과 성바실리성당 뒤편의 파란 스텐드를 설치하는 곳이 붉은 광장임 점심 식사 후 내부 순환도로를 따라 크렘린 궁으로 향했다. 도중에 모스코바 탄생 800주년을 기념하여 1947년도에 스탈린의 지시로 만든 7개 건물 중 하나인 외무성도 지나고 작년에 한국차가 가장 많이 팔렸다는 고무적인 소식과 함께 가장 비싼 방세에도 불구하고 영업이 가장 잘된다는 롯데호텔을 지나기도 했다. 그리고 죄와 벌의 작가 도스에프스키 동상이 있는 레닌도서관과 국방성도 지났다. 거리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다양한 분수광장을 지나 붉은 광장 입구 우측으로 있는 크렘린 궁전출입구로 가니 커다란 대형 철문이 기다리고 있었다. 관광객이 너무 많아 입장이 지체될 정도였다. 출입문에 가까이 좌측에 있는 무명병사의 원혼을 기리는 가스 불이 타고 있고 부동자세의 병사가 양측에서 지키고 있었다. 꼭 워싱턴 알링턴 국립묘지의 케네디 가족묘지와 같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영원의 불인 것 같았다. 궁으로 들어가는 긴 길을 따라 우측으로는 다양하고 화려한 꽃들로 조성한 알렉산더 공원(Alexander Garden)을 따라 한참을 가서 성벽 문을 다시 지나니 숲이 욱어지고 하얀 라일락이 만개한 정원이 나왔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소지품 등 검색을 받은 후 크렘린 궁으로 들어 갈 수 있었다. 참고로 크렘린 성의 개요를 이야기 하면, 성벽 길이가 2,235m, 높이 5 ~ 19m, 두께 3.5 ~ 6m 이고 20개의 성문과 탑이 있다고 했다. 크렘린을 들어가려면 '삼위일체탑'(높이 80m)을 지나야 한다. 1685년에 건설한 5개의 탑이 있는데, 현재 2곳이 수리중이고 탑의 꼭지에는 1.5톤이나 되는 황금별이 돌고 있다. 이색적인 풍광이 아닐 수 없었다. 커다란 공연장건물 앞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동안 맞은편 옛날에 무기창고로 사용했다는 주변으로는 수많은 야포가 전시되어 있어 분위기가 묘했다. 그리고 이동하여 가까이에 있는 황금빛 화려한 돔의 종루 건물 맞은편에는 황제대관식을 올렸다는 국보 1호 우스펜스키(승모승천사원)사원내부에 들어갔다. 당대최고의 도공들이 자작나무에 그린 성화 250여종을 5층으로 벽면에 진열 하였고, 촛불 전구의 화려한 샹들리애 여러 개가 실내를 밝히고 있었다. 역시 관광객은 만원이었다. 다음은 역대 황제와 왕자 등 48명이 안치된 황실무덤 아르헴켈리스 사원내부를 둘러보았다. 내부 정면벽면에는 황금빛 기둥(?)으로 장식하였고 곳곳에 안치된 이색적인 棺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황실 예배당 블라고베르첸스키 사원이 있었다. 건물 모두의 지붕에는 화려한 황금빛 돔으로 장식을 하여 멀리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울창한 숲이 있는 모스코바 강변 성벽 쪽으로 나오니 조금 낮은 지형에는 푸친의 출퇴근 시 이용한다는 헬기장이 나왔다. 그 옆으로 조성되어 있는 비밀의 정원 아래로는 아름다운 꽃들로 조성을 잘해 놓고 있어 영상으로 담았다. 다음은 이반대제 종루 앞에 있는 한 번도 울린 적이 없다는 216톤이나 되는 황제의 종은 1737년 화제로 종이 떨어질 때 깨진 조각의 무개만 11.5톤 이라니 놀랄 뿐이다. 또 가까이에 있는 1586년에 제작한 38톤(길이 5.35m)이나 되는 황제대포가 장식용으로 비치되어 있고 그 맞은편 광장 건너편으로는 옥상에 러시아기가 펄럭이는 대통령 집무실이 삼엄한 경비를 받고 있었다. 버스는 다시 노벨상 수상자를 12명이나 배출하였다는 모스코바 국립대학으로 향했다. 도중에 국회의사당. 명품백화점. 어린이백화점. 무시무시하고 악명 높은 KGB 건물을 지나기도 했다. 멀리로는 독특한 양식의 예술인 고층 아파트도 보였다. 버스는 강변을 따라 가는데 숲이 울창하고 모스코바에서 제일 큰 모스코바공원 공원을 지났다. 이곳은 아무리 더운 여름 날씨라도 더위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시원하다고 했다. 