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설날▣♡ 아름다운 글
그리운 설날 소산/문 재학
얼마 안 있으면 설이다. 생활이 어렵고 힘들수록 더욱 아련한 추억으로 남는다고 하였든가 필자가 초등학교 다니던 6.25동란 시절부터 60년대 초반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춘궁기에는 草根木皮로 연명하며 가난을 숙명처럼 여기며 살았다.
그래도 섣달그믐이 다가오면 부모님들은 며칠 전부터 최선을 다해 설 채비를 하고 동심은 들뜬 분위기 속에서 설날을 맞이하곤 했다.
고두밥을 찌고 엿기름을 섞어 삭혀서 甘酒를 만들고, 이를 자루에 넣어 물을 짜내어 다시 가마솥에 붓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장작불로 달구어 고아서 조청을 만들었다.
사탕이 귀한 시절이라 나무주걱에 묻은 조청을 때어먹는 달콤한 맛은 지금의 사탕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하고 달콤했다. 이것으로 강정(한과)을 만들고 엿을 만들었다.
하얀 눈 속에 얼음이 꽁꽁 어는 추위 속에서도 콩을 씻어 불리어서 대청마루에 큰 맷돌을 올려 설치하여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드는데,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지루한지 팔과 어깨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생콩을 갈은 콩물을 역시 자루에 넣어 눌러 짜내는데, 찌꺼기 비지는 따로 띄워서 반찬으로 먹고 콩물은 가마솥에 넣고 끓이면서 간수를 넣으면 몰골몽골 엉키는 두부가 생겼다. 이렇게 생긴 하얀 두부는 그냥 먹어도 맛이 고소했다.
그리고 쌀을 불려서 디딜방아에 다리가 아프도록 빻아 가루를 만들고 이것을 가마솥에 무명천을 깔고 쪄서 뜨거운 가래떡을 만들었다.
찬물에 손을 식혀 가면서 가래떡을 만드는데 이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가래떡이 적당히 굳는 밤이면 칼로 잘게 쓸어 말리는데, 너무 굳으면 손에 물집이 생기기도 했다.
또 메밀가루로 메밀묵을 만들 때는 솥바닥에 눌어붙은 고소한 누룽지와 박 바가지에 붙은 메밀묵 찌꺼기를 서로 먹으려고 형제간에 다투기도 했다.
마을 앞 정자나무 아래에서는 쌀. 조. 콩. 수수. 옥수수 등을 뻥튀기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며 하루 종일 뻥튀기 김의 향기와 하얀 김이 진동을 하였는데, 이것도 설에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지만 그때는 어디를 가나 마을마다 뻥튀기를 하고 있어 설 분위기를 실감케 했다.
밤이 되면 이 뻥튀기(튀밥)로 호롱불아래 조청을 녹여 섞어서 강정(한과)를 만들어 온돌방에 말리는데, 수시로 주워 먹는 맛이란, 먹거리가 귀한 때라 지금 시중에 판매하는 것과의 맛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맛있었다.
마을마다 집집마다 부산하게 설 준비를 하였던 아득한 그 시절 그때가 그립다.
설빔으로는 새 양말 한컬래 정도가 대부분 이였었다. 그때는 양말도 설이나 추석이 아니면 새 양말을 신기가 어려웠었다. 어쩌다가 고무신이나 옷이 많이 헤지면 시장(재래시장 5일장밖에 없었음)에서 옷 한 벌 사주는데 이것은 최고의 설빔이기에 뛸 뜻이 기뻐하면서 어서 설날 아침이 오기를 기다렸었다.
지금은 물자가 풍부하여 경제적 여유가 없어도 양말은 (지금은 고무신은 거의 신지 않고 운동화로 바뀜) 수시로 구입해 신고, 처치 곤란할 정도로 많지만, 그 시절에는 모든 것이 궁핍한때라 지금의 젊은 분들은 쉽게 이해가 안 될 것이다
양말도 무명 양말이라 위생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어찌나 잘 떨어지는지 몇 번 신으면 발꿈치에 구멍이 나서 항상 헝겊조각으로 덕지덕지 볼을 받아 신어야 했다.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신고 생활하니 구멍 난 양말이 결코 흉이 되지 않았다. 지금은 구멍이 난 양말을 신고 다니는 사람은 눈을 닦고 보아도 찾기 힘들 정도로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다.
섣달 그믐날 문풍지가 울정도로 外風이 심한 방에서 자리끼가 꽁꽁 어는 추운 방이지만 밤에 잠을 자면 눈썹이 하얗게 쉰다는 어른들의 이야기에 형제들은 구들 막에 펴놓은 이부자리에 발을 넣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잠을 자지 않으려고 버티다가 끝내 잠이 들기도 했다.