모스코바 대학은 모스코바 시내에서 제일 높은 해발 120m의 레닌 언덕에 있다. 250년 역사를 자랑하는 모스코바대학은 스탈린양식의 건물로서 높이 240m, 정면 길이 450m로 단일 건물로서는 정말 대단한 위용을 자랑하는 건물이었다. 국립대학 정면에는 장방형의 길고도 넓은 연못(?)을 사이에 두고 좌우로 노벨수상자 12명의 커다란 흉상을 배치하였는데, 32천명 재학생들의 학구열을 부채질 하고 있었다. 우리나라 유학생도 30여명 있다고 하는데 노벨수상자 나오기를 기대 하면서, 잠시 영상에 담았다. 다시 시내에 있는 러시아의 자랑 최초 우주인 유리가가린의 하늘로 치솟는 높은 동상을 지나 호텔에서 한식으로 이른 저녁식사를 한 후 모스코바국제공항으로 향했다. 1시간 소요예정이나 교통체증이 심해 비행기를 놓칠까 봐 조마조마했다. 도중에 미려한 디자인으로 화려한 최신 고층건물을 짓는 자유지역센터를 지나는데, 몇 년 후면 이곳도 명소가 될 것 같았다. 편도 5차선도 복잡했지만 무사히 공항에 도착했다. 모스코바에서 밤 9시에 SU 028 소형여객기로 출발,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leo) 공항에 10시 20분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터미널이 없는 노지에서 트렙을 내려 셔틀버스로 이동했다. 기온이 약간 쌀쌀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이동하는 셔틀버스가 많아 복잡하고 불편했다. 공항 앞 도로변에는 대형 야립 간판들이 눈길을 끌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소련이 멸망 할 때까지 레닌그라드로 불리었던 도시로 300년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면적은 1,439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510만 명이다. 호텔로 가는 도로는 왕복 6 ~ 10차선으로 시가지는 관광지답게 가로등과 간판 건물 등 조명이 화려했다. OKHITINSKAYA 호텔에 11시 지나 308호실에 피곤한 여장을 풀었다. 2015년 8월 25일(화) 맑음 역시 새벽 4시 30분경에는 주위가 환하게 날이 밝았다. 맑은 날씨를 예보하고 있어 기분 좋은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오전 9시에 현지 가이드 윤주형씨를 만나 여름궁전으로 향했다. 이 도시는 1703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출발하여 1924년 레닌그라드로 불리다가 1991년도에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회복된 도시다. 1970년도에 도시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정도로 시내 중심부는 300년 전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백야현상으로 유명한 이곳은 레닌과 현재의 푸틴대통령. 시인 푸시킨이 태어난 곳이라 했다. 일 년에 한 달 정도 날씨가 좋다는데 우리가 오늘 그 행운을 누리고 있다. 버스(벤츠)는 계속하여 평야지대의 직선으로 나있는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소나무 수림이 욱어진 곳을 지나기도 하지만 목초지나 채소 등 경작지는 보이지 않고 대부분 황무지로 방치되어 있었다. 식료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 한다고 했다. 한국과 비자면제는 푸틴의 막내사위(윤종구 해군제독의 차남 준원)덕분이라고 했다. 버스는 별장들이 들어서 있는 곳을 지나 여름궁전에 도착했다. 여름궁전의 면적은 여의도와 비슷한데 울창한 수목과 곳곳에 호수들이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고 했다. 특히 표트르대제의 거대한 여름궁전 앞에 1714년 착수 9년 동안이나 걸려 완공 된 144개의 분수를 만들고 각 조형물을 황금으로 도금을 화려하게 장식을 해 두었는데 눈부실 정도였다. 그 규모와 수가 너무 많아 한 장의 사진으로 담을 수 없을 정도였다. 전기를 전연 사용하지 않고 낙차를 이용한 수압으로 분수를 일으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정중앙에 삼손이 사자의 입을 찢는 조형물의 분수는 21m를 자랑한다고 했다. 크고 작은 황금빛의 화려한 조형물이 정 대칭으로 설치하였다. 11시 정각에 장엄한 음악과 함께 분수 쇼를 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그동안 우리 일행은 울창한 숲속 곳곳에 아름다운 꽃으로 조성한 정원 등 다양한 볼거리를 둘러보는데, 여러 곳의 분수탑에서 쏟아지는 물소리가 푸른 숲에 시원하게 젖어들고 있었다. 11시가 가까워지자 수백 대의 버스가 밀려들고 수천 명의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그 넓은 지역 어디에서도 영상을 잡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더디어 장엄한 음악과 함께 하얀 물기둥이 황금빛 조형물을 물들이는 환상적인 분수 쇼가 시작되자 모두들 탄성과 함께 영상을 담느라 북새통을 이루었다. 필자도 힘들게 동영상으로 일부를 담아냈다. 분수 쇼가 끝나도 흥분이 채 가라앉지 않았는지 한동안 관광객이 자리를 뜨지 않았다. 분수쇼가 끝난 곳을 뒤돌아 보면서 한장 11시 반이 지나서야 현장을 겨우 빠져나와 버스에 올랐다. 러시아 現地食으로 중식을 하기 위해 가는 도중 도로변에 G7정상회의를 하였다는 푸틴의 14별장중 하나인 거대한 별장을 차창으로 보았다. 중식 후 시내 중심부 네바강(Neva river)변에 있는 겨울궁전(에르미타쥐 박물관)에 도착했다. 세계 3대 박물관중의 하나라는데, 건물외관도 화려했지만 그 규모도 어마어마해 보였다. 도로변에는 입장을 위해 햇빛아래서 기다리는 엄청난 관광객을 보고 놀랐다. 우리일행을 안내하는 가이드 윤주형씨의 사전예약으로 그 많은 사람들을 재치고 먼저 입장할 수 있었다. 대기하고 있는 입장객들 발 디딜 틈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관광객들 사이로 본관의 입구서부터 현란한 황금빛 단장의 분위기에 놀라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벽면에 게시된 대형사진으로 시작된 역사의 향기를 이어폰을 통하여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은 계속되었다. 자칫하면 일행을 놓칠 수 있어 수시로 인원점검과 행선지를 손짓하면서 진행을 했다.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이곳에서 다른 관광객과 차별화된 가이드의 실력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한 장식의 가구와 비품, 유명인들의 대리석 석상, 왕의 대관식 방, 중세의 화려한 생활 작품 등을 숨 가쁘게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관람을 마치고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마뜨료쉬가”(전통인형) 등 매장을 둘러보고 네바 강 유람선을 타러갔다 101개의 섬과 365개다리가 있는 운하의 도시를 둘러보기 위해서다. 도중에 넵스키대로와 구해군성 본부를 지나 성 이삭성당 부근에서 하차하여 운하에 대기한 유람선에 올랐다. 유람선은 운하를 이리저리 지나 대형여객선이 발틱해 쪽으로 정박해 있는 네바강으로 나왔다. 강위에서 구해군성 본부를 중심으로 부채 살처럼 도로망을 구축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고 하는 그 해군성 본부를 지났다. 네바강에서 바라본 해군성 본부 도로 바로 맞은편 강변의 거대한 겨울궁전과 멀리 황금빛 탑과 돔 등 강변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을 영상으로 담고 담았다. 유람선은 다시 수많은 다리와 유람선이 북적이는 운하로 진입 하였다. 한 시간여를 관광한 후 하선 하였다. 