저마다 설날 신을 양말이나 고무신을 머리맡에 두고 자다가 몇 번이나 만져 보거나 아예 품에 안고 잘 정도로 좋아했던 어린 시절 설빔 이였다. 지금 아이들은 아마 이해가 잘 안될 것이지만, 생각하면 그때가 행복했었다.
설날 이른 아침에는 부모님이 가마솥에 끓여놓은 뜨거운 물을 바가지로 떠서 추운 영하의 날씨라 눈에만 물을 찍어 바르는 고양이 세수를 하였다.
그리고는 밤새 머리맡에 두고 몇 번이나 만지던 뽀송뽀송한 새 양말을 신으면 이것도 설날에만 맛보는 행복이었다. 양말 하나에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면 행복은 역시 우리 가까이 마음속에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추워도 부모님께 세배를 할 때는 방문을 활짝 열어놓고 문밖에서 했다.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들려주시던 德談. 지금도 귀에 쟁쟁한다.
지금은 누구나 세배 돈을 주지만, 그때는 세배 돈이란 이름조차 들어 보지 못했다.
그리고는 호롱불이 창호지문을 비치는 어둡고 추운 골목길을 더듬어서 가까운 친척집을 찾아다니며 집안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돌아올 무렵이면 먼동이 터기 시작 했다.
대청마루에 차례 상을 분주하게 준비 하는데, 零下의 날씨가 얼마나 추웠던지 더구나 입성조차 부실하여 벌벌 떨면서 빨리 차례가 끝나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차례는 집안사람들이 모두 모여서 큰집부터 시작하여 작은집으로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지냈다.
사립문 밖을 나서면 집집마다 노란 초가지붕위로 굴뚝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돌담길을 돌아가면 닭소리. 개짓는 소리가 정겹게 들리었다.
여러 집을 돌면서 차례를 지내다 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가야 차례가 끝나고, 집집마다 음식을 조금씩 먹어도 설날은 포식을 하게 된다.
집에서 잠시 쉬었다가 삼삼오오 짝을 만들어 다시 온 동내의 어른들을 집집마다 찾아뵙고 새해 인사를 드렸다. 어른을 공경하는 좋은 美風良俗 이였다.
도중에 마을 분들을 만나면 서로 만면에 웃음 가득한 모습으로 덕담을 나누기도 했다.
어른들은 거의 전부 하얀 한복을 입었고, 조금 잘사는 집 어린 아이들은 평소에는 안 입던 색동옷을 입어 설날 분위기를 물씬 풍기였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나면 설음식을 내오는데,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보니 색다른 음식을 맛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특히 잘사는 집에서는 찹쌀을 물에 불리어서 곱게 빻아 그것을 찌고 조각을 잘게 내어 건조 시킨 후. 깨끗이 씻은 모래나 기름에 튀기면 엄청나게 부푼다.
여기다 조청을 바르고 튀밥을 부순 하얀 가루를 내어 입힌 유과는 쉽게 맛볼 수 없는 것이라 인기가 좋았다. 이러다보니 설날은 그야말로 하루 종일 포식을 했다.
먹을 것이 부족한 시절이기에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던 설날의 즐거움이 아련한 기억 저 넘어 추억으로 살아있다.
그리고 어쩌다 도시에 있다가 설 지내려 오신분이 있는 집에서 도시의 전기 불 이야기를 하면 그것이 그렇게 신기하기 그지없어 귀를 쫑긋 세우기도 했었다.
지금은 일가친척들은 대부분 뿔뿔이 고향을 떠나버리고 일부 남아 있는 집은 자식들만 찾아와 가족끼리 간단히 차례를 지낼 뿐이다.