버스는 알렉산드라대왕 동상이 있는 겨울궁전 광장을 지나서 300년 전 역사의 향기를 풍기는 넵스키대로의 석조건물 등을 감명 깊게 둘러보았다. 300년 전 늪지대인 이곳을 시가지로 웅장하게 조성하면서 운하 양측으로 그 당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큰 붉은 대리석 축조물은 그 옛날 주민들을 얼마나 혹사 하였는지 짐작으로 알 것 같았다. 다시 성 아삭성당 앞에서 1818년부터 만든 니콜라이 1세 대형 동상을 영상으로 담고 어제 밤 투숙했던 호텔로 돌아 왔다. 2015년 8월 26일(수) 흐림 오늘은 4시에 기상하여 5시에 호텔을 나와 헬싱키로 향했다. 아침식사는 도시락으로 고속도로 버스에서 해결했다. 고속도로의 반원형 방음벽도 특이 했지만, 그 위에 도로를 품에 앉듯 도로중앙으로 반원형으로 굽은 이색적인 가로등이 밝은 빛을 쏟아내고 있어 동영상으로 담았다. 끝없는 평원 울창한 숲을 지나는데, 곳곳에 도로 확장공사를 하고 있었다. 옅은 안개가 내려앉으며 멋진 풍광 속에 상쾌한 아침을 열면서 계속하여 인가도 경작지도 없는 대평원 수림 속을 달렸다. 도로변에 수벽을 이루는 소나무는 모두 直立의 赤松이였고 간혹 자작나무도 일부 있었다. 우리나라 林相을 생각하면 부럽기 한이 없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그러한지 캐나다처럼 나뭇가지가 1m 내외로 짧고, 또 아래로 처져있었다. 아침 8시경 러시아 국경 출국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2시간이상 출국심사를 늦추는 바람에 모두들 불평이 많았다. 관광객이 많아서도 아니었다. 심지어는 우리일행을 1/3정도 심사 하다가 중단하고 늦게 온 자국민을 2곳에서 모두 처리하는 것을 보고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지만 달리 방법이 업었다. 기다림의 통증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으리라 생각하면서 참고 또 참았다. 세계 어디를 가도 이런 곳은 없었기에 이런 경험도 처음이다. 가이드 이야기는 중국이나 독일인이면 더욱 고생했을 것이라 하니 말문이 막혔다. 2시간이나 걸려 출국심사를 마치고 약 1km떨어진 핀란드 입국심사는 34명에 대해 여권대조 심사를 일일이 하여도 20분도 소요되지 않았다. 역시 선진국답게 여행객의 편의를 도모하고 있었다. 핀란드 국경을 통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랗게 익은 밀밭(한국은 6월에 수확이 끝남)과 초지지대가 울창한 숲 사이로 그림 같은 풍경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1917년에 소련으로 부터 독립한 핀란드는 19만개가 넘는 호수와 자작나무로 유명하다. 그리고 노키아로도 유명한 나라이다. 약간의 기복이 있는 구릉 지대와 붉은 바위의 암반지대가 많았다. 일부 노란단풍으로 물드는 자작나무들이 시선을 즐겁게 했다. 자작나무가 많다고는 해도 도로변에 보이는 것은 소나무가 70~80%는 되어 보였다. 숲속에 간혹 주택도 보였다. 고속도로변은 캐나다처럼 철망울타리로 야생동물의 출입을 막고 있었다. 간혹 樹林사이로 나타나는 그림 같은 호수가 풍광을 더하고 도로 중앙에 가느다란 높은 지주위에 잠자리처럼 달린 가로등이 도로 전 구간에 설치되 있는 것 같아 잘사는 나라답게 보였다. 헬싱키 시내에 들어서니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아직도 시내 중심에는 전차가 다니고 그 좌우로 2개 차선을 일반차가 다녔다. 오후 1시가지나 시내 중심에 있는 식당에 도착하니 젊은 현지 가이드 서정애씨가 반갑게 우리일행을 맞이했다. 핀란드는 스웨덴의 지배를 660년, 소련의 지배를 108년 합계 약 770년 세월을 나라 없는 서러움을 겪었다. 점심식사 후 러시아 동방정교인 우스펜스키 사원과 1818년에 준공한 헬싱키 대성당, 암석교회 등을 차례로 둘러볼 예정이다. 핀란드는 면적 338,145평방키로, 인구 530만 명이고 그 중 50만 명 정도가 헬싱키에 살고 있단다. “사우나”라는 세계 공통으로 쓰이는 말도 핀란드에서 명명하였다고 한다. 먼저 헬싱키 성당에 도착했다. 다행히 비는 그쳤다. 성당 앞 원로원 광장을 중심으로 정부청사가 있고, 가까이 바닷가에는 헬싱키 시청이 있고 그 옆으로는 대통령 궁 등이 있었다. 원로원 광장과 성당 원로원광장 중앙에는 알렉산드라 2세 동상이 있었다. 이곳저곳 영상을 담고 바닷가 시청이 있는 곳으로 내려갔다. 발트해는 염분이 적어 민물 같은 맛을 느낀다고 했다. 바닷가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는데, 한국말을 모두 잘하고 있어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이 오는지 짐작이 갔다. 시내에는 맥주전차라는 붉은 전차를 운행하고 있었다. 붉은 화강암을 깨뜨려 만든 암석교회에서 아름다운 共鳴을 체험하고 시벨리우스공원으로 갔다.1860년에 태어난 핀란드의 유명한 음악가 시벨리우스(Jean Sibelius)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 다. 공원 내는 24톤의 은빛 강철 600개 파이프 오르간 형상의 조형물과 그 옆에 시벨리우스 頭像을 나란히 만들어 두었다. 숲의 향긋한 공기를 음미 하면서 공원을 장시 통과하니 많은 하얀 요트들이 정박해 있는 해안가 풍경이 그림같이 아름다웠다. 이곳 핀란드는 겨울에는 70일이 해가 뜨지 않고, 여름에는 50일이 해가지지 않는다고 했다. 헬싱키 관광을 마치고 오후 5시경 숲속 4차선을 고속도로를 달려 옛 수도였던 투르크로 향했다. 역시 도로변에는 곳곳에 경작지와 초지 등이 숲속에 펼쳐지고 있었다. 오후 7시경에 투르크 항구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스톡홀름으로 가는 크루즈를 탈 예정이다. 저녁 8시에 크루즈선(5만7천 톤, 수용인원 2,800명 규모임)에 승선하였다. 총 11층으로 되어있고 승강기는 5층에서 탔다. 8층에서 내리니 수백 미터(?)나 되어 보이는 긴 복도가 배가 얼마나 큰가를 실감케 했다. 필자는 8885호실(8층의 815호실)에 여장을 풀고 7층의 뱃머리에 있는 운동장보다도 넓어 보이는 식당으로 갔다. 마침 섬 위로 떨어지는 붉은 빛을 토하는 落照를 영상으로 담고 와인을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였다. 술이 무제한 공급되었기에 여흥을 즐기다 선실에 들어오니 원형 창문에 반달의 달빛이 흘러들고 있었다.
호수보다 조용한 검푸른 바다위로 하얀 달빛 길은 아름다운 섬으로 이어지고 있어 환상적이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잠시 젖었다가 하루의 피곤을 둔탁한 엔진의 규칙적인 소리에 잠을 실었다. 2015년 8월 27일(목) 맑음 새벽 4시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소리 없이 미끄러지는 크루즈 선박 따라 黎明에 얼굴을 들어내는 아름다운 섬들이 손에 잡힐 듯 사람을 유혹했다. 섬들은 가만히 있고 배와 옅은 뭉게구름이 함께 흘러가는 착각을 일으켰다. 5시에 지난밤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한 후 스톡홀름 항구에 하선을 하였다. 기다리고 있던 현지 가이드 박지은 씨를 만나 대기하고 있던 버스(벤츠)에 올라 구시가지인 감라스탄(Gamlastan)을 지났다 스웨덴의 면적은 450,295평방키로 이고 인구는 980만 명이다. 이중 스톡홀름에는 210만 명이 사는데, 20%는 이민자라 했다. 그리고 한인은 2,000명 정도이고 한인 입양자는 1만 명이 넘는데, 지금도 한인 입양을 선호 한다고 했다. 도중에 “엔코” 백화점을 지났다. 스톡홀름은 5개의 섬으로 구성되어있다. 바다의 만을 중심으로 현대식 건물이 즐비하고 수많은 선박이 정박해 있어 무척 풍요로워 보였다. 과도한 복지정책 때문에 그 유명한 볼보회사가 중국으로 넘어가고 스카니아 자동차 하나만 남았단다. 