세배를 받고 덕담을 주시던 어른들은 모두 幽冥을 달리할 정도로 오래된 먼 옛날로의 시간여행을 잠시 해 보았다. 끝
가을하늘 15.02.10. 15:16 설날 옛날 같이 않아요 풍습도 많이 변하고 ~~! 그래도 그시절 설날이 그립습니다 성을주 15.02.10. 12:56 설날 추억? 설날 자면 왜 눈섭이 쉰다고 했을까요? 아침에 일어나니 누나가 내 눈섭에 알고보니 밀가루을 발라 놓았어요 ~ 끔찍이 15.02.10. 21:45 좋은 글 감사 합니다 .. 다는 아니지만 , 어린 시절 추억과 함께 하네요....ㅎㅎ.. 정말 예전엔 그랬지요... 음력 설도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 왔네요.. 훈훈한 행복과 함께 하시는 설 되십시요 ~~ 진달래 15.02.10. 18:17 떡국 뽑아다 밤새 썰어야 했던 고향 만두국에 각종 전을 부처 온 동네에 나눠먹었고 한복으로 단장하고 이집 저집 세배하던 그 시절은 이제 어디서도 찾아 볼수가 없어젔습니다 雲海 이성미 15.02.11. 14:58 예전 설날은 참 바빠지요 술도 담그고 묵도하고 두부도 하였지요 감주와 떡국에 갖가지 음식들이 명절을 말해주기도 하였구요 객지에서 고향을 찾는 이들의 손에도 갖가지 선물들이 행복을 하여주었구요 삼삼오오 15.02.11. 07:08 일일이 의식주 손수 장만 해야 했던 시절 부모님은 자식 주렁주렁 6남매 나지 10남매 뒷바라지 얼마나 힘드셨을까 이제서 고마움 떠올라요. 철없는 자식들 알리가 없고 그리도 가난하여 직접 다 만들어 땔감 부터 옷까지 만들어 쓰던 추억 고단한 삶 지금은 상상 할수 없던 시절 이 떠오름 니다 산월 최길준 15.02.11. 23:27 그리운 설날......지금은 일가친척들은 대부분 뿔뿔이 고향을 떠나버리고 일부 남아 있는 집은 자식들만 찾아와 가족끼리 간단히 차례를 지낼 뿐이다....요즘 시대의 실상을 봅니다 꿀벌 15.02.10. 16:00 몇일만 있으면 설날입니다 어릴때는 왜그렇게 설날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는지호호 지금은 올까 겁납니다 일이 많아서예 대혜 15.02.10. 16:40 요즘 젊은분들 비지도 지개에 지고 위에는 두부판 및에 바소고리에는 비지를 담고 다니면서 팔았다면 믿을가요. 글 잘 봤습니다. 청마 15.02.10. 16:52 설날도 얼마남지 않았네요 ~ 옛날 설은 참 좋았는데요 지금의 설은 걱정의 설이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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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었습니다 행복하시구요 날씨가 많이 추워요 ~
하나하나 과정을 소상하게 기억하고 계시는 기억력에 감탄을 하면서~~
상세한 설날의 그리움이 절절히 나는 추억의 글 잘 보았어요 수고 했습니다
좋은글 잘 읽혔구요....수고많으셨어요....감사드리며 내내 강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지금도 귀여운 상 이거든요 구구절절 재미난 추억들 ...시골에서 서울 한양에
위치한 명문대를 졸업하셨으니 ....여러모로 존경합니다
짚을 뭉쳐 재로 문질러 닦기가 정말 힘들어서 나는 어머님 몰래 집밖으로 줄행낭을 쳤습니다.
도망가다 어머님께 번번이 걸려 중노동을 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시절과 어머님 모두 안계시니
다시 못 돌아갈 옛일들이 너무 그립습니다
고무신 한컬레 가로줄끄인 면양말 하나
어찌나 좋은지 만지고 또만지고 동무들에게 자랑도하고
며칠남지않은 설날이 왜그리 지루한지요 지금아이들에겐 숲속의 동화 같은이야기지요
추억의 설날이야기 정말 즐거워습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것이 없는 요즘 아이들은(손자) 명절의 추억을 어떻게 회상할지,
걱정스럽습니다.(미국에서)
좋은 글,
감사 합니다.
어머니를 통해 전해들은 시간 여행 속 사연
공감이 됩니다
명절이 다가오니
주부인 저도 몸과 마음이 분주하답니다
오래 전 작고하신 어머니 생각과 진한 향수에 젖어갑니다
시인님 귀한 문향 감사합니다 ^^*
더없는 그리움의 아득한 어머니 품속이라 생각됩니다
최빈국의 경제와 비례하듯 양말 한 컬레에도 무한한 행복과
설렘을 가졌던 우리의 어린 시절은 모든 것이 부족함으로
채워지고 점철된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고유의 명절만큼은 궁핍과 빈곤속에서도 넉넉함과 풍족함의 여유를
창출할 수 있는 민족의 예와 지혜가 담겨있듯 섣달 그믐밤이 유달리 긴긴
밤이었음 또한 기억됩니다 이즈막히 꿈결에서나 볼 수 있는 어머니의
품속이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기억 너무나 좋은 글을 올려주시어 다시한번 추억속에 맨돌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즐겁고 항상 건강 하십시요.
잠깐의 만남이 아쉽기만
하지요~~
형식도 세월따라
변하는가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리 인사드리고 갑니다
설같이 온가족이 모여서 지내지요
여러 가지 요리를 해가면서요
시인님의 글에 머무르니
고향에 온듯합니다
고운 시간 보내세요^^