구시가지 전망대에서 바라보니 멀리 대형크루즈 선박이 2대나 정박해 있고 수많은 크고 작은 유람선 등을 품에 안은 항만을 중심으로 스톡홀름의 아름다운 시가지 전경의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본 스톡홀름 전경 골목길을 잠시 둘러보고 가까이에 있는 아침햇살에 빛나는 왕궁 옆 (대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왕의 대관식과 자녀 결혼식을 한다고 했다. 1520년에 일어난 살육으로 인한 피의 광장이라 불리는 곳의 앞 노벨초상화가 게시된 건물이 박물관인데 역대 노벨수상자들의 흔적들이 있다고 했다. 굳게 닫힌 문 때문에 외관만 둘러 보았다. 이어 스톡홀름 항만의 중심에 있는 시청사로 가는 도중 8만개의 크리스털로 만든 탑을 지났다. 화려한 야간 조명을 보지 못해 아쉬웠다. 시청사에 도착하여 매년 12월 10일이면 개최되는 시청사내 노벨수상자 만찬장을 찾았다. 1,300명이나 수용하고 벽면 천정 부근에 만개의 장엄한 오르간의 울림이 있다고 했다. 이어 2층에 있는 순금 10kg로 1,800만개의 조각으로 모자이크한 황금의 방은 노벨수상자들의 만찬 후 여흥을 즐기는 곳이라 했다. 눈부신 황금의 방을 영상으로 담고 시청을 나왔다. 다시 버스는 바사호반에 위치한 동물섬 옆에 있는 바사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1625년에 3년 동안 건조한 목선전함(길이 69m, 높이 48.8m, 탑승인원 450명, 탑재포 64문 등)이 1628년 8월 10일 출항 15분 만에 침몰(기준을 무시한 왕의 무리한 요구 때문에)한 후 333년이 지난 1956년에 인양하였는데, 98%가 원형 그대로인 목선을 보니 그 옛날 섬새하고 화려한 선박기술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식으로 식사를 한 후 버스는 아름다운 항구도시 스톡홀름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2시 간여를 미지의 세계를 향하여 숲속 6차선 도로를 달렸다. 도중에 먹구름에 실려 온 소나기가 내리다가 쾌청한 파판 하늘을 내주기도 했다. 그리고 산듯한 많은 경작지와 목장지대를 통과했다. 바다와 같은 보른호반을 따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신나게 달리다가 도중에 왼쇠핑에서 간단히 중국식으로 저녁식사 후 다시 헴세달로 2시간 정도를 달렸다. 조용한 음악을 듣기도 하고 해박한 신현주 가이드의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역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끝없이 달렸다. 새롭게 펼쳐지는 이국땅 우리나라 가을을 연상케 하는 完熟한 넓은 밀밭을 지나가는가 하면 해안이나 호반에 이색적이고 아름다운 별장들이 무료함을 달래 주었다. 오후 7시가지나 헴세달에 있는 QUALITY hotel 207호에 투숙했다. (2부 계속) |
궁금하오 한권의 책이 되겠네요 한참 읽고 갑니다 너무 멋집니다 소산 시인 수필가님 .....
불리면서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었죠.
궁금하기도 하고 또 공산주의라고 해서 국민들이 공산정치하에서
억압되어 살아가는 나라로 상상하면서 춥고 어둡게 생각했던 곳입니다.
이제는 누구나 여행할 수 있는 곳이기에 가 보고 싶은 욕구가 큰 나라지요.
세세하게 설명까지 해 주셔서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진달래 15.09.08. 06:47
직장으로 마음뿐입니다
멋진 여행기 즐감합니다 한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한미르 15.09.08. 07:11
부러운것은 두말할것두없구요~
마치깍아만들어놓은것 같은 건물들이 예술자체같습니다.
대부분 다녀온 곳 도시이름도 기억 못하는이 많던데...
감사 합니다.
난지 15.09.08. 11:34
거뜬하게 다녀오시고 멋진 후기도 좋습니다
선화공주 15.09.09. 16:31
손 회장 15.09.10. 01:26
저가 직접 북유럽 여행하는 기분입니다
상세하게 여행기를 적어주셨기 때문에
글만 읽어도 여행기분이 납니다 멀리도 여행하시고
여행 수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